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차리네?
아주버님께서 아버님의 환갑잔치를 계획하시며,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 덕분에 나는 모든 상황에서 빠지게 되었다. 몇 달 후의 일이니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그냥 나는 또 나의 일상에 파묻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무렵, 항공으로 20박스씩 물건을 들여와도 판매량을 맞출 수 없을 만큼 장사가 잘됐다. 두 방짜리 홀리데이 아파트에 물건을 쌓아둘 공간도 부족했다. 어머니에게 빌린 돈도 순식간에 다 갚았고, 이제 슬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돈이 굴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남편은 예전에 다이아몬드 도매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결혼기념일에 보석을 선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혼하면서도 기념일마다 본인이 액세서리를 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첫 결혼기념일 때는 골드코스트로 막 이사 온 직후라 돈도 없고 힘든 시기여서 선물이 없었다. 그래도 기념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고, 야채를 잔뜩 싸서 월남쌈이라도 해 먹자며 일 끝나고 우리 강아지 모키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탕탕 거리는 꼬진 빨강 봉고차를 타고 캠핑을 떠났다.
그런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배가 고파서 가는 길에 근처 공원에서 음식을 해 먹으려 물을 끓이려고 했지만, 가스보틀이 비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브웨이를 두 개 시키고 차에 넣어두고 가스 보틀을 충전하러 주유소에 다녀왔다.
그런데 모키가 너무 배고팠던지,
비닐 안에 있던 서브웨이를 꺼내서,
유산지에 잘 감싸져 있던 빵을 꺼내 먹었다.
심지어 아주 야무지게 매운 할라피뇨만 유산지 위에 딱 올려놓고 나머지는 모두 먹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황당하고 웃기던지! "엄마 미안해, 내가 너무 배가 고팠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원래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나조차도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다시 돌아가서 더 사려고 했지만 그 사이 마감이 되었다며 결국 서브웨이는 다시 사지 못했고, 배고픈 배를 움켜잡고 우리는 캠핑장에 가서 라면을 먹었다. 얼마나 맛있고 웃기던지. 배부른 모키는 사료도 먹지 않고 바닥에 등을 대고 쿨쿨 잘도 자더라. 돈도 없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지만, 모키 덕분에 웃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며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정말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좀 생긴 남편은 이번 결혼기념일에 다이아 팔찌를 선물했다.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고, 준비해 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나는 팔찌를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손목 잡히는 느낌이랄까 손목에 무언가 감기는 게 싫어서 시계도 못 차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할 때도 남편은 시계를 샀지만, 나는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있다면서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게 감동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남편에게 팔찌를 사줬냐며 난리를 치셨다. 우리가 쓰던 방이 거실 식탁 바로 앞에 있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이 새끼가 어디 감히 엄마한테 먼저 보석을 사줘야지! 어떻게 와이프에게 먼저 줄 수 있느냐! 싹수없고 경우도 없고 미친놈을 키웠네..."
나는 남편이 실수한 걸까? 어머니께 먼저 드렸어야 했나 싶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저는 다이아 팔찌 아직 관심도 없고, 과분한 것 같아요. 사실 팔찌도 좋아하지 않아요. 이거 어머니가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하면서 팔찌를 건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가느다란 다이아 팔찌가 나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걸 누가 해? 생각 좀 하고 말해! 니건 3캐럿도 안 돼 보이는데, 5캐럿은 되어야 내가 하고 다니지!"
"네? 5캐럿이요?"
"너희가 부모 공경도 할 줄 모르고 그 따위로 살아서 잘될 것 같아?"
정말 역정이 나셨다. 너무 화가 나셔서 의사소통이 될 것 같지 않다. 남편과 상의했다. 도대체 5캐럿 팔찌가 뭐냐고 물었더니, 다이아몬드를 빙 두른 총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테니스 팔찌라고 했다.
그래서 그게 얼마냐고 묻자, 어머니가 원하시는 건 약 1만 5천에서 2만 불 정도라고 했다. 어머니가 너무 화가 나셔서 결국 팔찌를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자고 했다. 짜증도 났지만 어휴 어쩔 수 없다. 마련해 보자 했다.
주말에 일하고 있으면 어머님이 자꾸 마켓에 찾아오셨다. 직원도 있는데 자꾸자꾸 나한테 화장실에 다녀오라면서 돈을 본인에게 맡기고 다녀오라 하신다. 그래서 심심하시기도 하시고 도와주시고 싶은가 보다 하고 그냥 화장실도 다녀오고 마켓구경도 쓱 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어머님은 본인이 여기 오시느라 기름값도 쓰고 했으니 백 불이라도 가져가신다는 거다. 너무너무 황당했다. 근데 가방에 현금이 잔뜩 들어있는데 돈 없다고 안 드린다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내가 부모님한테 용돈도 드릴수 있는 상황인게 감사하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계속 오시면서 돈을 가져가셨다.
어느 날은 일 다 끝나고 직원을 집에다 데려다주는데 어렵게 직원이 나에게 말을 꺼냈다.
" 언니 화장실에 가면 가방 안에 있는 돈을 다 꺼내서 계속 세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진짜 이게 뭘까 싶었다.
또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찾아오셔서 손님들 오기 전에 커피나 마시자고 하시며 예전 이야기를 하셨다. 남편이 하이스쿨 때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어머니의 폐물을 모두 훔쳐 갔다는 이야기였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셨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폐물을 헐값에 팔아먹어 돈도 못 건졌고, 그 친구의 부모도 돈이 없다며 발뺌했다고 하셨다.
"엄청 속상하셨겠어요.."
했는데 갑자기 나를 똑바로 쳐다 보시더니
"그러니까 니! 가! 갚! 아!"라고 하셨다.
(뚜둥......)
"네??? 제가요? 제가 어떻게 갚아요?"
"생일에 보석 세트 하나씩 해 와. 이번 생일엔 다이아 팔찌 하기로 했으니까, 다음엔 사파이어 하면 되겠다"
"네?????"
나는 우선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지금 다이아 팔찌를 준비하느라 돈을 모으고 있는 상황인데, 매년 이렇게 해야 한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마음이 온몸을 휘감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