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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건 내공이 커!!

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 차리네?

by 휴리네

매일 일만 했었다. 주중에는 학교 다니고 쇼핑센터 관리하고 주말에는 마켓에 나갔었다. 몇 달만 더 버티면 학교도 마무리되고, 지금 돈도 잘 벌리고 있으니 길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단했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얼른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이상한 물건을 가져왔다고 구박했던 건 생각도 안 나는지, 이제는 대박 물건을 해왔다면서 자신이 난리 쳐서 내가 손톱에 붙일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본인 공이 크다고 얼마나 큰소리를 치는지...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 웃으며 넘어갔다.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에 죽자고 달려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부부가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꾸려나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정말 감사했다. 정말 행복했다. 몇 백 장 들고 왔던 30만 원어치 스티커가 몇 주 안에 동이 났고, 내 친구 와니가 열심히 물건을 사서 배송해 줬다. 나중엔 와니가 사서 보내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스티커를 판매했던 사장님이 공장에서 제작해서 바로 왕창 보내줬다. 가지고 있는 디자인 모두를 말이다.


네일 스티커가 도착하자마자 이리저리 연구해 보고 샘플도 만들면서 하루 종일 스티커만 붙들고 살았다. 주말에 마켓에 나가서 새로운 디자인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니까, 단골손님들이 생겼다. 새로운 디자인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명함도 많이 받았다.


내가 처음 시작했던 마켓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마켓이었다. 손님도 많고 장사하려는 사람도 많아서 규칙이 정말 엄격했다. 마켓에서 장사하려면 주중에 예약을 해야 했고, 토요일 새벽 5시에 순서대로 티켓을 나눠줬다. 앞 번호를 받아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메인 골목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3시부터 나가서 추운 곳에서 줄을 서야 했다. 얼마나 추운지 털옷을 껴입고, 털 신발을 신고, 이불을 둘둘 말고 남편하고 장사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6시부터 손님들이 오고 7시만 되어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호주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시작하고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우리 제품은 테이블에 그냥 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조건 손톱에 붙여줘야 이게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안 되는 영어로

"나 손톱 좀 줘봐" 혹은 "손톱에 마법 부려줄까?" 하면서 아주 빠르게 손톱에 스티커를 붙여주면, 이젠 이게 그냥 스티커가 아니고 손톱 위에 아트가 되는 거였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졌다. 당시 네일 숍에서 예쁜 디자인 하나를 손톱에 올리려면 보통 한 디자인에 5불 정도 줘야 했는데, 이 스티커 한 장에는 기본적으로 25개 이상의 디자인이 들어있으니 사람들은 정말 좋아하면서 달려들었다.


운이 좋았던 게, 스티커가 정말 잘 붙었다. 네일 스티커가 여기저기 많이 있었지만, 이 제품처럼 잘 붙고, 선명하고, 디자인 옆에 끈적이는 여백이 전혀 없는 제품이라서 손톱에 올라가면 사람들이 스티커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퀄리티는 없었다.


사람들 손을 붙잡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손톱에 붙여주면 행복한 얼굴로 제품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고객님들이 생기니까,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 손목을 낚아챌 수밖에 없었다. 손톱에 붙여진 샘플을 보고 눈에 불을 켜고 손님들이 테이블에서 스티커를 고르기 시작하는데,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샘플로 붙여줬던 스티커만 계산하고 빠지기가 바빴다. 그래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을 테이블까지 끌고 왔는데, 한 장만 팔기가 아깝더라. 그래서 주력 디자인 스티커를 포함해 한 장에 4불, 3장에 10불 했더니 10명 중 9명은 3장을 사 갔다. 손님들이 막 돈을 던져주며 3장 단위로 스티커를 샀다. 지불하는 돈의 단위가 동전에서 지폐로 바뀌고 하루 매출이 몇 배가 뛰었다.


