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자율 주행을 추앙하다
Photo: Horse and Carriage, Nassau by Jon Worth under CC BY-SA 2.0
2023년 늦여름 어느 아침, 딸아이 등교를 위해 스쿨 드롭존으로 서서히 진입하던 내 차는 아이의 하차를 마치고 서둘러 다시 주행차로로 나오려던 승용차에 후미를 받혔다. 나는 성격 상 교통 흐름을 방해하면서까지 도로 갓길의 주차 공간을 탐색할 만큼 마음이 담대하지(?) 못하고, 갓길 주차가 허용된 한산한 도로에서도 다른 차와의 간격이 충분한 공간에만 차를 세운다. 이날 아침에도 나는 지정된 어린이 하차 구역에 먼저 정차해 있는 차량들의 동태와 공간을 살핀 후 넉넉히 빈 곳으로 서서히 진입했지만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나의 25년 무사고 이력은 찰나의 시간에 박살 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경주 Formula One (F1)에서 일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다. 나는 레이스 트랙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자동차 사고를 수없이 보았기에 안전운전 강박은 내게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래서 나는 운전하는 동안엔 항상 나의 모든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믿고 살았다. 원래 겁이 많은 기질을 타고난 데다 안전운전 강박이 더해진 탓에 나는 운전을 처음 배운 후부터 이때까지 그 흔한 접촉사고 한번 낸 적 없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자만했다. 이날 아침, 나는 그 시각 그 자리에서 그 차가 그렇게 밀고 나올지 상상조차 못 했다. 사고 순간에도 내 몸은 회피 거동을 위해 근육과 신경을 한가닥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사고를 인지한 건 '쿵' 소리와 충격에 놀라 사이드미러로 무슨 상황인지 확인한 이후였다. 내가 자랑해마지 않던 나의 출중한 운전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은 위기의 순간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접촉사고 상대 운전자도 매일 반복되는 루틴 드라이빙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스쿨 드롭 루틴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나의 등장 이전까지. 최종 과실비율은 내가 4, 그가 6. 숫자의 크기만 놓고 따지면 내가 승자지만 그날 아침 우리 둘은 서로에게 동시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만약 우리 둘의 자동차에 인간의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이 미치지 못하는 안전 사각을 보완해 줄 제2의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 유닛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정도의 사고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충돌 회피 수준의 인공지능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완전 자율 주행 기술이 제공할 말단 기능에 불과하다. 이날 아침 나는 '일상에서의 자율 주행은 과연 언제쯤?' 속으로 물었다.
Elon Musk Says...
테슬라의 주주가 아니어도 우리는 일론 머스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사업을 계획하는지 무척 궁금해한다. 그가 시가 총액 1위의 자율 주행 자동차 기업의 사주여서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가 인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본 에너지를 투입하는 몇 안 되는 부자 모험가이고, 거대 자본이 쏠리는 곳이 곧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매년 "내년이면 자율 주행 자동차가 출시될 것이다."라고 공언해 왔다. 그런 그의 말에 우리는 매년 내년을 기약했고 테슬라의 주가는 이 희망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기존 자동차 업계로부터 냉랭한 의심과 뜨거운 견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는 자율 주행의 물꼬를 대세로 키웠고, 자율 주행 R&D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마침내 Full Self-Driving (FSD)를 출시했다. FSD는 테슬라 자율 주행의 원시 기능이었던 Autopilot을 확장한 매력적 선택 사양이었지만, 완전한 무인 자율 주행은 아니었다. FSD라는 이름이 오히려 이 옵션에 대한 소비자 오해와 불만을 키우는 증폭기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일론 머스크가 날린 "곧 있으면" 발언을 살펴보면
"자율 주행 자동차는 반드시 현실이 된다. 내년에 나올 테슬라 자동차는 자율 주행의 90% 능력을 갖출 것이다. 여정의 90%를 자율 주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속도로 여행은 자율 주행으로 확실히 가능하다." (2014년 CNN과의 인터뷰)
"테슬라의 모든 차량은 공장을 떠날 때 5단계 자율 주행에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2016년 매체 인터뷰)
"올해 우리는 완전 자율 주행을 완성할 것이다. 즉, 차가 주차장에서 당신을 태우고 어떤 개입도 없이 당신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를 것이다, 바로 올해." (2019년 팟캐스트와의 인터뷰)
심지어 "언제쯤이면 사람들이 운전 중에 잠들어도 목적지까지 깨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는"아마 내년 말쯤이요."라고 확답했다.
