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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un 16. 2022

진통 그까이꺼 좀 조용히 해줄래?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됐다. 임신한 아내에게 남편이 온갖 정성을 다한다. “뭐 먹고 싶은 건 없어?”라고 다정하게 묻는다. 밤 중이라도 아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면 바지춤을 추켜올리고 쏜살같이 나간다. 그리고 음식을 갖다 바치며 아내의 배에 대고 태명을 부른다. 부부는 행복한 듯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도 임신하면 저렇게 지낼 줄 알았다. 그러나 내 평생 저런 씬은 찍을 수 없으리라. 난 특별한 일 없으면 혼자서 해결했다. 


임산부 부부요가도 혼자 갔고, 산부인과도 혼자 갔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티브이를 봤다. 태교를 위해 혼자 책을 사서 읽었다. 문화센터에서 아기 딸랑이랑 턱받이를 신청해서 만들고는 혼자 뿌듯해했다. 저녁에는 가끔 산책도 했다. 언제 올지도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옆으로 웅크린 채 잠을 잤다. 


눈을 감으면 산부인과에서 본 다정한 부부들, 거리에서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행복한 부부들이 떠올랐다. 베개에 눈물 콧물이 번진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내 배꼽을 꼬집는 느낌이 났다. 그러자 ‘팍’하고 양수가 터졌다. 아침 7시쯤 되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나 밤 중이 아닌 잠을 푹 자고 병원에 갈 수 있어 아이에게 고마웠다.


양수가 터진 후부터 내 사지는 심하게 덜덜거리며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입술이 회색으로 변하고 출산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제발, 살려주세요.’      


역대급 쓰나미 진통이 내 내장을 다 도려내는 것 같다. 마취 안 하고 내 배를 째고 불을 지지는 것 같다. 그러기나 말기나 간호사는 짐볼 위에서 힘차게 운동하라고 나에게 지시한다. 


진통이 물러가면 그제야 짧은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잠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혼자인 나와 달리 다른 산모들은 남편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와 같이 인상을 쓰면서 손을 잡아 주고 있었고, 어떤 남편들은 아내의 등을 지문이 닿도록 마사지해주고 있었다. 그들 모두 아내의 고통에 같이 아파해주고 있었다.    

 

그때 진통이 다시 몰려왔다. 더욱 강력해져서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신음이 나왔다. 바싹 마른 입술과는 달리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윽, 윽, 악, 악 거리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언제 왔는지 남편이 다가와서 한소리 한다. 

    

“다른 산모들에게 방해되니까 조용히 해.”    

 

진통의 고통보다 그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칼로 쑤시는 듯했다. 남편에게서 상상하지도 못할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 같았다. 모두 둘이서 한마음 되어 서로를 응시하고 서로에 대해 애틋한 분위기에서 우리 둘만 서로 떨어져 있다. 자꾸 어딘가로 사라지는 남편 때문에 간호사는 남편이 어디 있느냐고 계속 나에게 묻는다. 결국, 간호사에게 한마디 듣는다.   

  

“남편분, 산모님 옆을 지켜주세요.” 

    

남편은 항상 나를 민망하고도 불쌍하게 만들었다. 모기처럼 다가와 나만 들리게 비수 같은 말을 내뱉고는 내 자존심을 쪽 빨아 먹고 자기 배를 채운 후 뒤도 안 보고 날아간다. 나를 놀리듯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괴롭힌다. 

     

마음속에 비가 내려도 나에게는 해처럼 밝은 아이가 있으니까, 일단 힘을 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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