이제는 샘플 디자인 외에 다른 2개를 고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의 50가지 가까운 디자인이 있었는데, 디자인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고르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 거였다. 그래서 연령대나 손톱 스타일에 따라 디자인을 추천해 주는 요령도 생겼다. 이제는 손톱에 붙여주는 사람, 디자인을 골라주는 사람, 돈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바빴다. 다행인 건, 샘플링을 멈추면 사람들이 이 제품이 뭔지 모르니까, 잠깐씩 쉬다가 다시 일할 수 있었다.


몇 주 하다 보니까 정기적으로 일해줄 직원도 고용하게 되었고, 일하는 시간, 업무 분담 등 요령이 생겼다. 그때부터 남편은 새벽에 내 스툴을 세팅해 주고 아침만 간단하게 먹고 놀러 다녔다. 비즈니스 하러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남편은 성격이 호탕하고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길을 걸어가다 눈이 마주치면 친구로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급하게 사러 가거나 할 일을 해야 하는데 눈 마주친 어떤 사람하고 이것저것 수다 떨어서 옆에 있는 나는 먼저 가버려야 할 일이 많았다. 수다쟁이 친화력으로 무장한 남편은 주말마다 마켓에 다니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다른 마켓 정보를 많이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은 주중에는 청소를 하고, 주말에는 다른 마켓을 다니기로 했다. 항상 본인이 비즈니스를 잘해서 정보가 많은 거라면서 고마워하라는 말은 잊지 않는다.


남편이 새벽에 나가서 번호표만 받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나보다 더 큰 박스를 옮기면서 열심히 일했다. 마켓 매니저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동양의 작은 여자가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일하는 모습을 안타까우셨다고 하시더니, 더 이상 새벽에 일찍 나가서 티켓을 받지 않아도 되게, 꽤 좋은 장소의 스툴을 정기적으로 렌트해 주겠다고 하셨다. 너무나 감사해서 소리 지르고 꼭 안겼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마켓에서 더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내 자리가 생기니까 무거운 박스를 옮기지 않아도 되지. 7시까지 여유롭게 출근해도 되지. 얼마나 감사해. 몇 줄을 편하게 박스도 거기에 놓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었다. 조금 일찍 가서 아침도 사 먹고 마켓 구경도 하고 꽃코너에서 꽃도 사고 과일도 사고 마켓에 나가서 일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 장사 끝나는 시간엔 내 스툴에 내가 매번 사는 꽃이 남았다면서 혹은 내가 좋아하는 펌킨숲이 남았다면서 가져다주시는 사장님들도 생기고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열심히 산다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장님들이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마켓 나가는 게 진짜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났던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힘들게 장사하는데 나만 특혜를 받았던 게 문제가 되었던 거였다. 사실 그랬다. 아주 메인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메인길에서 바로 들어오는 골목에 있는 좋은 자리였는데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티켓을 받아서 장사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은 내가 엄청 부러웠을 거다.


결국 그 스툴을 구매하지 않으면 다시 새벽에 나가서 티켓을 받아야 했다. 장사가 잘되었지만, 남편이 새로운 마켓으로 나가야 해서 내가 타야 할 중고차도 새로 사야 했었고, 장사에 필요한 물품, 스티커도 대량으로 주문하고 여러 샘플들 항공 운송비 등등으로 여러 비용이 발생해 돈이 부족했다.


그런데 당장 만불로 그 스툴을 구매하던지 아니면 2주 안에 짐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 몇 달 동안 새벽에 티켓 받으면서 장사했었는데 몇 주 편하게 일했다고 죽어도 3시에 못 일어나겠더라. 그래서 이리저리 짱구를 굴리고 있는데 어머님이 돈을 빌려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와 진짜 너무 신났다. 대신에 카드이자 이율로 갚아야 한대. 돈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는 거고. 가족끼리 돈관계는 더 정확하게 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차피 카드에서 돈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었고 대충 계산해 보니깐 2달 안에 갚을 수 있겠다 싶어서 어른이 말씀하시니깐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보다 하고 돈을 빌리고 스툴을 샀는데, 카드 이자 이율이 20프로래. 만 2천 불을 매주 갚아 나가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그래도 얼마나 감사해. 주말에 나가기만 하면 돈 세다가 손가락이 새까매지도록 돈이 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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