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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너, 서방님 덕분에 눈뜨고 사는거야!

1. 환할줄 알고 호주에 왔는데 먹고 살 길이 없네?

by 휴리네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깜깜한 이 집의 분위기가 적응이 된다. 골드코스트의 소소한 일상에 슬며시 젖어들어갔다. 어머니의 사업 투자 철회로 갑자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와중에 둘째 아주버님이 돌파구를 제시하셨다. 본인이 정말 맨바닥에서 매일 발품을 팔며 따낸 청소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셨다. 딱히 직업이 없었던 오빠에게 둘째 아주버니께서 기회를 주신 거였다. 본인이 차린 청소회사의 파트너를 바로 제안해 주셨다. 그때는 그게 고마운 건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그렇구나.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된 건지 아닌 건지 아무 생각이 없다. 우선 나더러 학교 가서 영어 공부 좀 하고 새벽에 나와서 청소를 하라고 했다. 청소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할 만한 일이니까 같이 하자고 하시겠지? 라고 생각했다.


골드코스트에 있는 어머님 댁에 사는 둘째 아주버님 내외가 자주 왔다 갔다 하시고 형님이 음식도 자주 해다 주시고 챙겨주셨다. 우리 형님은 일본 사람인데 못하시는 게 없다. 심지어 요리도 잘하신다. 해주시는 음식마다 진짜 다 맛있었다. 며칠 후 아주버님이 만나자고 하신다.


"제수씨, 청소할 수 있겠어요?"

"왜요? 엄청 힘든 일이에요?"

"아버지랑 제수씨도 같이 청소할 거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제수씨는 그런 일 할 만한 사람 아니라고 그런 거 시키지 말라고 하시던데요?"

"아, 그래요? 뭐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어요."

"누구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고 누구는 아닌 사람인가요? 귀하게 자란 분이라 그런 거 시키면 안 된다는데…."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한 번 해볼게요."


내가 못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버님이랑 내가 통화를 해서 컴플레인을 한 것도 아닌데 아주버님의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아서 뭔가 가슴 한켠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는 한국에 전화하는 게 굉장히 번거로웠다. 국내전화도 무제한으로 전화할 수 있는 플랜이 없었고, 심지어 국제전화카드를 선불로 사서 한국에 전화를 해야 했다. 남편이 항상 지갑에 20불짜리 전화카드를 사서 열심히 넣어주었지만 얼른 끊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마음 터놓고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의 소통은 인터넷 메신저로 대신했다. 그 당시 친구들은 거의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컴퓨터에 로그인되어 있었고, 외로움의 허기는 메신저로 채팅하며 겨우 달랬던 것 같다.


골드코스트에서는 남편도 별로 친구가 없었다. 거의 24시간 같이 붙어서 놀았다. 그때 살던 유닛의 뒷마당이 작은 강가의 물에 인접해 있었다. 조그만 낚싯대 두 개 던져놓으면 손바닥만 한 도미가 제법 잡혔다. 뒷마당에서 바로 낚시를 하는 것도 신기했다. 잡힌 고기도 구워 먹고, 매일 한국 TV 프로그램이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 빌려다 보고, 인터넷으로 게임하고, 컴퓨터 책상에 붙어 앉아서 배고프면 밥이랑 김만 싸서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김치랑만 먹고 그게 그렇게 맛있고 재밌었다. 아예 밤새워서 게임하다가 새벽에 청소 갔다 와서 늦은 오후까지 자고. 진짜 재밌어서 낄낄 대는데 항상 묻는다.

'재밌냐고. 많이 외롭냐고. 한국 가고 싶냐고'

재미도 있었고 조금 외롭기도 하고 한국도 가고 싶었지만, 나에게 물어볼 때마다 제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길 바라는 눈동자에 대고 솔직한 나의 심정을 터놓기가 어려웠다. 항상 괜찮다고 했다.


영어학교에 등록했다. 이민자 영어 코스였다. 그래서인지 내 또래의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대다수였다. 간혹 나보다 5~6살 많은 언니들이 보였다. 같이 밥도 먹고 어울리긴 했지만 딱히 엄청 친해지지는 않았다.


간혹 엄마랑 통화를 했다. 그래서 집은 샀냐고 계속 물어보신다. 그렇게 하다가 돈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셨다. 집 구했다고 돈 보내줬는데 왜 아직도 안사냐고 하셨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언제 집 사냐고 하신다고.

갑자기 골드코스트에 올라오기 전에 잠깐 둘러봤던 집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네가 별로 안 좋아해서 안 산 그 집 두 배 가까이 올랐어' 음... 내가 별로 안 좋아해서 못 샀다고? 한국인과 중국인 밀집지역에 있던 집이었다. 교통 밀집지역이었고 상권이 발달한 지역에 2층 유닛이었다. 우와 예쁘다 하진 않았지만, 싫다 좋다 말했던 기억이 없다. 아, 아깝네… 그 집 사서 렌트를 주고 골드코스트 왔으면 좀 수월했을 텐데. 아쉽다.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선 이 집 저 집 보러 다녔다. 뭘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의 의견이 사라졌다. 나의 태도에 따라 뭔가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경험을 한 후라 더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집 구매를 담당해줄 브로커도 만나고 집을 사나보다 했다.


