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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un 15. 2022

나를 잃지 마세요.

신혼 때다. 남편의 모임에 함께 가게 되었다. 무슨 모임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남편 선배가 모임을 주최했고 대부분 부부동반이었다. 부부들은 모두 다정히 함께 움직였다. 나만 빼고 말이다.    

 

남편은 선배를 보니 반가웠는지 혼자 선배에게 달려가 아는 체를 했다. 강아지가 주인 반기듯 한다. 웃음꽃이 만발한 남편을 보며 ‘설마 나랑 함께 왔으니 나를 인사시키겠지?’ 하고 기다렸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를 흘깃거리긴 했으나 남편이 신경 쓰지 않는 나를 그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잊은 듯했다. 계속 혼자 서있기 민망해 잠깐 로비로 나왔다.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남편이 나오겠거니 하고 출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나오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려고 보니 아뿔싸. 내 핸드폰과 지갑이 든 가방은 남편 차에다 두고 온 것이다.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고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길거리의 행인에게 구걸하다시피 불쌍한 표정으로 전화 한 통을 허락받았다. 모르는 전화번호라서 안 받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받았다.   

  

“나 지금 다른 사람 핸드폰 빌려서 전화하고 있어. 어디야?”

남편은 누워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집이지, 어디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나를 두고 그냥 갈 수 있어?”

“....”     


차마 낯선 사람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위치를 대략 알려주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길거리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입간판처럼 서 있었다. 뜨거운 눈물만을 바닥에 뚝뚝 떨구면서 말이다. 눈물로 번진 시야에서 불현듯 어릴 때의 나를 떠올렸다.     

 

 아마 7살 언저리 같다. 엄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볼일을 보러 다른 동네에 가셨다. 엄마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느라 우리에게서 잠시 시선을 거둔 사이 우리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장소를 이탈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가 안 보였다. 처음엔 무척 당황했다. 동생은 곧 울음을 터트릴 기세였다. 난 울지 않고 동생 손을 꼭 잡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이 도왔는지, 내 마음속의 GPS가 나를 끌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딛는 길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때의 마음이 아직도 생각난다. 낯선 골목과 낯선 길을 걸으면서 ‘난 반드시 집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이다. 선택한 길이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닐 수도 있었을 텐데도 어린 동생의 손을 힘껏 잡고 씩씩하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무사히 우리 집 녹색 대문을 찾아냈다.   

   

미안한 듯 내 눈치를 보는 남편은 끝까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기다리는 내가 더 슬퍼 눈물이 났다. 남편의 특기는 급 화제전환이고 아무렇지 않게 구렁이 담 넘듯이 넘기는 게 재주다. 그리고 침묵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만 그냥 참으면 돼. 그러면 아무 일 없어.’     


항상 마무리되지 않는 일들이 그냥저냥 넘어갔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남아서 나를 답답하게 했다.

씩씩하게 집을 찾아 왔던 꼬맹이는 내 안에 아직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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