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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너는 복이 많은 사람이야

1 환할줄 알고 호주에 왔는데 먹고살 길이없네?

by 휴리네

그러던 중 엄마가 집이 어떻게 없냐고 집사라고 돈을 주신다는 거야.


엄마는 옛날 사람이다. 나이 40살에 나를 낳았으니 내가 20살이 넘었을 때는 엄마는 벌써 환갑이 넘으셨다. 막내인 나까지 시집을 보내야 본인의 일이 다 끝나리라 믿으셨다.


아들 하나 얻어보자고 40살까지 나를 낳았는데 아들이 아니다 보니 정말 속상하셨겠는가. 평생 "네가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아서 모든 게 다 망했다"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엄마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은 엄청나게 복잡해 보였다.


나를 통해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끼긴 하셨을 테고 아들을 낳음으로써 성취하고 싶었던 인생의 목표에 대한 실패를 느끼셨을 테고, 늙은 나이까지 키워내야 하느라 부담스러움을 느끼셨을 테고 본인의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셨으리라.


엄마랑 나랑은 평생 대화를 나눠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감정을 교류해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나를 향해 웃어 보이신적이 없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문제집 사야 해요. 친구집 갔다 올게요" 등의 허락을 구하는 대화나

"엄마 부녀회 모임 있으니까 아빠 밥 차려드려" 같은 통보, 엄마와 나의 대화는 통보 혹은 허락 그 이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내가 하겠다는 거에 안된다는 말을 하신 적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5학년때 테니스 개인레슨 시켜달라고 했던 거 빼고, 외고 가겠다고 했는데 유난 부리지 말고 그냥 학교 가서 일등 하라는 거 빼고 어지간한 뭐든 일에 안되라는 말을 하신 적은 없으시다. 엄마가 안된다고 할 것 같은 일을 요청한 적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엄마가 나는 알아서 잘할 거라 믿어주는 것 같았다.


엄마 나름대로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까지 살뜰히 챙길 그럴 여유가 전혀 없어 보이셨다. 그때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더 절절히 알고 있다. 그때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그래서 항상 엄마를 거슬리게 하지 말아야지 엄마한테 알짱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랑보다는 책임감이라는 마음속 돌덩이를 을 더 무겁게 가슴속에 담고 사는 사람이었다. 늙어서까지 어린아이를 키워내야 하고 책임져야 하니 얼마나 버거웠을까.


엄마는 내 생각이나 상황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궁금해하거나 질문을 해서 혹시라도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어떤 책임이라는 걸 져야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거였을까? 뭘 해달라고 할까 봐 시간을 내어달라고 할까 봐 혹은 도와달라고 할까 봐 애써 안 보이는 척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집을 사라고 돈을 준다고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 그저 놀라웠다. 왜? 돈을 왜 준다고 하는 거야?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엄마가 나한테 줄 수 있을 줄도 몰랐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마지막 순위였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 갔다. 엄마한테 직접 물어봤다 엄마 돈을 왜 줘? 나한테 줘도 돼?

엄마가 내가 그동안 너한테 해주건 없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해줄 테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너한테 큰 도움 되는 일이야.라고 하셨다


오빠 엄마가 집사라고 돈을 주신대. 어떻게 결혼했는데 집이 없냐며 아직도 새벽에 절벽에서 돌 굴러 떨어지는 소리 나는 집에서 사냐면서 돈 주신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남편도 놀랬다. 얼른 집을 알아보자 했다. 여기저기 집을 알아봤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엄마는 집이 아직 안정해졌으면 돈은 천천히 보내는 게 맞을 거 같다고. 목돈이 그냥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라고 하셨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 문제를 어머니와 상의를 했다. 그런데 돈을 준다고 할 때는 얼른 받아야 하는 거라는 거라며. 그냥 집 금방 나오니까 집 구했다고 하고 돈 준다 할 때 받으라고 그러셨대. 난 또 아 그렇구나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받기로 했다. 목돈이 오는 일이라 마사지베드 수입하는 남편의 형이 일을 도와줬다. 돈을 받는 날이었다. 갑자기 형이 이상하다 했다. 금액이 다르다는 거다. 알고 보니 엄마가 주시기로 한 금액에 두 배가 들어왔다는 거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왜 돈이 달라요? 그랬더니 나더러 너 복이 많다면서. 엄마가 20년 전에 빌려줬던 돈이 있었는데 너한테 돈을 주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그 돈을 들어왔다면서 너 주라고 이 돈이 돌아온 거라고. 꼭 좋은 집 사야 돼 라고 하더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돈은 당연히 나보다 어른인 오빠가 관리하는 거라 생각했다. 난 만져보지도 못했다. 큰돈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통장에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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