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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모 Aug 02. 2022

오지라퍼

오지랖+er

옅은 검은색 그림자가 땅으로 길게 늘어져있다. 멀리 있는 산등성이 뒤로 얼굴을 내민 첫 태양이 쏟아낸 빛은 오지라퍼의 몸을 통과하지 못하고 땅 위로 그늘을 길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는 한참 동안 그린 듯이 땅에 붙어 있다. 자신의 그림자 다리, 몸통, 머리를 내려다보던 오지라퍼는 시선을 조금 멀리 끝이 보이는 관목에서부터 가까이 있는 관목까지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음.... 비슷한 곳에 심어져 있는데 가장자리에 있는 한두 그루 정도 나무의 나뭇잎만 심하게 흔들리네...”


앞으로 쭉 뻗은 길 왼쪽으로 잘 다듬어진 관목들이 줄을 지어 이어져있다. 그리고 오지라퍼가 서있는 가장자리의 나뭇잎들은 소리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도 쉴 새 없이 떨고 있고 그 옆 나무의 나뭇잎들은 미동도 없이 편안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오지라퍼는 떨고 있는 나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속으로 말을 건넨다.

‘괜찮아. 나도 너처럼 가장자리에 심어졌어. 가장자리에 심어진 건 우리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떨리면 떨어도 돼...’

그러다 그 아래 산책길 한가운데에 있는 새끼 뱀을 발견하고는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본다. 머리와 몸통은 마치 지금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은데 꼬리는 바싹 말라있다. 몸통을 둥글게 말아 똬리를 틀고 있는 새끼 뱀은 당장 혀를 날름거릴 것처럼 비늘에 윤기가 흐른다. 더군다나 떠오르는 아침 해가 새끼 뱀의 눈동자를 번쩍이게 한다. 그러나 새끼 뱀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오지라퍼는 근처 떨어진 나뭇잎을 들고 새끼 뱀을 간질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참을 간질이던 오지라퍼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풀숲으로 새끼 뱀을 밀어 넣어주고는 일어서서 앞으로 걷는다. 새끼 뱀이 죽은 이유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 오지라퍼의 귀에 낮게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저기, 그래. 거기.”

오지라퍼는 발걸음을 서둘러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쳐다본다. 한 여자는 관목 너머로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서서 동그랗게 구부러진 우산 손잡이로 열매를 따고 있고, 오지라퍼가 서 있는 근처의 여자는 열매의 위치를 알려주며 소곤대고 있다. 궁금증이 도진 오지라퍼는 소곤대고 있는 여자들에게 같이 소곤대는 말투로 묻는다.

“뭐해요?”

“매실 따는 중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소곤대며 말하세요?”


여자들은 소곤대며 설명한다. 이 매실나무는 주인이 따로 있다. 주인이 거의 다 땄기 때문에 남은 건 따도 된다는 말을 듣고 따는 중이다. 그래도 주인이 알면 곤란하니까 조용히 따야 된다며 오지라퍼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한다. 오지라퍼는 가던 길을 아예 멈추고 서서 매실을 따는 우산을 눈으로 좇는다. 매실을 찾지 못한 우산은 애꿎은 가지를 탁탁 칠 뿐이다.


매실나무는 봄 햇살을 충분히 받아 사방으로 뻗은 가지마다 풍성한 잎을 달고 있다. 그 초록 잎에 가려진 매실을 찾지 못하는 여자를 보며 답답해진 오지라퍼는 매실을 같이 따주고 싶은 마음에 관목을 넘어가려다 매실나무 뒤에 있는 집 대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는 주인과 눈이 마주친다. 오지라퍼의 눈이 크게 벌어지는 것도 잠시,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어.... 안녕하세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은 주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더니 한마디 한다.

“얼마 전에 따기는 땄지만 남은 것도 따려고 거름까지 줬는데.”

주인이 하는 말을 들은 여자들은 매실 따는 걸 멈추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오지라퍼도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만 주인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줄곧 쳐다보는 매실나무 주인을 뒤로하고 오지라퍼는 시냇가 옆으로 난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미안한 마음이 더 든다. 그 미안한 마음이 매실 주인에게 향해야 하는지 아니면 매실을 따던 여자들에게 향해야 하는지 헷갈려하는 오지라퍼의 눈에 저 멀리 나동그라진 하얀 양동이 2개가 보인다.