그러나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는 여전히 등장하지 못했고, 그 완성 시점은 늘 오늘부터 다음 몇 년 뒤를 가리키는 형국이다. 그의 호언장담대로라면 사람들이 테슬라를 운전하다 잠들어도 아무 문제없어야 할 2020년, 그는 다시 "곧 있으면"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올해 5단계 자율 주행의 기본 기능이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2020년 7월 상하이의 연례 세계 인공 지능 컨퍼런스 (WAIC) 개막식)
비단 테슬라의 FSD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우후죽순 생겨난 전 세계 여러 자율 주행 솔루션의 완성 시점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율 주행 기술의 상용화 과정에서 생길 예상치 못한 사고, 여기서 파생될 인류 초유의 법적 책임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컴퓨터 인공지능이 운전을 맡았다가 인간의 생명이나 재산에 해를 입힌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에 관한 법적 판단은 자율 주행 기반 산업의 존립과 직결되는 이슈다. 현시점에서 나는 테슬라 FSD에게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가? 자율 주행 시스템 오류나 오작동의 결과였던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가해 사고에 대해 나는 자동차의 주인으로서 그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Absolutely NOT!'이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자율 주행 자동차의 능력과 현대 기술로 실현 가능한 자율 주행 자동차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법적 책임의 문제는 일부 (혹은 다수) 사람들 사이에 퍼진 자율 주행 포비아의 가장 큰 원인이다.
현업 자동차 엔지니어 입장에서 나는 자율 주행 포비아가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확산하지 않았으면 한다. 21세기형 미래 기술로 급부상한 자율 주행 기술은 인류 자동차 역사에 다시없을 긍정적 변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20세기 인류사를 특징짓는 가장 혁신적 기술 중 하나였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기 시작한 19세기말, 자동차 또한 현대의 인공지능처럼 인류 최초의 기술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처음엔 자동차란 신문물의 안전성을 믿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사람들은 '말의 도움 없이도 마부 혼자서 안전하고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는 마차가 발명됐는데, 그것이 자동차다.'는 주장을 믿기 어려웠다. 고전적 마차에서 말은 동력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시적 형태의 크루즈 컨트롤과 충돌 회피 인공지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마차의 필수 요소였다. 말은 마부가 졸더라도 길을 따라 스스로 달릴 수 있었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알아서 서거나 피할 수 있었다. 말은 마차의 동력이자 자율 주행 컴퓨터였다. 말이 필요 없다는 자동차란 탈것은 그 이득이 마차보다 훨씬 커야 소비자들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자동차의 미래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Carrages Without Horses Shall Go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 없는 마차가 질주할 것이다(Carrages Without Horses Shall Go)"라는 사실상 최초의 자동차 공학책이 등장한다. 이 책을 쓴 영국인 엔지니어 알프레드 로버트 세넷 (Alfred Richard Sennett) 은 자동차가 지배할 20세기를 예견한 현인이다.
책의 제목은 15세기 잉글랜드 요크셔의 예언가 쉽튼 수녀 (Mother Shipton)의 예언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쉽튼 수녀는 "말 없는 마차가 달릴 것이고, 재앙이 세상을 슬픔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에 등장하는 '말 없는 마차'가 정확히 자동차를 가리킨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말 없는 마차'가 자동차라면 세넷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동차가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란 중세의 이 예언을 조롱하고 탄핵하려 작정한 듯 이 책을 자동차 기술의 혜택과 필요성으로 채웠다. 그는 이 책에 자동차 공학의 역사, 당시의 자동차 모델과 제조업체, 자동차 관련 법률 및 규정, 그리고 마차 제작자와 엔지니어 사이에서 누가 자동차 제조에 우선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설득력 있게 담았다. 세넷은 하체와 기계 부품은 엔지니어가 제작하고 승객실은 마차 제작자가 제작할 것을 제안했다. 또 다양한 자동차 일러스트레이션과 공학 도표도 실었다.
세넷은 자동차 혁명이 가져다 줄 경제, 사회, 환경적 장점을 수도 없이 열거했지만 경고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중 그의 혜안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책의 38 쪽 '마차에서 말이 사라질 때의 걱정'이다. 세넷은 “말 없는 마차 (Horseless vehicle)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엔 말의 지능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운전자는 차량이 따라가야 할 전방을 항상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19세기말, 영국에는 소위 '레드 플래그 법 (Red Flag Act)'이 있었다. 이 법은 원래 스팀 엔진으로 구동하는 도로용 기관차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적용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었기 때문에 초기 자동차에까지 적용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안전을 위해 한 사람이 자동차 선두에서 빨간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를 걷는 속도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문명의 전환기, 말의 동력은 열기관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었지만 말의 지능을 대체할 수단은 없었다. 당장 도로 안전 문제가 대두되었고 영국 의회는 말의 뇌를 깃발 든 사람의 뇌로 대체하는 궁여지책을 냈다. 또 깃발을 흔드는 신호수 외에 두 명의 정비 인원 탑승을 강제했다. 근대의 기계 장비는 고장이 잦아 생물인 말에 비해 내구성과 신뢰성이 형편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기계 동력 차량이 도로를 달릴 때 이 조건들을 충족지 않으면 법 위반이었다. 이 법은 자동차 속도를 도심에선 시속 2마일, 변두리에선 시속 4마일로 제한했다. 그 결과 달리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자동차보다 더 빨랐다.
