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외로움이 나를 먹여 살린다.

by nanunna

<외로움이라는 무기>



3. 생계형 외로움이 나를 먹여 살린다.



퇴근길의 고속도로는 급성수면제다. 번개가 치는 듯 깜빡 졸고 천둥이 울리는 듯 화들짝 깨기를 몇 번 반복한다. 어제도 갔던 길, 내일도 가야 할 그 길에서 매번 졸음과 싸워댄다. 껌도 씹어 보고 과자도 먹어보지만, 졸음이 한 수 위다. 크게 음악을 틀고 피곤한 목으로 노래를 부르면 졸음이 그제야 슬그머니 귀를 막고 사라진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오르리히 아싸.”



생계가 아니라면 결코 왔다 갔다 하지 않을 그 길들 위에는 1t 트럭, 화물차, 서로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 버스 등이 분주한 듯 내 곁을 잠시 머물기도 하다가 떠나간다. 그들의 내비게이션은 각자의 생계 노선을 안내하리라.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러게, 생계형 외로움은 꾸역꾸역 참아내는 힘이다.

“출근 시간보다 내 아침밥이 더 소중하다!”라는 말은 맘속에 넣어두고 간헐적 단식이라고 위를 마취시켜야 한다. 내 생각보다 들려주기 위한 말을 선택하고, 니 말도 내 말도 아닌 말을 쏟아내야 할 때도 많다. 가장 한가롭고 평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에 사각형 건물에 갇혀 답답함을 참아내야 한다. 위장병을 달고 살고 안구건조증을 참아내며 컴퓨터와 무승부 눈싸움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기도 혼자 있기도 했지만, 어제의 외로움이 오늘의 외로움에 절대 관용적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꾸역꾸역 잘 참아내면 작고 소중한 사이버머니가 안녕~ 하고 인사하더니 바로 안녕~ 하면서 가버릴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또한, 생계형 외로움은 존나 버티는 힘이다

아침 일찍 묵묵히 우리 집 계단을 내려가시던 아빠의 뒷모습을 내 방 창문에서 본 적이 있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멀어져가는 게 외로웠다. 아빠보다 더 일찍 출근하시는 엄마는 조용히 아침밥 냄새를 사랑으로 남겨 놓으신다. 퇴근한 엄마를 뒤에서 안으면 엄마가 일하는 공장의 냄새가 났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생계형 냄새가 났다. 배달 길에 잠깐 오토바이를 세우고 길가 구석에서 빵과 우유를 먹던 배달 아저씨도, 불볕더위인데도 뜨거운 불 앞에서 떡볶이를 휘젓고 있던 얼굴이 번들한 아줌마도, 스트레스성 담배로 폐암에 걸린 차를 몰고가던 아저씨도 모두 버티고 있었다. 버틸수록 자식들은 쑥쑥 클 것이다.




이처럼, 생계형 외로움은 기계처럼 일어나게 하고 걷게 한다. 버틸 줄도 알게 되고 그 와중에 감사함도 느낀다. 외로워도 고개 숙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게 한다. 피하거나 거절하지 않는다. 그 외로움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어 꿈을 꾸게 한다. 결국엔 내 꿈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더 큰 꿈을 꾸게 등떠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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