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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un 18. 2022

아픈게 아니라 게으른거야!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가 유행이다. 부럽지 않다고 말하지만 콕 집어 말하는 내용이 부러운지 안 부러운지 따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러움의 잣대를 두고 있는 게 아닐까?   

   


부러운 사람은 항상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10년 전 한창 아이가 어릴 때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가까운 곳에 시어른이나 친정이 살고 있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똑같은 워킹맘이라도 삶의 질이 달랐다. 게다가 남편까지 가정적이면 난 부러워서 미친다.    

 


육아로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대는 직장동료 A는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다 봐주셨다. 게다가 살림까지 도와주셨다. 남편과 사이도 좋아 남편 자랑도 심심찮게 들어야 했다. 남편에게 받은 목걸이를 만지작대며 징징대는 그녀 앞에서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힘든 사람은 정작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우는데 현실은 ‘징징대는 사람이 관심받고 잘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같은 육아 동료로 공감을 받고 싶어 했지만 나는 부러웠다. 그녀가 힘들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징징댈수 있는 여유도 가진 자의 것이었다. 

     


똑같이 아이를 낳고 살아도 인생이 달랐다. 난 노예 같았다. 아프면 더 인간 취급 못받았다.      



현존하는 남편은 주로 집 밖에서 서식했다. 비자발적 싱글맘이 되었다. 자려고 노력하는 밤중에 꼭 생사유무를 개수작으로 알렸다. 아침이 되어 나를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침대를 겨우 빠져나오면 또 한 번 아이가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이불 속에서 아이를 건져 올려야 했다.     



잠에서 깬 아이는 눈을 뜨지 못한다. 직장 나가는 엄마는 아이를 오래 푹 재우지를 못한다. 맘이 아프다. 아이에게 억지로 아침밥 한 숟갈 쑤셔 넣지만 아이는 밥을 입에 물고만 있다. 그 상태로 어린이집으로 던져 넣는다. 가끔 해맑게 웃는 아이의 앞니는 그래서 삭아있다.    

 


매번 시간에 쫓겨 아침밥을 굶고 집을 나선다. 아이와 어린이집에서 빠이빠이~ 인사하면서 빨리 퇴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기를 바랬다. 직장에서 용을 쓰고 퇴근하면 어린이집으로 후다닥 가서 놀이터에서 아이가 흡족할 때까지 놀리고, 저녁밥을 먹였다. 체세포 분열같이 배로 늘어나는 집안 살림과 야간까지 이어지는 육아는 산후풍을 고질화시켰다.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얼굴에 수포가 올라오더니 귀 옆 목 부분이 혹처럼 부어올랐다. 수포는 눈 위에도 났다. 두피 속에서도 뭔가 난리가 난 것 같다. 얼굴에 송충이가 기어가는 것 같다. 가끔 표독스럽게 따끔거리며 깨무는 느낌도 난다. 얼굴에 손을 대어 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 대상포진에 당첨되었다. 수포는 머릿속에 잔뜩 생겼단다. 눈꺼풀 쪽은 실명 위험도 있단다. 느낌 아니까~~ 난 이미 세 번째니까.   

  


대상포진으로 입원을 하니 같은 병실 사람들은 모두 60.70대 실버들이었다. 나 혼자 30대였다. 입원하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퇴근 후 들렀다. 아파서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대뜸

“게을러 보인다.”

라고 했다.      


‘감정을 가지지마, 울려고 하지마. 감정 같은 거 넣어둬.’      

평소에도 방전되어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방문을 열고 빼꼼히 쳐다보면서 혀를 끌끌 차던 남편이었다. 내가 왜 힘든지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은 지쳐 힘빠진 나를 게으름의 이미지로 도식화 해버렸다. 애써 징징거려봤자 귀에 가 닿지도 않는다.  

   


감정을 가지면 이 바닥에서 살 수 없다. 감정이 북받치면 미안하지만 바로 멱살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힘대가리가 없는 감정이 자꾸 나를 울린다. 24시간 일만 하는 노예니까, 아픈 게 아니라 게으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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