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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un 21. 2022

탈모인을 위한 시

대학생 때였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의 친구가 부러웠다. 머리숱도 많고 약간 반곱슬 끼가 있던 나는 머리를 풀어 재끼면 정글의 왕 사자가 자다 깬 모습 같았다. 풀어 재키는 것을 포기하고 묶고 다니면 걸을 때마다 괘종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과 친구 현정이는 탐스러운 여우 꼬리 같다 하며 오히려 부러워했다. 현정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탐스러운 여우 꼬리를 가진 나로 기억되겠지?   

   

그 여우 꼬리는 이제 쥐꼬리가 되었다. 묶은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쳐들고 다녔던 나는 이제 고개 숙여 겸손해졌다. 매일 하수구 신에게 머리카락 재물을 바치면 탈모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수구 신에게 저의 머리카락 재물을 바칩니다.    

 

비옵니다. 비옵니다.

제발 저의 머리카락을 받으시고 

모근이 무병장수하게 해주세요.    

 

폭포수 아래에서 내리꽂는 물을 맞듯

머리를 조아리고

수도꼭지 아래 쏟아지는 물을 그저 거부 없이 받잡겠나이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듯

제물이 되고 싶지 않은 몇 가닥의 머리칼이 

뱀 같은 똬리를 틀며 종아리를 감쌉니다. 

     

알 짤 없어라.

흐르는 물줄기 따라

가야 할 곳, 바로 하수구 신이 계신 곳으로 바로 보내버립니다.     


망에 걸려 아우성치는 머리칼은 

마치 뿌리가 잘린 꽃다발의 꽃    

 

헌 머리칼 줄게, 새 머리칼 주소서.

어야 디야, 아흐 다롱디리, 니나노, 오르리히... 

    

희망 고문에 익숙한 저는 

들이대 정신으로 내리쬐는 물에 머리를 또 조아릴 겁니다.

뽀얀 정수리가 까맣게 불타오를 때 까지 비나이다.

 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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