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는 무기>
5. 꿈 속에서는 외롭지 않은 이유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 때, 내 동생은 자고 일어나자 마자
“언니, 무슨 꿈 꿨어? 얼른 이야기 해줘.”
라고 말한다.
우리 세 자매는 같이 잠을 잤고 일어나자마자 서로의 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순서는 가장 흥미진진한 꿈을 꾼 사람 순이다. 동생의 꿈 속에는 내가 자주 등장했다. 가끔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꿈 속의 내가 했다면서 씩씩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 속의 현실은 새롭게 리믹스된 현실 이야기였다.
가끔은 빨간색 스웨터 귀신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나를 찾아 쫒아오는 꿈도 꾸었다. 모든 것이 회색인 세상에서 유독 빨간색만 도드라졌다. 스웨터 귀신이 나를 찾기 위해 좌. 우로 몸을 왔다갔다 거리는 것이 소름끼쳤다. 그 모습을 어느 고물상같이 물건을 쌓아놓은 곳 밑에서 숨어서 보았다. 무서운 꿈이야기는 별미였다. 동생들의 환호를 받는다.
꿈을 기록하면 어떨까?
티비에서 우연히 보았는데, 자신이 꾼 꿈을 노트에다 기록하는 사람이 나왔다. 나도 어릴 적에 따라 해보기로 했다.
“꿈노트”를 머리맡에 두는 것이다. 깨자 마자 꿈을 꾼 내용을 바로 적어야 한다. 바로 적지 않으면 아침에 뿌린 향수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지듯 기억에서 휘발되기 때문이다. 꿈을 적은 것을 읽으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지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료집같다.
외롭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꿈 속에는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했다. 현실 속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외로움에 치를 떨면서 살았을 때는 꿈을 잘 꾸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꿈을 꾸게 되었을 때는 이런 저런 계급장을 뗀 온전한 나만 집중조명되었다.
외로움을 느낄수록 꿈은 내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과감히 삭제하고 오리지날인 나만 조명을 쏴댔다. 온전히 나로써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랬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으나 그들은 모두 나에게 호의적이고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 꿈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주인공이 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나여서 주변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극의 재미을 주려고 했으나, 꿈 속에서는 의도적으로 나만을 무대 위에 세운다. 완전 나를 대놓고 편애한다. 내가 주체임을 말한다.
어쩌면 꿈속의 자유롭고 행복한 나는 미래의 암시일까? 순수한 나, 아우라가 있는 나로 살면 행복할 수 있음을 꿈에서 알려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