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차리네?
남편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이제 물건이 많아져서 큰 집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려라. 절대로 절대로 다른 말하지 말아라." 신신당부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동그란 식탁 위에서 이미 어머니는 엄청나게 취해 있었다. 식탁 위엔 빨간색 에나멜 루이뷔통 가방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샀어! 내 돈으로 샀다고!!!!!!!!!!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고!!!! 결혼한 새끼도 내가 지금까지 데리고 사는데 이 새끼들!!!!!!!"
또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평생 혼자 살아서 누구랑 같이 있는 게 얼마나 피곤한데 그래도 있게 해 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는 새끼들!"이라며 목놓아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언제나처럼 죄인 같다고 느꼈다. 내가 도대체 뭘 그리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최대한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드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폭발하지 말고 끝까지 어머니의 마음을 풀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 안에서 기다리다가 새우잠이 들었다. 아침에 남편이 잘 해결되었다고 했다. 별로 있지도 않은 짐들을 싸기로 했다. 부엌에서 한국에서 싸 온 반찬통만 쌌다. 짐들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이사 준비는 하루도 안 돼서 마무리된 듯했다.
저녁에 어머님이 방에서 나오라고 했다. 갑자기 반찬통을 다 쌌냐고 물으셨다. 제가 가지고 온 통만 챙겼다고 말씀드렸는데 "길쭉한 통은 니 거 아니고 내 거야"라고 했다. 호주 오기 전에 엄마랑 이모랑 백화점에서 세트로 사 온 통들이었는데 나도 이제 막 화가 났다. 솔직히 "아, 그래요?" 하고 웃으며 꺼내드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 싫었다.
"엄마랑 제가 세트로 산 거예요. 두 개 있으니까 한 개 꺼내놓고 갈게요, " 했다.
어머니가 계속 이런저런 딴지를 걸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다. 어머님이 서운하신가. 피해만 주고 귀찮게 했던 우리들이 떠나면 속이 시원하실 줄 알았는데 아닌가 하고 헷갈렸다.
오랜만에 어머님 댁에서 아주버님 내외와 함께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아주버님이 물었다.
"이사 나가니까 너무 좋으시냐"라고.
"이제 더 이상 피해 안 주고 집안 복잡하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 너무 좋아하시지는 말라"라고 넌지시 이야기해 주셨다.
아... 서운하셔서 그러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 때문에 하도 집이 지저분하고 식습관 안 맞아서 살 수가 없다고 하셔서 우리가 없어지면 시원하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맘도 들었다. "자주 놀러 올게요, " 하고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이 딱히 대답을 안 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이사 갈 집에는 어느 정도 꼭 필요한 가구가 있었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서 필요한 것들만 구매하고 구색을 맞췄다. 아주아주 큰 방도 3개나 있고 정말 크고 깨끗한 새 집이었다. 너무 크고 넓어서 집에서 말을 하면 메아리가 울렸다.
이사하는 날 윗집 중국 주인집 아저씨가 반겨주셨다. 윗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내외 그리고 그들의 딸 두 명이 산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가 정말 젊으시고 몸도 엄청 좋으시고 성격이 호탕하셨다. 할머니는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시고 수줍지만 미소가 아름다우신 분이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못하시는데 아들이 통역해 준다고 내려왔다. 그런데 아들이 성격이 내성적인가. 눈을 못 마주치고 손을 계속 가로저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가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줬다. 여기 이사 오면 엄청 성공할 거라고 했다. 풍수에 완벽한 집이라나 뭐라나. 중국 사람들도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신기했다. 정말 내 집같이 편하게 아무 신경도 쓰지 말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분 좋은 맘으로 이사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곳에서 이제 정말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남편도 신이 났다. 햇살도 가득하고 밝고 넓고 예쁜 집에서 펼쳐질 앞날이 기대되었다.
신난상황에 남편이 본인 선물을 샀다고 했다. 자주 가는 미용실 아저씨랑 같이 배를 샀다고 했다.
미용실 아저씨는 워터프런트 집이 있으신대 배를 항상 가지고 싶었지만 관리도 어려울 것 같고 배 운전 라이선스가 없어서 배를 살 엄두가 안 나셨다고, 그런데 남편이 본인이 다 할 테니 배를 같이 사자고 해서 샀다고 했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배를 드디어 샀구나. 정말 좋아하니까 나도 뭐 어리둥절했지만 축하해 줬다. 우선 배를 사고 운전하려면 라이선스를 따야 한다며 진짜 열심히 공부했고 그렇게 열심히 책을 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라이선스도 단번에 따버렸다.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 배를 물에 띄어 보는 날 어머니랑 나랑 선착장으로 불렀다. 기다란 트레일러를 달고 있던 하양 귀여운 봉고차가 늠름해 보였다. 요리조리 후진에 후진을 거듭한 후 배를 물에 띄우고 우리는 배에 앉아 있었다. 남편은 트레일러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우리가 있는 배로 왔다. 항상 다니던 강가를 물안에서 달렸다. 물안에서 시티를 보는 느낌은 또 새로웠다. 처음 본 광경이었다. 반짝이는 골드코스트의 시티가 정말 아름다웠다. 얼굴에 부딪히는 수분 가득한 강바람도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마치고 배를 끌어내서 트레일러에 실어야 했다. 경험이 없던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애쓰고 있는데 친절한 호주 아저씨가 등장하신다. 처음 해보는 거냐면서 아저씨도 내일처럼 낑낑대며 열심히 도와주시고. 남편은 우리에게 처음이니까 그런 거라며 연신 변명을 해댔다. 어머니랑 나는 먼저 집에 와있겠다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먼저 나오는데 봉고차 앞쪽에 붙은 주차 딱지를 발견했다.
남편이 너무 신난 나머지 트레일러 전용 주차공간에 주차하지 않고 다른 곳에 주차해서 티켓을 끊은 거였다. 목돈으로 벌금을 지불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다시는 벌금을 받지 않겠다 그리 약속을 했건만 또 이렇게 끊어서 너무 짜증 났지만 기분 좋은 날이라 별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배를 물에 한번 띄우는데 트레일러에 싣고 내리고 운전하고 다시 실고 미용사 형네 집에 가져다 놓고 정말 온 하루를 다 썼다. 어머님 집에 와서 정말 소파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잤다. 집에 다시 돌아가면서 말했다. 이번엔 정말 몰라서 그랬다지만 진짜 티켓 끊는 거 조심하라고 했다.
배 보험도 잘 확인해서 들고 조심 또 조심하라고 일렀다. 본인을 못 믿겠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이번건 진짜 억울한 거라면서 큰소리를 뻥뻥 쳤다. 계속 대답을 종용했다. 자기 못 믿냐면서, 나는 서방님 믿지 하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