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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생각도 없는 멍청한 년이 들어왔네

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 차리네?

by 휴리네

매일매일 정말 바쁘게 사는 삶의 연속이었다. 학교 가는 날은 학교에 갔다가 쇼핑센터에서 돈을 수거하고 정산하고, 저녁 먹고 잤다. 학교에 안 가는 날은 쇼핑센터에 출근해서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을 하고, 직원들 주급 정산하고, 밥 먹고 잤다. 주말엔 새벽에 마켓에 나가서 일하고


그러던 어느 날, 졸업 과제 때문에 쇼핑센터에서 퇴근하자마자 정신없이 정산을 끝내고, 졸업과제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내 책상은 바닷가가 보이는 거실 한편에 있었고, 남편은 옆에 소파에 앉아있었다. 남편이 앉아 있는 소파 등 뒤로는 부엌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시더니 인사도 없이 부엌에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나는 과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준비 없이 어머니 말씀을 귀로만 들었다. 아버님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환갑 기념으로 아버님과 유럽 여행을 다녀오셔야겠다고 하셨다.


그 당시 어머니는 한국에 가끔 다녀오시긴 했지만, 호주에 주로 계셨고, 아버님은 평생을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서 생활하셨다. 아버님이 이제 곧 정년퇴직을 하셔서, 이번에 환갑을 기념해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호주에 오셔서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자식들이 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생각을 해봤다. 이 정도면 어머니도 만족하시겠지 싶어서, 내 깜냥에는 큰돈이라 생각한 5천 불 정도 준비하면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쌍욕을 퍼부으셨다. 정말 태어나서 그런 욕은 처음 들어봤다. 어머니가 그날 골프를 치고 오시면서 와인을 많이 드셨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 미친년이! 경우가 없는 년이네!! 지금 대학생 배낭여행 가냐? 5천 불로 장난하냐? 못 배워 쳐 먹은 년!"

손이 덜덜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을 슬쩍 봤는데, 그는 소파를 꽉 붙잡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여쭤봤다,

“그럼 제가 얼마를 준비해야 돼요?”

그러자 어머니는 “2만 불은 있어야지!”라고 하셨다. 너무 황당했다. 화도 나지 않고, 그냥 어이가 없었다. 원래라면 얼음이 됐을 텐데, 그때는 할 말이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물어봤다.


“어머니, 지금 제가 돈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만 불을 빌려서 카드 이자로 갚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 달러빚을 빌리던지 땡빚을 빌려서라도 돈 가져와야지 그 것도 안 하면서 네가 사람이야? 그것도 안 하면서 네가 사람이야? 부모님 환갑에 못 배워 쳐 먹은 짓 하면서 우리 죽으면 장례식장에 오지도 마!! 나쁜 년!!!” 하셨다.

그리고는 형님들에게 연락해서 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큰 형님은 시드니에 계시고, 둘째 형님 전화번호도 몰라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런 큰 행사를 하는데 연락처 알아보고 해결해야지! 남자들 사이에 큰소리 나지 않게 안에서 잘 해결해야지! 그게 기본이 있는 년이지, 생각도 없는 멍청한 년이 들어왔네!”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상상도 못 한 상황이었다. 너무 답답해서 말도 못 하고, 정말 힘들었다. 내가 진짜 멍청한 년인가, 현명하지 못한 사람인가 자책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이 년 저 년’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그런 욕을 듣다 보니 속상하고 수치스럽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내 눈치만 살피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우 24살이었다. 그냥 또 라면 먹고 잤다.


며칠 후, 둘째 아주버님한테 연락이 왔다. 두 부부만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동네 펍에서 네 명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주버님이 갑자기 물으셨다.
“재수 씨, ‘네’ 할 줄 알아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어머님이 말씀하시면 네라고 안 해요? 어른이 말씀하시면 네하고 배울 줄 알아야지!"

"우리 와이프는 나보다도 나이도 많은데 항상 '네'하고 배우는데 "

어린 게 '네' 하는 법이 없다고 아주버님이 엄청 혼내셨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너무 화가 났다. 평소 언성을 높여 누구하고 언쟁을 나눠 본 적이 없던 나는 흥분한 상태에서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했다. 남자들 사이에 큰소리 나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데 너무 억울해서 내 속 안에서 큰 목소리가 막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형님, 어머니가 유럽 여행을 가셔야 하니까 2만 불 만들어와요 ‘네’라고 하고 따지지 말라고 대답하세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소리 지른 것 같다.

그랬더니 아주버님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라며 내가 이래서 한국여자를 싫어한다면서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기까지 하냐면서 나한테 더 크게 역정을 내셨다.


너무 황당했다. 내가 당한 얘기를 말했는데, 그걸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시다니!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 시끄러운 펍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테이블에 꽂히도록 소리소리를 질렀다.


“나는 태어나서 누가 나한테 이년 저년 하는 거 처음 들어봤어요! 어머니가 유럽여행가야햐니까 2만 불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스툴 산다고 만 불 빌렸는데, 카드 이자로 만 2천 불 갚으라고 하셔서 그것도 반밖에 못 갚았다고요. 이걸 내가 지어냈다고요?”


옆에서 깜짝 놀란 남편에게 소리쳤다.

“너도 옆에서 다 들었잖아! 말해봐! 왜 지금도 아무 말도 못 해?”

그제야 남편이 입을 떼었다.

“엄마가 썅욕 하면서 말하는 거 알지? 이것보다 심하게 말했어. 2만 불 해오라고 했어.”


그 순간, 아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췌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던 큰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던 펍의 큰 음악소리만 우리 테이블에 머물렀다.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둘째 형님이 아주버님에게 일본어로 설명하시는 것 같았다. 한국말을 잘하시지는 않지만, 이해는 하실 줄 아셨던 형님은 아주버님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주버님은 한참 고민하더니 “재수 씨, 오해했네요. 미안합니다. 어머니 얘기만 듣고 제가 재수 씨한테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너무하셨네요. 진짜 억울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셨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우리는 아직 형편이 좋지 않은데 2만 불 빚을 더 질 수 없어요. 꼭 환갑잔치를 이렇게 해야 해요?” 하며 하소연을 했다.


둘째 형님이 꼭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가족 누구도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와도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대화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은 굳게 닫혔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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