널브러진 양동이로 시선을 빼앗긴 오지라퍼는 걸음을 빨리하여 양동이 근처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옆 벽 쪽으로 층층이 화분이 있는 화단에 국화 모종을 옮겨 심고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몇 년 전에 구청에서 포클레인으로 커다란 화분을 옮겨놓았었다. 화분은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지저분한 잡초만 우거진 채 길을 걷는 사람들의 눈길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화분 속 방치된 잡초를 뽑은 후 국화 모종을 옮겨 심고 있는 남자를 보며 오지라퍼는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저기요,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돌려 오지라퍼를 쳐다본다.

“혹시 시청이나 구청 소속 공무원이세요?”

남자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국화꽃을 심는다. 그리고 흙을 부은 후 장갑 낀 손으로 다진다.

오지라퍼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묻는다.

“그럼, 사비로 이 많은 화분을 옮겨 심는 거예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켜보는 여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조그맣게 대답한다.

“나라에서 노령연금도 주는데, 제가 이 정도는 해야죠... 앞으로 이 국화가 잘 자라야 할 텐데....”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 남자는 나동그라진 양동이를 들고는 근처 시냇가로 걸어가 물을 가득 채워 돌아온다. 그리고 방금 심어놓은 국화에 물을 붓고 다시 시냇가로 양동이를 들고 간다. 한참을 지켜보던 오지라퍼는 남자의 뒤에 대고 소리 지른다.

“감사합니다. 가을이 오면 국화꽃이 만발할 거예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길을 걷는 오지라퍼는 가을에 활짝 피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 국화를 상상한다.


그때 오지라퍼를 A오지라퍼가 급하게 손으로 부른다. 끌리듯 다가간 오지라퍼에게 A오지라퍼는 검지 손가락으로 무릎 정도까지 오는 시냇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보세요. 자라에요. 자라를 보면 운이 좋대요. 그래서 운을 나눠주고 싶어서 불렀어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자라가 물살을 느리게 가르며 헤엄치고 있다.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일렁이는 물속에 반쯤 잠긴 몸은 검은 기름을 칠한 듯 윤기가 흐른다.

“아~~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운이 좋은 것 같네요.”

그렇게 한참 자라를 바라보며 운에 대해 이야기하던 오지라퍼들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친구인 듯 익숙하게 나란히 길을 걷는다.


주로 A오지라퍼가 본인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 오지라퍼는 맞장구를 쳐주는 식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두 오지라퍼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그곳에서 A오지라퍼가 작별 인사를 건넨다.

“저는 이쪽이 집이라 요쪽으로 올라가야 해요.”

오지라퍼도 작별 인사를 한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자라도 보여주시고....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면 꼭 인사할게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오지라퍼는 방향을 바꿔 걸어왔던 길을 계속 걷는다.


묵묵히 걷던 오지라퍼가 가까이 시선을 두며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돌연히 달리기 시작한 오지라퍼를 따라잡기 위해 제법 짧아진 그림자도 바쁘게 따라붙는다. 오지라퍼가 달리며 낮게 소리를 지른다.

“와~~~~”

그러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산책길에 떨어진 풀씨를 먹고 있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라 공중을 한 바퀴 돌더니 근처에 내려앉아 다시 풀씨를 쪼아 먹는다.

“그래, 사람이 다가오면 나는 시늉이라도 해야 멸종이 안 되지. 너희들 그렇게 날지 않다가는 모리셔스 섬에서 멸종한 도도새처럼 될지도 몰라.”


오지라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다 산책길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쪼그리고 앉는다. 한낮의 한껏 달아오른 태양이 거침없이 내리쬐고 있다. 얼마 전,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들어 올리다 화상을 입은 피부가 터져 내장이 흘러나와 금방 죽어버렸던 지렁이를 기억해 낸 오지라퍼는 풀숲으로 기어들어가는 지렁이에게 양손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며 속삭이듯 말한다.

“영차영차. 거의 다 왔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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