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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속에 박힌 돌덩이들이 폭탄이 되어

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차리네?

by 휴리네

매일 출근하고 일만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갚을 곳이 계속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홈론도 다 갚고 수입이 일정하면 선물이라는 건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머님이 겪은 일은 내가 생각해도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런데 그 책임을 나한테 지라고?


뭔가 미래를 위해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생기자마자 햇빛 아래 둔 설탕처럼, 겨우 결정이 생기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꼭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가 아기 돼지가 조금만 자라면 먹어치우려는 느낌이 드는데, 불안하고 짜증 났다.


그래도 장사가 정말 잘됐다. 마켓에 가면 기분이 풀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사를 했다. 손톱에 스티커를 붙여주면 스티커가 잘 나갔고, 투명 네일 폴리시를 발라주면 더 잘 붙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발라주면 손님들이 투명 폴리시도 사갔다. 밝은 폴리시 위에 스티커를 붙인 샘플들을 만들어 두면 또 밝은 폴리시들을 사가곤 했다.

이런 세트는 어떨까, 저런 구성은 어떨까 하는 모든 아이디어가 잘 들어맞으면서 매출은 껑충껑충 더블에 더블을 뛰어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디자인을 받아서 크리스마스 세트를 판매했다. 상자에 구성 상품을 담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사갔다.

정말 기뻤다. 디자인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 공장에 내가 디자인한 스티커들을 의뢰했고, 패키지 디자인도 내 회사 로고가 박혀서 제작했다.


곧 크리스마스가 오는데 남편이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한 나한테 선물을 해주겠다고 한다. 고민이 엄청 되었다. 할 일이 많고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벌써 돈을 써도 되나. 구경이라도 하라는 남편과 함께 시티에 나갔다.

고민 끝에 작은 가방을 하나 샀다.


"우리 열심히 일했으니까 선물을 하자"라고 했다.

"너는 가방을 샀으니 난 배를 살게."

"배? 무슨 배? 먹는 배? 물에 떠다니는 통통배?"


본인이 지금 배를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며 기대하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엔 어부가 아니고는 배를 산다는 걸 상상도 못 하고 살았는데, 배를 산다니 깜짝 놀랐다. 너무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여서 무얼 예상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가방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자려고 하는데 밖이 또 소란했다.

어머니의 고성이 마음속에 큰 돌덩이처럼 쿡쿡 박혔다.


"이 새끼가 정신이 없는 새끼다. 엄마한테 가방 하나 먼저 안 사주고 어떻게 감히 와이프한테 가방을 들려줘? 생각 없는 년이 들어와서 내가 복장 터져 죽네.. 아이고, 나 죽네. 이런 새끼를 자식이라고!!! 내가 그 고생을 하고 키웠네~~~~~"


(우당탕탕) 의자가 나뒹굴고 부러진 소리가 들린다.


이젠 가슴속에 쿡쿡 박힌 그 돌덩이들이 폭탄이 되어 터진다. 너무너무 화가 났다. 사실 남편은 새벽에 청소를 좀 하고 내가 하는 비즈니스를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돈을 버는 것도 내가 벌고 있었는데, 분명히 내가 버는 돈 다 내 용돈 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돈을 벌면 다 가져다 드려야 하는 분위기였다.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 내가 새벽에 입술이 다 터져가며 물건 하러 다닐 때, 지 주제에 꼴값 떨고 다닌다고 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지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라고 했던 그 바보 같은 사람이, 어렵게 맺은 열매는 그냥 당연하게 따먹겠다고?!


정강이까지 걷어차여서 시퍼렇게 멍이 든 남편이 이제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생활비로 주마다 어머니한테 드리는 돈 조금 더 보태서 살면 된다고 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길이 있을 거라 믿었다. 여차하면 렌트 줬던 집에 다시 들어가면 될 거고, 열심히 돈 벌고 있는데 어떠랴 했다.


여기저기 집을 알아봤다. 한국에서 배송이 많이 오니까 쌓아 둘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는 1층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부동산도 알아보고 발품을 팔았다. 우연히 들렸던 어느 대학교 보드에 붙어 있던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필요로 했던 그런 집이 나타났다.

새로 신축한 집이다. 공간도 많고 진짜 큰 방도 3개나 있고 1층이며, 보증금도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주당 렌트비도 어머니댁에서 살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공과금도 포함된 집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이사도 가능하다고 했다. 주인집 가정이 2층에 살긴 하지만 입구도 완전히 다르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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