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괄리오르의 상류층

괄리오르의 상류층

by 할매

Gwalior

(산적님이 만들어 주신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천년의 한을 가진 여인이 원한에 쌓인 곡소리를 내는 것 같은 음산한 울음소리였다. 길게 이어지다 그치고 또 이어지던 소리. 귀 기울여 들어보니 개의 울음소리였는데 리더인 듯, 그 개가 울부짖으면 다른 개들은 조용해졌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한이 쌓였길래 저리도 음산한 소리를 내는 건지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조용해졌다. 모기 한마리만 있어도 잠을 못 자는 산적은 밤내 시달렸는지, 이미 일어났을 아침 6시경에서야 코를 곯았다. 8시에 릭샤가 우릴 태우러 오기로 약속이 된 터라 나는 산적의 잠을 억지로 깨웠다.


어느새 카쥬라호역에 도착한 우리들. 플랫폼에서 어느 젊은 프랑스인 부부를 만나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열차에 탔는데, 요즘 프랑스에서는 인도 여행 열풍이 불었는지, 우리 옆좌석에 탄 사람도 프랑스인이었다.

혼자 여행 다닌다던 프랑스 청년이었는데, 그와 한참 여행 정보를 주고받던 산적은 얼마후 우리 자리로 돌아왔고, 그는 그의 좌석에서 발 뻗고 잠들어버렸다.


기차 여행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 나는 눈이 시릴 정도로 밖을 내다보고 또 보았다. 밀이 익어가는 곳도 있었고, 야자 열매도 보였다. 허수아비도 보이고 낮은 구릉지대도 나타났다. 그러더니 또 다시 넓은 들판이 나타나고 땅이 수직으로 주저앉은 땅꺼짐 현상도 드문드문 보였다. 어느 곳은 땅꺼짐

현상이 빈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거론되던 땅꺼짐 현상은 인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마우랑지뿌르역 근처는 참으로 깨끗했는데 구릉 또한 다소 높았다. 오르차역 못 미처 보이던 베뜨와강 근처에선 철로 주변에 죽어있던 소의 내장을 한마리의 개가 열심히 파 먹고 있기도 했다. 다브야역모르아르역 사이에서는 인도 여행 16일째에서야 처음으로 터널도 지나쳤다. 그렇게 인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던 열차는 거의 7시간을 달려 4시 10분경 괄리오르역에 도착했다.


역까지 우릴 마중나와 있던 6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는 귀엽고 예쁜 이십대 중반의 아가씨였다. 괄리오르의 명문대인 신디아 칼리지를 졸업한 아가씨 였다. 전속기사가 딸린 자가용으로 마중 나왔는데, 배고파 하는

우리를 위해 빵집에 들러 빵도 사주었다. 그녀의 집에서는 그녀 가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그 가족들 앞에서 삼뽀냐와 하모니카 합주 연주를 해 주었다. 저녁 7시경

괄리오르의 번화가인 나가라사로 나가 사원도 구경하고, 그녀의 삼촌이 사 준 거리의 음식도 맛보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날씨는 화창해서 우린 둘이서 괄리오르 포트 구경에 나섰다. 외국인은 우리 밖에

없었고 대부분 내국인들이었다. 자이나교 사원인 괄리오르 포트엔 거대 석상들이 말없이 서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훼손된 모습들이었다. 우린 그곳에서 운 좋게 결혼식 행렬을 만났다. 유명배우 뺨 칠 정도로 이쁜 아가씨들이 나를 보더니 함께 춤 추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결혼식의 가장 핵심 인물인 듯한 노인 한분은 여러번 우리에게 다가와 자기들과 합류하여 춤도 추고 음식도 먹으라고 당부했다. 결혼식과 아무 연관도 없던 이방인인 우리에게 그들은 너무나 관대하고 친절했다. 인도의 여러 신들이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듯 그렇게~


우린 그들이 선사해 준 도시락과 물 등을 얻어들고 구르드와라 시크교 사원에 들러 점심으로 짜파티도 얻어 먹고 짜이까지 얻어 마셨다. 되돌아오던 길, 우린 북치는 어린 소년과 가난한 여인에게 하객들에게서 받았던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인도의 길거리는 어딜 가나 풍요와 빈곤이 공존했다. 우리네 손이 손바닥과 손등으로 구별되면서도 함께 움직이듯이 그렇게...

우린 걸어걸어 숙소로 향하며 괄리오르의 거리 풍경을 이모저모 살폈다. 유치원도 보이고, 철물점도 보였다. 철물점은 극히 원시적이었다. 걷다 지친 우린 도중에 릭샤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와 빨래를 마친 우린 그 아가씨와 그녀 엄마랑 모여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부모님은 인도에서 내노라 하던 인텔리셨는데, 아빠는 내과 의사, 엄마는 산부인과 의사셨다. 병원 내부를 구경시켜 주셔서 둘러보니 환자들도 제법 많았다. 연세는 우리 또래거나 약간 연상인 듯 싶었고. 아가씨 엄마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우리와 이야기 했다. 아가씨와 얘기하다 보니, 우리나라를 인도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아가씨에게 우리나라

어린애들은 거의 인터넷을 한다고하자, 나도 인터넷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저으기 놀라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치안은 어떠냐, 물가는 어떠냐, 인구는 어떠냐 등등, 한국 관련 궁금증이 새록새록 이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엄마 역시 인텔리다운 지성인이셨는데 질문하고 수긍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적잖이 놀라는 눈치셨다.


인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침 식사는 오전 9시, 점심은 오후 2시경, 저녁 식사는 저녁 9시에서야 한다.

인도사람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들이다. 심지어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기내식마저도 배지냐 논배지냐를 물어 확인하고 준다. Vegitariannon-Veritarian. 채식주의자냐 아니냐를 묻는 질문인데 논배지라 해도 우리나라와는 개념이 다르다. 계란이나 소량의 육류를 섭취하는 사람이 논배지테리언이다. 그러니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 고기 종류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일본처럼 쓰시나 회를 기대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한다.

아가씨의 아빠까지 합석한 저녁 식사에서도 한국 관련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는데, 그녀의 아빠 역시 엄마 못지 않은 괄리오르의 상류층 인텔리셨다. 채식주의자신데 이상하게 당뇨병을 앓고 계셨다. 그녀의 부모님과

아가씨에게 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문화, 생활상 등을 설명해주며 우리가 한국의 홍보대사로 파견 나온 것 같은 우월감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는 기필코 한국을 방문하겠다던 그녀의 가족이 베풀어준 환대. 아가씨의 삼촌 집에서의 다과 파티와 아이들의 춤과 노래 자랑, 무우 한개 사서 깍뚜기 담으라고 주시던 고춧가루 등등, 우리에게 그들은 과분할 정도로 베풀어주었다.


그렇게 괄리오르에서 이틀을 잘 보낸 뒤, 전속기사가 몰던 자가용으로 2월 23일 아침 7시 괄리오르역에 도착했다. 어느새 여행 18일째,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아가씨의 엄마가 직접 끓여다 주신 고마운 짜이 한잔의 맛을 혀와 마음에 간직한 채 니자무딘행 열차에 탔다. 인도는 철로 산업이 아주 잘 발 달 돼 있고 노선 또한 많았다. 우리가 탔던 열차는 니자무딘역이 종점인 노선이었다. 30분이나 연착되다가 9시 10분 전에서야 출발했다. 슬리퍼칸에 타고보니 우리가 앉은 맞은편에.

다음에..



시코교인들과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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