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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un 14. 2022

매일 공짜로 변검 공연 보기

    

TV에 나온 변검을 보았다. 경쾌한 음악에 춤을 추는가 싶더니 좌우로 고갯짓을 한 번 하자마자 검은색 화난 얼굴이 노란색 울상 얼굴로 바뀐다. 또 한 번 몸짓을 찡긋하자 노란색 울상이 빨간색 웃는 얼굴로 변한다. 잠깐 딴생각할 새도 없이 얼굴이 바뀐다.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 쉽게 표정을 바꾸지는 못한다. 웃고 있었다면 그 잔상이 남아 그라데이션 되면서 다음 표정을 만들 시간을 번다. 대부분 사람은 그런 듯 보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 한 사람이 남편이다. 고깃판 갈 듯이 쉽게 얼굴이 바뀐다. 내가 보는 평소의 기본 베이스 표정은 미간에 마치 조각칼로 깊게 찍은 듯 주름을 짓고 인상을 쓰고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인상을 쓰고, 똥을 싸고 있을 때도 슬쩍 보니 인상을 쓰고 있다. 핸드폰을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리고 있다.      


그날도 그랬다. 자기는 음식 씹는 소리를 싫어한단다. 조용히 밥을 먹으란다. 밥상 위에 반찬이라곤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오이 김치 등으로 먹으면 다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 것들인데도 말이다. 밥을 먹을 때도 늘 긴장해서 먹고 소리가 나지 않으려 애를 쓰다 보니 가끔은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한 듯한 느낌에 가슴을 치곤 했다. 아이에게도 똑같이 소리를 친다. 아이는 열무김치를 좋아하는데 씹는 소리가 크다고 타박을 준다. 그 와중에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자~ 이제 변신 시간이다. 하나, 둘, 셋!    

  

“응~ 뭐 하고 있었어? 하하하. 난 밥 먹지. 그려~그려~ 좋지.”      


험상궂은 얼굴은 변검을 하듯 화들짝 밝고 세상 좋은 사람의 얼굴로 바뀐다. 난 저럴 때마다 어안이 벙벙하다. 세상 다정하고 세상 밝고 세상 사교적인 사람이다. 전화를 끊으려 한다. 다시 인상이 바뀔 시간이다. 

 자, 하나, 둘, 셋! 미간에 박혔던 주름이 다시 접히면서 인상파로 급 체인지 된다.     


변검술의 활약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빛을 발한다. 잘 때도 리모컨을 껴안고 자고, 핸드폰은 오장 칠부이며, 집안에서 대부분을 화장실에서 살고, 그 와중에 인상만 쓰느라 늘 바빠 보였던 남편은 부부동반 모임에서는 나를 너무나 자상하게 챙겨주고 세상 둘도 없는 금실 좋은 부부처럼 대한다. 평소에는 일절 대화도 없고 나에게 관심도 없다. 내 생일도 모른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내 생일을 재킨다. 꼭 필요한 이야기는 카톡으로만 남긴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궁금하지도 않은지 두 번 다시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러나 변검술에 능한 남편은 바로 변신한다. 미간에 생긴 주름이 쫙 펴고 순식간에 환희에 찬 표정으로 사람들과 나를 바라본다. 가끔은 어깨에 손도 올린다. 타인들은 남편이 말도 많고 실없는 농담도 많이 하고 나를 굉장히 재밌게 해주고 아껴주는 줄 안다. 남들 앞에서 가증스럽게 돌변하는 남편을 보니 모임 자리가 신나지 않는다. 뚱하게 있으면 사람들은 그런 나를 오히려 오해한다. 남편이 저렇게 자상한데 뭐가 잘났다고 뚱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난 늘 그래서 늘 억울한 맘으로 살았다.     


전화가 오거나, 타인과 함께 있으면 남편의 변검술 공연을 볼 수 있다. 이제 의야해하지 말고 즐기면 된다. 다정하게 고기를 썰어 올려주면 날름날름 먹고, 다정하게 대해주면 복화술로 “이거 왜 이래?” 하면서도 막 부려 먹으면 된다. 하지만 남편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남편은 항상 말했다. “난 니 머리 꼭대기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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