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할 줄 알고 호주 왔는데 먹고살 길이 없네?
돈은 당연히 나보다 어른인 오빠가 관리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님이 3형제에게 투자를 해주신다고 하셨다. 3형제가 골드코스트로 이주해서 마음을 맞춰서 비즈니스를 해보라고 하셨다. 마사지 베드 배달하면서 그런 식으로 성공한 분들을 많이 만나보기도 해서 그런지 이렇게 처음에 시작하는 거구나 하면서 거부감이 없었다. 나는 좋다고 하고 마사지 베드 샵은 정리하고 목돈을 마련해서 이주 결정을 내렸다.
이사 갈 곳은 이미 골드코스트에 계신 둘째 아주버님이 구해주셨고, 시드니에서의 삶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골드코스트로 이사하는 거기도 하고 이래저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도 할 겸 공원에서 송별 바비큐 파티를 했다. 우리는 2일 후 골드코스트로 떠난다.
아침부터 고기도 굽고 소시지도 굽고 찾아와 주시는 많은 친구들과 아쉬운 인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남편은 아침부터 너무 많은 양의 술을 마셨고, 남편의 친구들도 엄청 취했다. 손님들도 파티에 계속해서 술을 들고 왔다 그리고 그날 파티에는 남편의 정말 특별한 친구도 참석했다.
그 친구는 정말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법대생에 심지어 큰 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게 되어서 몇 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도 만취 상태에서 차에 뛰어들었던 거고 감옥 생활을 성실하게 잘했던 터라 얼마 전 집행유예로 나와 있던 상태였다.
그날 거기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만취 상태였다. 해가 저물어 갈수록 분위기가 너무 까맣게 변해갔고 그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실제로 취해서 고주망태가 된 사람을 직접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물론 대학교 때도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실제로 주량이 많이 세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대학교 과 모임 오리엔테이션 엠티 등등 많은 술자리에 참석하고 했지만, 그저 술 먹고 토하고 넘어지고 쓰러져 자는 사람들을 본 적이 대다수였다. 고주망태가 되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영화나 TV로만 봤지, 마주 대하고 내가 핸들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픽업해 갔고, 유일하게 많이 취하지 않았던 남편의 친구(돈 없을 때 장도 봤다 주고 결국 저녁도 사주고 간 친구)가 뒷정리를 도와준다며 여자친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와줬다. 그 친구 커플과 남편과 나 그리고 집행유예 상태였던 그 친구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어디선가 전화를 받더니 억울하다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라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벽에 박힌 수건걸이, 휴지걸이 등을 다 뽑아버렸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정말 너무 놀랐다. 남편을 말리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남편은 다친다면서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들어서 화장실 밖으로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바로 주먹으로 거울을 빵 쳤다!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막았다. 피범벅이 되었을 손을 상상하니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겨우 용기를 내서 손가락 사이에 간신히 한쪽 눈을 놓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엥? 그런데 거울이 안 깨졌더라. 아… 벽에 딱 붙어있는 거울은 생각보다 잘 안 깨지는구나.. 신기해하던 찰나에 남편은 더 날뛰며 문짝이란 문짝은 다 뜯어버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날뛰는 남편을 남편 친구들이 그만하라고 말리자 남편은 더 크게 소리쳤고 남편 친구들도 제압하기 힘들어 보였다. 기찻길 옆 아파트에서 항상 들리던 소음도 아득하게 들렸다. 이미 까만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는데 하얀 무음이 나를 소용돌이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까매서 보이지 않고 너무 하얘서 들리지 않았다. 까맣고 하얗고 하염없이 치는 소용돌이에서 헤집고 나올 길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문 밖에서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서 겨우 정신이 들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힘 있는 소리였다. 그 무게 있는 작은 소리가 겨우 나를 소용돌이에서 꺼내주었다. 문을 통해 밖을 보니 완전 무장한 경찰들이 미식축구 선수들이 쓸 법한 헬멧까지 쓰고 우리 집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찰이 왔어하고 얘기하고 얼른 베란다 밖 창문을 슬쩍 보았다. 족히 10대는 넘어 보이는 경찰차들이 반짝반짝 등을 켜고 기찻길 옆 길고 긴 길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해????????????????????????" 작은 소리로 소리쳤다.
그때 남편이
"얘 지금 집행유예라 어떤 일에라도 연루되면 다시 바로 감방 간다 너 말 잘해라!!" 하는 것이었다.
"뭘? 뭘????? 잘하라고!!!! 어떻게 하는 건데!!!!!!!!!!!!!"
집행유예인 친구는 얼른 침대로 가서 누웠고, 문 밖에서는 더 이상 작은 노크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문을 부순다고 경고한다고 했다. 얼른 문을 열었다.
