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 할 줄 알고 호주에 왔는데 먹고살 길이 없네?
골드코스트에 돌아왔는데, 깜깜한 집이 너무 적막하더라고.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영화 '마스크'에 나오는 잭 러셀이라는 종의 강아지였는데, 장난기가 어마어마하고 정말 똑똑한 강아지였다. 남편이랑 실랑이가 장난 아니었다. 남편 신발에 오줌을 싸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자는 자리에 이불 안에 들어가서 똥이랑 오줌을 싸놓았다.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이불을 걷고 침대에 들어왔는데, 놀라서 소리 지르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강아지를 딱 봤다. 활짝 웃으며 쳐다보던 눈빛, 그때 내가 봤던 모키의 표정은 '자기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된 그 자체였다. 모키랑 적응이 되어 갈 무렵, 우리가 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정말 동양 사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동네에 집이 있었다. 말 그대로 아름답고 멋진, 정말 끝없는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었다. 오래된 집이라 조그만 방 두 개에 하루 종일 햇빛에 온 집이 지글지글 불타오르다가 저녁이면 바닷바람에 조금 열을 식히는 느낌이랄까, 에어컨이 없는 집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이니까 감사하고 예뻐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아주버님이 나는 일도 잘 못하는데 본인들이랑 반반 가져가는 게 너무 억울하시다면서 나보고 빠지라 하셨다. 뭐, 어쩌겠어. 본인이 차린 회사 반반 나눠주다고 했던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였고, 일 잘 못해서 잘린 건데. 그래서 하던 영어 공부나 마저 하자 하고 있었다. 어학원 다녀오고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하고 놀다 보니 아주버님이 맨날 뭐라고 하셨다. 바닷가에서 서핑이라도 하라고 새벽에 나오라고 여러 번 불러내셨다. 성화에 못 이겨서 몇 번 해보려고 했지만 몇 번 파도에 휩쓸리고 나니 너무 무서워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쯤 시드니에서 평생 살았던 남편인지라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다. 친구들이랑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던 도중에 어린 나이인데 벌써 집도 사고 좋겠다, 어떻게 집을 샀느냐 라고 물어보더라. 남편이 자세히 설명하는데, 너무 황당했다.
"이거 전부 은행집이라며 겨우겨우 디포짓만 해서 샀다"
라고 말하는 거다. 엄마가 준 돈에 시드니에서 가게 정리하고 온 돈에 그래도 목돈이 있는데, 돈이 없다고? 이게 무슨 말인지... 친구들이 가고 나서
"아니, 왜 돈이 없냐고, 왜 전부 은행집이냐고,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라고 하니까,
"골드코스트로 이사도 오고 이래저래 돈을 썼는데 어쩌라는 거냐"
라고 오히려 되묻더라. 엄마가 준 돈의 반의 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집 돈 갚기 힘들다고 했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한테 일언반구 말 한마디 없었는데, 그것도 친구들이랑 대화하던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나는 너무 황당한데 본인이 뭘 잘못했냐고 오히려 화를 내더라. 나는 돈을 본 적도 없는데, 내가 그렇다고 돈을 쓰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정말 너무너무 황당한데 뭐라고 따져 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본인이 자기 혼자 빚을 못 갚겠다고 했다. 한달에 두번 은행에 돈 갚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보고 놀지 말고 일하란다.
뭔가 억울했는데 당장 은행에 이자가 나가야 한다는데 어떻게 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새로 열린 야채 가게에서 일을 했다. 새로 오픈한 가게라서 몇십 가지 야채 과일들이 가격이 매일 달라지는데, 시스템에 가격이 안 들어가 있는 거다. 아침마다 그걸 외우고 정말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했다. 정말 10시간씩 일하면서 영어를 잘 못한다고 캐시로 아주 작은 돈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영어 못하는 외국인들을 세금도 안 내고 현금으로 아주 적은 금액만 주고 고용하던 시절이었다. 10시간에 쉬는 시간 30분, 그 안에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해야 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돈이 진짜 무서운 거구나,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오빠는 새벽에 청소 갔다 와서는 그 이후에는 서핑하고 놀고 술 마시고 하루 종일 놀더라.
어느 날은 홈론이 나가야 하는데 돈이 있었는데, 모자라는 돈을 메꾼다고 그 돈을 다 꺼내서 갬블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돈을 다 잃고 왔다.
"돈 모자라서 그렇게 한 건데, 뭘 잘못했냐"
며 술 마시고 화내는 모습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말이 돼? 그래서 그때 남편의 통장을 보게 되었다.
목돈이 있던 계좌에서 술 마시고 갬블하는 곳에서 계속 계속 인출해서 썼던 기록들이 보였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두룩.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듯이, 갬블하던 곳 현금 인출기에 수수료도 비싼 곳에서 썼던 돈의 리스트들이 우수수수수수 쏟아져 내려 보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너무너무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싸움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해? 욕을 할까, 소리를 지를까? '
"왜 이렇게 한 거야? 이제 뭐냐고? 돈이 이래서 없었던 거네."
" 남자가 술 마시고 갬블도 좀 하고 그럴 수도 있지,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
고 그러더라. 화를 내고 싶은데 어떻게 내는지 모르겠다.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열이 펄펄 난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주말 내내 그냥 누워서 잠만 잤다. 나중엔 아주버님까지 와서 자기가 잘 말해볼 테니까 화 푸시라고 하시는데, 남편이 자기 형한테 자기가 갬블 해서 돈을 얼마나 날렸는지 제대로 말을 다 안 했더라. 그냥 좀 했는데, 쟤가 유난 떤다고. 형한테 혼날까 봐 나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못했다. 남편이 형한테 말해서 돈을 빌려서 이자를 해결했는지, 그땐 그렇게 상황을 넘어갔다.