이 법은 자동차란 신기술을 담기엔 너무 낡고, 자동차의 이점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어리석었다. 이 때문에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한동안 코마 상태에 있었다. 1895년 뉴욕 타임스는 “현재의 법 규제가 계속되는 한 누구도 자동차 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고, 경찰과 법원 앞에 끌려갈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는 레드 플래그 법 폐지 활동가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동차 산업을 파괴하는 이 법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같은 시기 이 법에 대항하는 민간 불복종 운동도 시작되었다. 1년 후인 1896년, 마침내 이 법은 폐지되었고, 대신 '도로 위 기관차 법 1896 (Locomotives on Highways Act 1896)'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로서 지방 정부가 재량에 따라 자동차 제한 속도를 시속 12에서 14마일 사이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속도 규제는 여전히 가혹했다. 빨간 깃발을 든 기수가 사라진 것은 다행이었지만, 자동차의 주행 능력에 비해 법이 정한 제한 속도는 여전히 말도 안 되게 낮았다. 자동차 기술이 신뢰를 얻고 더 빠른 모빌리티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늘면서, 1903년 마침내 제한 속도가 시속 20마일로 상향 조정됐다. 제한 속도는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올라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
1896년의 세넷은 “자동차는 앞으로 훨씬 더 유용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며, 우리 주변엔 아직 깨뜨려야 할 자동차에 대한 어리석은 편견이 많다... 자동차는 마차보다 운전자가 제어하기 쉽고, 조향과 브레이크 능력 모두 마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말 없는 마차의 위험은 크게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어조는 말의 지능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말없이도 자동차는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원시 자율 주행과의 작별을 아쉬워 말라." 달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당시의 자동차 포비아는 자율 주행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였으니, 우리들의 걱정과 방향이 반대다. 만약 그가 현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자율 주행 자동차 회의론자였을까?
Carrages With Horses Shall Go, Again
그의 책이 나온 지 120년을 훌쩍 넘긴 지금,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를 두고 누구도 너무 빠르다 위험하다 불만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었던 자동차 사용을 엄격하되 유연한 법과 규칙을 통해 인류의 삶 속에 잘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세넷의 통찰은 옳았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자동차를 더 안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고, 이를 위해 현대 문명이 발견한 해결책이 자율 주행 패러다임이다. 자율 주행 패러다임은 자동차에 말이나 인간보다 인지, 계산이 더 빠르고 조작 오류가 적은 가상의 운전자를 태우자는 생각이다. 자동차 기계 기술은 충분히 무르익었으니 인공지능의 힘을 빌어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자는 후세의 이 노력을 21세기의 세넷은 두 팔 벌려 반겼을 것이다.
자율 주행 기술이 가져다 줄 혜택과 필요성에 대한 인류의 컨센서스는 이미 충분하다. 현재 수준의 자율 주행 (레벨 2)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도로 교통 안전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운전자들은 아직 컴퓨터 인공지능이 나를 대신해 운전하는 것을 위태롭게 생각한다. 당연하다. 어떤 기술이 아무리 고도화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무결점일 순 없다. 자율 주행 자동차의 오작동 확률이 수천 분의 일이라 하여 교통사고의 피해 정도도 고전 자동차 사고의 수천 분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동차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누군가는 그 사고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책임의 주체는 차량 소유주이건 서비스 사업자이건 차량 제작사이건 결국 인간이다. 인간 행복 증진을 목표로 한 자율 주행 보편화에 가장 필요한 태도는 생산과 유통, 소비 전 영역에서 인간이 만든 기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완전 무결성을 자율 주행기술 보편화의 대전제로 못 박으면 자율 주행 기술은 우리 삶 속에 영원히 자리잡지 못할 수도 있다.
자율 주행의 보편화는 사라졌던 말의 지능을 마차에 되돌리는 수준에서 시작해야 한다. 학습과 판단에 있어 인간의 뇌를 능가는 인공 혹은 생체 지능은 아직까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모든 면에서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율 주행 기술은 완전무결해질 수 없다. 매일 단순 기능만 쓰는 휴대전화도 가끔 오류를 일으킨다. 하물며 복잡계 세상을 학습하며 판단하고 시시각각 불확실성을 처리해야 하는 자율 주행 자동차에 무결점을 기대하는 것은 순도 높은 욕심이다. 휴대전화의 에러가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자율 주행의 에러는 실로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율 주행의 오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명령할 순 있지만 잘못의 책임을 물을 순 없다. 그렇다고 완전한 무인 자율 주행 상태를 뜻하는 레벨 5 시대가 오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마부를 도와 능동적으로 마차를 끌던 말 수준 지능의 도움만 있어도 인간 드라이버의 오류 가능성은 현저히 줄고 도로 교통 안전성은 높아질 수 있다. 우리는 자율 주행의 부작용 만을 고민하며 누군가 완전체를 내놓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신뢰성이 충분히 검증된 자율 주행 기능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사용하되 항상 의심하자. 의심하는 태도는 새로운 기술을 성장시키고 안정화하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조건부' 자율 주행을 '완벽한' 자율 주행으로 의심 없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고는 늘고, 그 결과 완전 무인 자율 주행을 향한 인류의 노력이 움츠리고 주춤할지 모른다.
자율 주행 기술을 향한 우리의 기대, 우선은 말의 지능 정도로 만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