경찰들이 그 작은 문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했다. 가장 먼저 나를 잡았다. 괜찮냐고 내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진짜 괜찮아" 나의 두 입꼬리 양쪽 근육을 최선을 다해 끌어올려서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했다.
"우리 내일모레 골드코스트로 이사 가서 송별 파티를 했어. 그런데 남편이 너무 서운해서 친구랑 힘자랑하면서 장난치다가 좀 과격해졌어. 정말 괜찮아."
그러던 중 경찰 중 한 명이 남편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남편이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던졌다. 경찰이 이런 무례한 태도는 지금 한 번만 수용해 준다며 경고했다.
'뭐야 나더러는 잘하라더니 미친 거 아니야????’
실실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미친놈이구나 싶었다. 그 순간 어떤 여자 경찰이 나를 잡았다. 종이를 보여줬다.
종이에는 아주 쉬운 영어로
-네가 지금 안전한 상태니? 네가 나한테 신호를 주면 돼. 위험한 상태면 나한테 표시만 하면 돼. 눈을 두 번 깜빡여. 그럼 모두 다 체포해서 데려갈 거야-
그러더니 내 얼굴 양쪽을 두 손으로 잡았다. 사람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대하려니 부담스럽고 겁이 덜컥 났다. 필사적으로 남편 친구를 다시 깜빵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하니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경찰들이 작은 집에 모든 공간을 무거운 워커로 뚜벅뚜벅 걸으며 왔다 갔다 했다. 저 워커 발소리가 쿵쿵쿵 소리가 내 맘을 더 주저앉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에 여기 아파트 주민 전체가 신고했다고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시끄럽게 하면 모두 다 체포하고 벌금을 많이 물게 될 거라고 경고하고 간다고 했다.
나한테 어떤 여자 경찰이 작은 명함을 주고 본인들이 돌아간 후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하고 내 폰을 손에 쥐어주고 모두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목이 메어서 어떤 작은 소리도 내 목구멍을 통과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소리를 비집고 내면 둑이 터져버려서 걷잡을 수 없게 될까 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묶어 두었다. 마음속으로만 ‘남편 친구를 감방에 보내지 않았어 정말 잘했어. 잘했어. 잘했어..'를 소리 내지 않고 맘에서만 재생이 되었다
취하지 않았던 친구가 집행유예인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겠다며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냥 계속 앉아있었다. 행패를 부리고 난 남편은 지쳤는지 잠이 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남편 친구가 돌아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본인 여자친구네 집에서 자는 게 좋겠다며 거기서 자고 있으면 본인이 모든 걸 정리해 놓겠다고 했다. 나는 어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그 손에 이끌려 그 여자친구네 집에 갔다.
너무 춥고 달달 떨려서 전기장판에 몸을 눕히려는 찰나에 전화가 계속 왔다. 아무래도 다시 집으로 와야겠다면서 다시 데리러 온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잠깐 깨서 자기 와이프가 오늘 자기가 사고 쳐서 도망갔냐면서 다시 난리가 났단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같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기다린다고 했다. 여자친구분과 다시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남편이 막 뛰어온다. 넘어지고 다시 뛰고를 반복해서 가까스로 나에게 왔다. 나를 들고 뱅글뱅글 돌았다. 우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에 남편 친구가 우리를 내려줬다. 남편 친구에게 이제 나 괜찮으니 오늘 고생 너무 많으셨다고 집으로 돌아가시라 하니까 끝까지 거실에서 자겠다고 한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진짜 이 정도 했으면 저 사람도 잘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하니, 전화기 손에 들고 있겠다면서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 주라고 하고 돌아갔다.
남편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우리 뭐 별일 없었잖아 집 좀 정리할까? 하며 술병을 치우겠다고 한다. 내일 밝을 때 치우자고 해도 내일 우리 와이프 힘드니까 치우고 자야 한다면서 바닥에 힘이 없는 상자에 술병을 가득 담았다.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리러 가는 길에 3~4걸음마다 바닥에 상자의 틈으로 맥주병이 한 개씩 땅땅 떨어진다. 내 가슴 저기 언저리에 땅땅땅 금이 가는 느낌이 든다. 남편을 부축하느라 깨진 병을 쳐다볼 수도 없다. 한 5~6병은 깨뜨렸나 보다. 남편 재우고 와서 치워야지 하고 얼른 돌아왔다.
남편을 던져버리듯 소파에 던지고 나도 잠깐만 앉아 있다가 내려가야지 하고 침대에 앉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해가 떠버렸다. 깨진 병 치우려 미친 듯이 내려가니까 벌써 싹 치워져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깨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굿모닝 하며 집을 치우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