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의 둥지 이동
삶과 죽음 사이, 생(生)과 사(死) 사이를 일생(一生)이라 한다. 우리네 인간들 누구나 한 생 살지 두 생 살지 않는다. 일생은 수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생멸하며 쌓이는 시간이요 세월이다.
기쁜 일, 슬픈 일, 덤덤한 일, 뜻하지 않은 일들과 갑자기 닥친 병고(病苦), 사고(事故), 사회적 혼란 등등 크건 작건 여러 요인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내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 일들은 우여곡절의 강물이 되어 한 생의 스토리를 만들며 흘러 간다. 그 흐름은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멈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글들을 써 낼 수 있다. 무전여행기가 끝나고 연재북 2에서는 제목 별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다. 우여곡절 속에 내가, 우리 가족이 살아냈던 이야기들이며 남은 생 살아내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내 생각과 견해의 글들도 있다.
그 켜켜이 살아 낸 내 세월의 나이가 어느새 만 칠십, 고희가 되었다. 지난 2,3년(이삼년)간 나는 어떤 요인으로 인해 지독히도 아팠다. 죽기살기로 견디고 또 견뎌야 했다. 마치 심해(深海) 밑바닥에 빠뜨려져 쪼그라질대로 쪼그라 든 종이컵 마냥 압축되고 위축되고 쪼그라든 채로. 그러다 3일 간의 단기성 기억 상실증에 걸리기도 했다.
급기야 이사를 했다. 만 24년 간 살았던 무등산 아래 산골 마을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산골 집은 지은 지
칠십년이 된 낡고 오래된 흙집 한옥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흙집은 나와 동갑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집을 정성스레 가꾸고 돌보고 고치며 살았었다.
이사 한 아파트는 리모델링 된 깨끗하고 조그만 거처였다. 우리 부부에게 좁지도 넓지도 않은 평수였다.
한옥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오니 흑설탕 세계에서 백설탕의 세계로 온 듯 했다. 정제된 물질이 아니라 정제된 공간. 처음엔 먼지 하나 없는 무균실 같아 보였다. 하루 하루 날이 가다보니 보이지 않는 먼지가 무수히 날아다니는 공간이었다. 며칠만 청소하지 않아도 금방 티가 났다.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배수구에 하얀 비누 때가 끼었다.
사방팔방 툭 트인 한옥집 부설, 취사 부엌에서 이 문 저 문 열어놓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요리도 제약이 많았다. 날씨 따뜻하면 베란다 문 열어 젖히고, 후드 틀고 요리했지만 그래도 냄새가 배었다. 맘껏 활개쳤던 몸 동작도 조심스러워졌다. 행여 윗, 옆집에 소리라도 들릴까봐 절로 조심하게 됐다. 요리시마다 식칼 손잡이 끝으로 쾅쾅쾅 찧어대던 마늘도 찧을 수 없었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자 요령이 생겼다. 신문지 밑에 깔고 그 위에 도마 얹어 바닥에 놓고 찧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쪼그린 자세로 하자니 조금 밖에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 부부 삼시 세끼 집밥을 먹는다. 우리집 삼식이의 건강을 위해 나는 전적으로 삼식이 위주의 요리를 한다. 칠,팔곡 잡곡밥은 기본이고 반찬도 당뇨식 위주로 만든다. 열흘에 한번씩 포두부 잡채를 만들어 밀프랩 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재료 사오는 것은 수시로 한다. 주로 마트를 이용한다. 가끔은 5일장에 다녀 오기도 한다.
아파트에서 살아 온 지 어느새 다섯달이 지났다. 툭 트인 공간에 살다 폐쇄 공간으로 오면 답답함에 숨이 막히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척에 있는 중학교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 축구하며 지르는 함성과 변성기 목소리로 고함치는 소리, 펑 터지는 축구볼 소리,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벨소리 등등...
무엇보다 년식 있어 뵈는 학교 담장 옆, 벚나무 가로수의 무성한 녹색 잎들은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제가 되었다. 오늘은 벌써 또 월요일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의 또 다른 하루. 나는 또 한번의 하루 문 앞에서 무수한 녹색 잎 사이로 파란 하늘을 바라 본다. 상가나 한옥 같은 주택에서만 근 70년을 살아왔던 과거. 왜 다 늙어서야 아파트로 옮기게 됐을까~ 그것도 우연히 이뤄진 일인데. 남편의 결정으로 불과 한달 만에. 뒤돌아보면 이 또한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 싶다. 먹고 살기 바빠 놓쳤던 마음 공부를 마저 하라는 무언의 독려 같은~
인생살이 뒤 끝에 이사 온 아파트는 이제 내 생이 인생길 8부 능선 위를 넘어섰음을 상기시켜 준다. 미처 버리지 못한 것이 있거들랑 다 내려 놓으라고. 이제 9부 능선만 넘으면 산 너머 무한한 공간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차차 잊혀질 거라고.
사방팔방 툭 트인 공간 대비 아파트는 한줌도 못 된다. 성냥갑보다 더 작은 이 공간은 작아져야 할 때임을 묵언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전생과 이승(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과 저승의 무한 반복되는 시간. 그리고 겁(劫)의 세월. 산 너머 막힘 없이 외부로 뻗었던 시선을 거두고 한줌 육신으로 돌아와 대지로 스며들 숨고르기를 하라는 듯이.
남편 방에서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토닥임 소리가 나직히 들린다.
티끌 만도 못한 남은 여생 그저 잔잔히 흐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