그러던 중 지난번에 사둔 왕복 비행기 티켓이 만료되는 날짜가 다가왔다. 티켓도 있는데 잠깐 한국에서 라식수술하고 오라고 어머님의 친한 지인이 압구정동에서 큰 안과를 하시는데 결혼 선물로 수술을 해주신다 하셨단다. 진짜 신났다. 그래 한국에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겠노라 하고 한국에 갔다.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매일매일 맛있는 것도 먹고 병원에서 가까운 언니 집에서 띵까띵까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시력 교정술은 생각보다 많이 아팠지만 며칠이 지나자 렌즈를 끼고도 보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졌다. 세상이 이렇게 반짝반짝하던 곳이었어? 정말 다시 새 삶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시력이 정말 나빴던 터라 화장실에서 렌즈를 빼고 침대로 올 때면 이리저리 항상 부딪혀서 작은멍들을 항상 달고 살았고 다시 렌즈를 낄 때까지 눈앞에 어떤 것도 구분하지 못했었다. 하드렌즈를 끼면 눈알 옆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렌즈가 까만 눈동자에서 벗어나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눈을 감았다가 뜨기만 해도 잘 보인다. 나는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행복했다. 날아다닐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곳인지 몰랐다.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남편에게 진짜 좋다고 행복하다고 전화가 올 때마다 자랑을 했다. 남편이 "너, 서방님 덕분에 눈뜨고 사는거야. 나한테 잘해라~ 내가 너 눈까지 뜨게 해줬어. 나 아니였으면 너 아직도 돌돌이 안경쓰고 여기저기 멍투성이였어." 한다.


이제 눈이 회복될 때까지 마지막 점검일까지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된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나의 초등학교 친구랑 남편의 어릴 때 유학생 친구랑 소개팅도 시켜줬다. 만나자마자 둘이 사귀기로 했단다. 골드코스트에는 남편의 사촌누나가 다니러 와있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 친구가 시드니에서 잠깐 놀러 왔는데 그들도 행복한 기류가 흐른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사랑의 큐피드가 된 것 마냥 행복 전도사가 되듯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있으니 온갖 친구들이랑 아침저녁 몇 탕씩 약속을 정해가며 만났다. 친구들도 온갖 맛집이며 예쁜 곳에 이리저리 나를 데리고 가기 바빴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전화하기도 번거로운데 아침저녁으로 매일 전화가 왔다.

"오늘은 누구 만나냐, 왜만나냐, 어디에서 뭐 먹냐." 전화를 끊지도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친구랑 친구 남친이 데리러 왔다고 맛있는 거 사준다는데 나가지 말라고 한다. 엄청 싸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내 친구가 그 남자친구를 처음 보여준다고 한날이었는데 남자친구랑 우리 언니 집 앞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결국 돌아가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이 이제 아버님 집에서 지내다가 호주로 돌아오라고 했다. 협상이 안됐다. 엄마도 언니도 시집가면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면서 잠깐이라도 아버님 댁으로 가라고 했다.


그땐 어머님이 호주에 계시니 집에 아버님밖에 안 계시는데 거기서 지내기 불편할 것 같았는데 아버님이 세상 편하게 해주시더라.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나가서 운동하시고 아침에 출근하시고 집안일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요리도 잔뜩 해놓으셔서 맛있는 것도 많았다.


아버님이 심심한데 집에 있지 말고 친구들 만나고 놀다가 친구들도 데려오라 하셨다. 친구들 저녁도 사주시고 술도 잔뜩 사주셨다. 아버님은 술을 진짜 잘 권하신다. 어른들이랑 술 마실 기회가 전무 했던 내 친구들은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너무 취한 나머지 내 친구들이랑 나랑 전부 아버님 집에서 쓰러져 자기도 했다. 그런 날조차도 아버님은 새벽에 일어나셔서 운동을 가시고 심지어 해장하라며 콩나물국까지 끓여 두시고 출근을 하시더라. 며칠을 지내다가 호주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엄마 집에 돌아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연락이 왔다. 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곳에 집이 나왔다고 했다. 이 집이 경쟁이 붙어서 빨리 사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금 계약해야 할 것 같다며 통보해 왔다.


전화기 넘어로 얼마나 우리가 운이 좋은지, 이게 감사한 기회인지 모른다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바닷가 한가운데 중심에 있는 유닛인데 몇 년 안에 개발이 될 곳이라 한다. 골드코스트는 바닷가에 인접해 있다. 파도가 좋은 곳이라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이다. 그래서 서퍼스파라다이스라 불린다. 그중에서도 이 집은 전 세계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서핑 비치에 이런 가격에 살 수 있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라면서 집을 산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지금 급한데 내가 한국에 있으니 그냥 본인 이름으로 집을 산다고 했다. 나는 그러냐고 알겠다고 했고,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리고 멍청해서 내가 내린 그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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