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장

아르바이트

by 조각사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설렘보다 '이제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주말에는 소양강 댐 근처의 유명한 닭갈비집으로, 방학에는 주유소로 향하며 나는 스스로 '알바몬'이 되었다.


주말마다 나갔던 닭갈비집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아침 출근길, 청소를 하고 있으면 사장님은

"오늘 대형버스 몇 대 들어온다"며 은근슬쩍 내 전의를 꺾어놓곤 했다. 고등학생 내내 단 하루도 '꿀 같은 주말'은 허락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 소개로 온 친구는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도저히 못 하겠다"는 문자 한 통을 남기고 도망가버릴 정도였다.


밀려드는 손님만큼 내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팠다.

하얗게 불태운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 폭풍 전야 같은 휴식 시간에 겨우 허리를 펴며 저녁 타임을 버틸 힘을 모았다. 저녁 영업이 끝나고 닭갈비를 마음껏 먹게 해 준다는 사장님의 그 한 마디에 이를 악물고 버텼던, 내 고교 시절의 주말은 온통 닭갈비 냄새로 가득했다.


방학 때는 어머니 지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일했다. 유일하게 배려받았던 조건은 운동할 시간이었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헬스장을 오가며 성실히 일할 수 있었다. 예전엔 주유소 직원들이 왜 덥거나 추운 날에도 밖에 나와 있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일해보니 답은 명확했다. 수시로 드나드는 차들을 맞이하러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로웠다.

역시 무엇이든 직접 겪어봐야 '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닭갈비집에 비하면 주유소는 양반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게 중요한 기준을 만들어주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힘든 일을 겪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훗날 자식을 낳는다면, 와이프가 허락한다면 고등학교 때만이라도 꼭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싶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로 나갈 채비를 마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방학마다 게임하며 노는 친구들을 보며 내 처지와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다.

인내와 책임감이라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자산을 누구보다 먼저 선물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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