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신비한 체험(後)

신지한 체험

by 할매

어느날 지방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오셨다. 큰 아들과 함께 사시겠다고. 나무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메! 거지집이다!" 하시던 어머니. 그래도 나는 시어머니께 시집살이 험한 꼴을 겪지는 않았다. 말씀이 좀 거칠 뿐이지 심성(心性)은 고우셨다. 어느날, 저녁 무렵이었다. 산적도 일찍 집에 들어와 있었다. 어머니는

본채 안방에 기거하셨고 우리 부부는 문간채에 기거했었다.


ㅁ자형 집의 낮으막한 본채 지붕 위로는 회화나무가 바로 보였다. 문간채의 토방에서 보면 회화나무가 더 잘 보였다. 나무는 집보다 약 2m 가량 높은 축대 위에 있었기 때문에 잘 보였다. 오래 된 古木이어서인지 나무의 형태가 특이했다. 마치 인도의 여러개 손을 가진 神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사진을 찍어 놓은 게 있었는데

이사 다니며 어딘가로 다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다면 그 사진을 올릴 수 있어 쉬 이해 될 건데 너무 아쉽다)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스름해진 무렵이었다. 문간채 토방에 서 있던 산적이 나를 급히 불렀다. ㅁ자형

한 변의 공간이던 입식형 부엌(신발 신고 들어다니던 부엌)에서 일하다 바로 나갔었다. 집이 원체 오밀조밀하던 터라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된다. 문간채 방문 앞에 산적과 나란히 서자 나무 끝을 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처음엔 잘 안보이더니 어스름이 짙어지며 뭔가가 보였다. 솜사탕 절반 정도 크기의 희끄무레한 솜뭉치 2개가 나무 꼭대기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처음엔 2개가 나란히 타원형으로 맴돌더니 한참을 바라보고있자 눕혀진 8자, 즉 무한대 표시인 형태로 엇갈리며 돌기 시작했다. 한참 보던 산적이 어머니를 불렀다. 셋이 된 우린 나무 위를 계속 쳐다보았다. 헌데 어머니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하셨다. 어머니는 우리보다 시력은 좋으신 편이었다. 헌데 안보이신다니 이상했다. 어머니는 한참 보시다 아무것도 안 보이신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리고 몇초 후 어디선가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무 위를 스쳤다. 그러자 솜뭉치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산적과 나는 얼굴을 마주보며 회화나무의 정령(精靈 = 초목이나 무생물 따위 갖가지 물건에 붙어 있다는 혼령)일 거라 했다.


하지만 우린 당시, 그게 무슨 메시지인지 몰랐다.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르며 깨달았다. 우리 부부더러 늘 함께 하라는 메시지였다는 것을~ 모진 풍파 겪으며 500년 넘는 세월을 견뎌온 고목(古木)의 가르침. 그 후 우리 부부는 늘 함께 다니는 한쌍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오시기 전에는 이런 일도 겪었다. 컴퓨터 공장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실을 할 때는 나는 1인 다역을 했다. 온갖 일을 다 했다. 고택으로 온 뒤론 산적의 운전기사 노릇만 하면 되었다. 주부 역할만 하면 되었다. 날씨도 화창한 어느날 산적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일찍 끝날 것 같으니 오후 몇시 경에 오라고 했다.


집안 일을 다 마친 나는 시간이 되자 부엌과 문간채 사이에 있던 쪽문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쪽문을 마악

닫으려는데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되짚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휘 둘러봐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시 되돌아 쪽문을 마악 나서려는데 지축을 뒤흔드는 우지끈 퉁탕~~ 하는 굉음이 들렸다. 놀라서 쳐다보니 어마나 세상에~~ 내가 걸어갔을 좁은 길에 굵은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두 팔을 벌려 안아도 다 안아지지 못할 정도의 굵기였다. 분초를 다투던 순간이었다. 집안에서 나던 소리에 머뭇거리지 않고 나갔더라면 불귀의 혼이 될 뻔 했던 타이밍이었다.


소름이 확 끼쳤다. 망연자실했다. 절묘한 찰라였다.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얼마나 감사함이 밀려들던지, 나는 한참이나, 떨어진 나뭇가지와 회화나무를 바라보았다. 오래 되어 저절로 부러져 내린 나뭇가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무가 나를 보호해 주었구나 하는 감사함이 들자 전율과 함께 경건함이 밀려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말라는 우리 조상님들의 격언을 잊어본 적이 없다. 수령(樹齡) 많은 거목은 늘 존경심으로 대했다. 그 후 몇 년 뒤 산골에서 살아보니 우리 선조들의 말씀 속엔 부처님의 가르침이 깊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처(處處)가 수행 도량이요 만물엔 불성(佛性)이 가득 깃들어 있음도 보았다.


우리 부부 불교도는 아니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만큼은 둘 다 겸허히 받아들이며 산다. 특히 나는 매 순간을 우리의 선조들과 석가 세존의 가르침에 빗대어 생각하며 산다. 영원할 것 같지만 지극히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부처심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그 가르침을 받들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그 거목과 나 사이의 신비한 경험은 몇번 더 있다.

나머지 일화는 다음 기회로...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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