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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호 Nov 09. 2023

iii1. F1의 지혜

PART iii. 자율 주행의 미래를 고민하다

Photo: FIA_F1_Austria_2023_Nr._10_(2) by Lukas Raich under CC SA 4.0 International


자율 주행 패러다임의 등장은 하드웨어 집약적이던 자동차 산업의 체질을 소프트웨어 융합 산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자율 주행 패러다임의 최종 목표는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완벽에 가깝게 안전한 도로 교통수단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불가능한 임무의 해결사는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자동차 메커니즘이 아닌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신규 인력 채용 트렌드를 보면 이 충격적 변화가 눈으로 보인다. 최근 자동차 회사의 R&D 채용 공고는 자동차 회사의 것인지, 전자 회사의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자동차 R&D 인력 채용 시장에서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 공학 인력 수요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반면, 인공지능, 로보틱스, 전자 제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국내 여러 대학의 기계/자동차 공학과도 더 이상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연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전동화 물결의 직격탄을 맞은 내연기관 연구는 기계 공학 분야에서 사실상 절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아가 자동차 패러다임의 변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자본의 흐름에 맞춰 변신한 결과다. 자율 주행이 주도하는 지금의 자동차 운동장은 소프트웨어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자동차 분야에서 자율 주행만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섹터가 또 있다. Formula One (F1)을 필두로 한 모터스포츠다. 모터스포츠에서 레이스카 하드웨어 성능만큼 중요한 것이 드라이버의 감각과 지능, 즉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다. 모터스포츠는 인간과 자동차의 한계를 동시에 시험하는 극악의 자동차 테스트 베드다. 프로페셔널 레이싱 드라이버는 스스로 1) 트랙의 가장 빠른 경로를 찾고, 2) 시시각각 움직이는 주변의 충돌 요소들을 예측, 회피하고, 3) 레이스카 하드웨어의 여러 성능 한계를 제한된 시간 내에 학습하고, 4) 레이스카가 이 성능 한계를 넘어버려 통제 불능 상태로 빨려들지 않도록 최적의 컨트롤을 유지해야 한다. 레이스 드라이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F1 드라이버는 시속 300km를 넘나들며 레이스카를 성능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이 한계 영역에서도 레이스카를 꽤 안정적으로 제어한다. 프로페셔널 레이스 드라이버는 인공 지능 드라이버가 넘어서야 할 궁극의 목표다.


자율 주행 자동차 개발 붐은 자율 주행 레이스카 분야를 개척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낳았다. 하지만 자율 주행 산업의 전체 규모를 생각하면 인공 지능 레이싱 드라이버 (Racing Driver)와 레이스 드라이빙 (Race Driving)에 대한 투자 규모는 참으로 소박하다. 이는 자율 주행 기술이 아직 자동차 성능 한계선 근처에서 생기는 불확실성까지 처리해야 하는 레이스카 문제까지 걱정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현 수준 자율 주행 서비스에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시속 130km 언저리다. 주행 구간의 곡률이 커지는 등 차량 거동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안전 속도는 훨씬 더 떨어진다. 현재 자율 주행 차량을 이용한 레이스는 두어 대 미만의 레이스카가 서로의 물리적 간섭을 최대한 피한 포메이션을 정해두고 랩타임을 겨루는 수준이다. 컨트롤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까지 구사하는 레이스 드라이빙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인간 드라이버를 자동차에서 지워 없애려는 '자율 주행'과 인간 드라이버 없인 상상하기 어려운 '모터레이싱', 이 두 개의 원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식 시작까지 기다림이 더 필요할 뿐, 자율 주행 기술이 완벽을 추구할 시점이 되면 인공 지능 드라이버는 인간 레이스 드라이버의 지능을 품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레이스 드라이빙의 정점에 F1이 있기 때문에, F1에는 분명 자율 주행이 배울 거리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레이싱 라인 (Racing Line)

레이스 드라이버가 감속이라는 가장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트랙 구간이 곡선 구간, 즉 코너다. F1 드라이버는 주어긴 곡률에서 레이스카의 속도와 가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이동 경로를 찾는 본능이 있다. F1 드라이버가 최적 레이싱 라인을 그리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이를 구현하면 자율 주행 차량의 안정성, 에너지 효율, 타이어 활용도를 최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타이어 관리

장시간 레이스가 이어지면  타이어 마모가 누적되고, 레이스카의 핸들링 성능이 떨어진다. F1 드라이버는 이 같은 동역학적 변화를 계속 학습하고 현 상태에서 레이스카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본인의 드라이빙 스타일을 수정한다. 공유 차량이나 로봇 택시로 사용될 자율 주행 차량은 단위 기간 당 서비스 마일리지가 클 것이기 때문에 타이어 마모율이 크고, 수명 단축도 빠를 것이다. 타이어의 건강과 수명은 차량의 안전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타이어 마모에 따른 F1 드라이버의 적응 전략을 이해하는 것은 자율 주행 차량의 안전 성능을 높일 특급 팁이다.


브레이킹 기술

F1 드라이버는 최적의 코너링 속도를 얻기 위해 트레일 브레이킹 같은 섬세한 브레이킹을 기술 사용한다. F1 드라이버의 브레이킹 전략은 자율 주행 차량이 급하게 속도를 줄이거나 위험 요소를 회피해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적 환경 적응과 예측

다른 차량의 돌발 행동부터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레이스 트랙의 주행 조건은 빠르게 변한다. F1 드라이버는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예측해 추월 또는 방어 동작을 계획한다. 자율 주행 차량 역시 보행자, 자전거 사용자, 다른 차량들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동적 도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레이스 드라이버의 인지, 판단,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은 수학 혹은 확률적 최적화 프로세스가 채울 수 없는 공백을 메꾸는 작업이다.


핸들링 한계

F1 드라이버는 본능적으로 타이어의 접지력이 한계에 이를 때까지 레이스카를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자동차 균형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자율 주행 차량에 이 같은 극단적 드라이빙이 필요한 가능성은 낮지만, 한계 상황에서의 차량 동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빗길, 빙판길 미끄러짐 같은 한계 상황을 피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통제불능 상태로부터의 회복

F1 드라이버는 레이스카가 미끄러지거나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도 차량이 파손이 되지 않는 한 레이스카를 정상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다. F1 드라이버가 통제불능 상태의 레이스카를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이해함으로써 자율 주행 인공지능의 제어능력을 보완할 수 있다.


F1 드라이버를 탐구한다고 해서 인공지능 드라이버를 레이스 드라이버로 탈바꿈할 묘수를 단박에 찾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한의 레이스를 가능케 하는 인간 드라이버의 드라이빙 수학과 과학을 자율 주행에 적용한다면 자율 주행 차량의 안전성, 효율성, 신뢰성을 보다 완벽에 가깝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F1이 자율 주행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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