한의원에 찾았습니다. 부황도 뜨고, 침도 맞으니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아팠냐는 질문에 쭈뼛거리며 한 3주되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말이죠. 미련하게도 2달 정도 되었죠. 머리가 길어 묶는데, 왼팔이 들리지 않아 다소 기괴한 자세를 취해가며, 열상같은 통증이 생겨 불구덩이를 가지고 누가 옆에서 지지나 곁눈질에 의심하며 끙끙 앓았던...모처럼 개운한 기분입니다. 중간고사 보고 시험지에 비 내린 거 저쪽에 냅뒀다가, 틀린 거 위주로 훑어보고 비로소 깔끔하게 이해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하는 수준의 것만 믿고 넘어갑니다. 그동안 괜찮다 해놓곤, 줄곧 괜찮지 않은 내가 괜찮은 척 나를 속였다봅니다. 40대 중반이라 오십견도 찾아올 때 되었는데, 이정도 고통 쯤이야 참고 견딜 수 있다 주문을 걸었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했죠. 아파서 낑낑대는 나를 남편은 기꺼이 주물주물해주며 이직의 스트레스를 더이상 받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 나중’은 도대체 언제인가. 바로 즉문즉답을 떠올릴 수 없어 작금의 마음이 향하는대로 내 깜냥만큼 행동하자는 생각에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또또또입니다. 더 나은 미래가 올지 모른다며 무작정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는 하지 말자고 무턱대고 참기만 하는 미련의 소용돌이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냐며 책을 보며, 수없이 다짐을 했건만 이번에도 실패. 주 3회 물리치료 받겠다며 간호사 선생님께 당당히 말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오던 중 예전에 본 가와기타 요시노리의 <중년 수업>이 생각났습니다. 40대 이후로는 그때까지 정상 탈환을 위해 암벽등반을 했던 몸을 살살 다독여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걷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말
책을 볼 당시엔 뭘 벌써부터 몸을 사려야 하는지 갸우뚱했지만 내 아픔을 알고 내 감각을 알고 내 상태를 아는 지피지기는 빠르고 늦고 그 시점이란 사실 따질 것도 없는 거였습니다. 특히 통증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책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시그널이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궤적이고 흔적이거늘 그걸 못 본 채 내버려두는 것은 자기 기만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했듯 지금이라도 전투를 위한 몸 대신 작전을 짜는 몸으로 변환해야 한다…그것은 병원이 아니라 자기만의 사색공간에서 해야 할 일이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지르고 치유하며 바람이 불면 누울 줄 알고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뻗치고 있어야 할 때는 줏대있게, 그러다가 갈 때는 쿨하게 스러져 가는 걸로 흔적없이 깨끗하게 그러려면 그동안 겹겹이 쌓여있던 것들에 대해 좀 더 거리를 두고 평온한 마음 상태를 가지게끔 하는 일종의 치료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더해 무엇보다 일단 덜어내는 것. 현재 아프고 뒤죽박죽이라면 걸리적거리는 한두 요소는 떼어내고, 지워버리고 미련과 아쉬움 없이 미래를 끌어다놓고 미리 고민하며 불안에 떨지 않기 그게 이 손바닥 만한 공책에 빈 여백에 내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지금 감당해야 할 내 몫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쓴이의 솔직함은 어쩌면 제약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거두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래서 송구했습니다. 그동안 몰라봐서, 그동안 뭣도 모르고 덤벼서 그동안 괜찮은 척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