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거나 말거나
내 얼굴 생김새는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피부도 하얗다. 엄마 역시 피부가 하얗다. 엄마 피부는 곱고 매끄럽다. 아빠 피부는 하얗지만 매끄럽지는 않다. 나 역시 매끄럽진 않은 하얀 피부다.
그 하얀 피부의 여인이 언제부턴가 무전여행을 했다. 무전여행은 고행이나 다름 없다. 아니 고행 그 자체다. 옛 스님들의 탁발이나 진배 없다. 동가식 서가숙 풍찬노숙을 해야 한다. 탁발을 만행이라고도 한다. 만행길에 나선 옛 스님들이 뚱뚱한 걸 보기나 했남? 아마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고행이란 어렵고도 험난하다.
살 찔 틈이 없다. 그런 여행을 우리 부부는 했다. 재밌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느해던가 무전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뒤였다. 모처럼 목욕탕 뜨끈한 물에 푹 담가보고 싶었다. 우리부부
대중 목욕탕에 갔다. 각기 여탕과 남탕으로 들어 갔다. 대충 씻은 다음 온탕에 잠겨있다 나왔다. 현기증이 일길래 탕 옆에 빙 둘러 앉게 만들어진 곳에 잠깐 앉았다. 잠시 앉아 있다 일어서서 샤워기 꼭지가 줄지어 있던 내 자리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물을 막 퍼붓었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힐끗 보니 탕 안에 있을 때 나를 유심히 보던 여자였다. 마치 문둥병 환자라도 대하듯 날 쳐다보던 여자.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용히 목욕을 마치고 나왔었다.
무전여행을 하면 많이 걷는다. 걷는 것도 지하철 안을 걷듯이 걷는 게 아니다. 여름철 땡볕 아래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그 뜨거운 햇빛은 노출된 내 피부를 까무잡잡하게 태워 버린다. 거무레한 피부로 변한다. 거무죽죽한 피부는 햇빛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부색이다. 건설 노동자들의 피부색이다. 농부들의 피부색이기도 하다. 어부들, 광산 노동자들의 피부색이기도 하다. 날 바라보던 여인은 내게서 그런 피부색을 본 듯 했다.
어릴 적 가난한 집 아이들은 먹을 게 땅에 떨어져 있으면 즉시 줏어 먹는다. 눈치 보지 않고. 그러면 그걸 본 아이들은 '거지거지 땅거지~ 거지 거지 땅거지~' 하며 놀려댔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처절했다. 그런 땅거지도 피부색이 하얗고 곱지는 않다. 여인이 바라보던 내 몰골은 한낱 땅거지 같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찮은 인간으로. 천하고도 또 천한~ 한명도 아닌 하나의 물체처럼~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은 내 시각이 아니니까.
나는 자존감(自存感 - 자기의 존재, 자기 힘으로 생존함)은 강할지언정 자존심(自尊心 - 제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란 게 없는 사람이다. '나' 라는 자아(自我)조차 무아(無我)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누가 밟으면 밟은대로 천하게 여기면 여기는대로 그냥 지나친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것에 무관심 하니까.
드넓은 땅이 자신을 대지(大地)라 말한 적 있던가~ 창공(蒼空)이 자신을 푸르다 하던가~ 허공(虛空)에 침 뱉었다고 허공이 화 내던가~ 아니다. 자기만 괴롭지. 침이 자기 얼굴에 떨어질 게 뻔하니까. 대지, 창공, 허공은 아무 소리가 없다. 그저 조용할 뿐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참음이 임계점(臨界点)에 다다르면 화가 솟구친다. 나는 살아오며 화를 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이다. 밖이 아닌 안. 두세번은 '분노'라고 표현할만한 거센 화였고, 두어번은 저항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래놓고선 후회했다. 내 감정을 이기지 못했음이 부끄러웠다. 감정에 휘둘려 냉철함을 지키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관찰하게 되었다.
고정 돼 있지 않고 흐르는 게 세월이다. 칠십이 넘은 지금은 그 모든 게 그저 그렇다. 다 부질없어 보인다.
대지와 창공이 아무 말 없듯~ 허공이 무심한 듯 그냥 그렇게~
하지만 글을 쓰려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걸 들먹이게 된다. 글을 안 쓰면 암시랑토(아무렇지) 않을텐데~
글을 쓰지 말까? 어떠세요? 쓰지 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