하소연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21살의 바보 같은 뇌 기능으로 처리한다는 게 무리였다. 어른하고 상의를 해야 하는데, 혹은 그냥 누구한테라도.
그랬으면 좀 달랐을까? 판단력이라는 게 생겼을까? 호주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지인들과는 메신저로 잠깐씩 대화하는 게 전부였고, 절대로 그것으로는 설명도 할 수 없고 위로가 되진 않더라.
한 3일 끙끙대고 고민하는데 남편이 자기가 잘못했다며 닭죽을 끓여 왔다, 깐족깐족 장난치면서. 안 그럴 건데 왜 그러냐고, 별일도 아닌데 그만하라고 하면서. 정말 별일이 아닌데 내가 유난을 부린 걸까? 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한국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팔면 넌 한국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라면서 나를 엄청 꼬셨다.
"네가 번 돈은 다 너 용돈 하라고, 얼마나 좋아. 한국에 자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그래서 한국에 자주 갈 거라는 기대감에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시드니에서 남편을 소개해줬던 언니가 골드코스트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장사를 해보자며 찾아왔다. 그래서 너무 신났다, 외롭던 중에 한줄기 빛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언니랑 유아교육을 같이 공부하면서 한국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팔 궁리를 열심히 했다. 언니가 시드니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사장님에게 물건도 받기로 하고, 집 근처 쇼핑센터에서 액세서리를 팔던 한국 사람이 하던 작은 스툴을 계약하고 한국에 갔다.
막상 한국에 가니까 막막했지만 길이 있을 거라면서 막무가내로 다녔다. 평생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시던 내 친구 와니의 부모님 덕에 남대문은 제법 다녀본 지라 그냥 열심히 다녔다. 정말 역대급 추운 겨울이었는데 와니랑 새벽마다 남대문시장을 열심히 다녔다. 그래서 얼추 물건을 추려놓고 밤에 어머니한테 남편이 집을 담보로 재융자를 받은 돈을 어머니한테 맡겨놓았던 돈을 찾으러 갔다.
그날 어머님은 잠깐 한국에 다니러 오신 큰 형님이랑 족발을 시켜드시고 있었다. 술도 한잔 하셨고. 돈을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스르르 닫히는 현관문 때문에 안에서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깔깔깔 웃으면서 어머님이 형님에게
"입술 저렇게 다 터져서 지가 뭘 한다고 꼴값을 떨고 다닌다니. 쪼그만 게 뭘 안다고. 저렇게 하다가 지 엄마한테 또 돈 달라고 하겠지 뭐. 나는 모르겠다."
고 하시는 소리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정말 하늘이 쩍 하고 갈라지더라. 나한테 족발 먹고 가라면서 쌈까지 싸주고 입에 넣어주며 잘 가라고 인사하던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말하지? 정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서 와니랑 남대문에 바로 가기로 했는데,
"와니야 나 오늘은 도저히 못 가겠어.."
그러면서 버스를 타고 와니네 집으로 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정말 너무 속상했다. 따지지도 못하고.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했을까, 그 추운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와니 덕분에 일을 마무리했다. 같이 장사하기로 했던 언니도 와서 품목도 거래처도 정했고, 와니가 강력 추천했던 네일 스티커도 샀다. 그리고 액세서리며 스티커며 내 깜냥에 팔리겠다 싶은 물건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호주로 돌아왔다.
같이 장사를 하기로 한 언니는 한국에서 좀 시간이 걸렸고, 나는 먼저 돌아와서 남편과 주말만 열리는 마켓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주말 마켓에 스툴을 받으려면 새벽 3시 반에 마켓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가 아침 6시부터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날 물건을 정리하고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새벽 내내 기다렸다가 물건을 풀고 손님의 선택을 받길 기다렸다. 그런데 처음 물건을 풀었던 그 순간 호주 할머니에게 목걸이 세트를 팔았고, 그때 이후 단 한 번도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 스툴을 대여한 대여비도 못 벌었다.
그렇게 3주째 고생고생을 하며 마켓에 나갔는데 하루 종일 2불짜리 물건 한 개를 판 거다. 정말 그때부터 오빠의 폭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따위 물건 하려고 집을 걸고 장사를 했냐"
"네가 다 말아먹었다"는 둥,
"네가 우리 집 날려먹은 거라고" 쉬지 않고 화가 나서
"대출받은 돈 네가 책임지라"는 둥.
정말 너무 황당했다. 그냥 용돈 벌이로 하라고 편하게 하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저렇게 말한다고? 너무 무서웠고,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너무너무 떨리는 통에 무릎에 붙어있는 앞뼈가 타닥타닥 떨다가 떨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욕을 퍼먹으면서 물건을 만지작만지작하는데, 갑자기 네일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내 손톱에 하나 뜯어서 쓱 붙였는데
'예쁘다!!!!
'이게 손톱에 있으면 사람들 생각이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홀린 듯이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스툴 골목으로 나갔다. 사람들 손만 보다가 빨갛고 예쁘게 손질된 손톱이 있는 여저가 보였고 여자의 손을 덥석 잡고 양해도 구하지 않고 손톱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던 것 같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에 처음엔 당황한 손님이 화를 내려고 하던 순간에 그걸 보더니 눈빛과 안색이 달라졌다.
활짝 핀 얼굴로 좋아하는 거다.
그때
'이거다' 싶었다.
'이제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