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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Oct 02. 2022

통증 맷집

통증 맷집     


 

한국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주인공은 싸움하면서 각목에, 주먹에, 하이킥에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입술은 아무렇게나 썰어놓은 소 간같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을 내 싸운다. 엄청 맷집이 세다.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 엄청 많이 맞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을 것이다. 맷집은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를 뜻하는 단어이다. 맷집이 좋으면 싸움에도 유리하다. 그렇다면 혹시 통증 맷집이라고 아는가? 통증을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를 말한다. 통증 맷집을 기르려면 많이 아파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통증을 피해갈 수 없다. 결국, 멘탈싸움인 것이다. 통증은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고통을 모두 포함한다.    


  

나만의 통증 맷집 강해지는 비법 3가지를 전수하고자 한다.



첫째, 무관심에 방치당하기

언젠가 왼쪽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오른쪽 귀에서도 들렸는데 왼쪽 귀가 소리가 더 컸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면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일부러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소리보다 더 큰 문제는 자꾸 어질어질하다는 것이다. 가끔 천장이 빙글빙글 돌긴 했는데 어떨 땐 그 수위가 세다. 거인 꼬마가 쌩쌩 돌아가는 팽이 위에 나를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의 눈알을 쳐다보고 즐기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꼭 밤에 그랬다. 가족들이 다 자는 한밤중에 나만 혼자 깨어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공포에 짓눌려 계속 구토를 연신 해댔다. 꾸엑꾸엑 되는 소리에도 모두 쿨쿨 잠만 잘 잔다. ‘내토내치’다. 내가 토하고 내가 치운다. 다음날 남편에게 그런 일을 전화로 말했더니 자기 지금 바쁘다 한다. 한번은 친정에 갔다가 또 이석증이 와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제발 운전 중에는 이석증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또 이석증이 기척도 없이 찾아왔다. 119에 전화를 걸고 싶어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한도 끝도 없는 어지러움과 구토에 눈에 실핏줄이 다 터져 스스로 나가떨어지지 않으면 끝이 안 보일 것 같았다. 남편은 술에 취해 드르릉 코까지 굴며 잠을 자고 있었다. 슬픈 예감처럼 아플 때마다 기가 막히도록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밝아오는 태양 아래 어젯밤 난리 통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통증 맷집은 무관심 속에서 버티고 이겨낸 상처를 먹고 자란다. 오히려 방치될수록 더 잘 자라는 길가의 잡초처럼 말이다.       


   

둘째, 건성 어린 반응 견디기

매일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아프고 늘 몸살기가 있으니 병이 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어쩌다 보니 대상포진이 나에게 왔다. 아프다고 소문난 병이다. 만약 내 몸에 수포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몸통 부위에 온 적은 있었지만 얼굴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마치 얼굴에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했고 가끔 무는지 따끔따끔하긴 했다. 수포가 눈 위까지 뒤덮고 두피 속에까지 번졌다. 귀밑으로 이상한 혹이 생겼다. 대상포진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 틈에 젊은 사람이 입원하니 겸연쩍긴 했다. 퇴근 후 들린 남편은 입원한 나를 팔자 좋은 사람으로 본다. “게을러 보이네”라고 건성으로 한마디 해준다. 남편은 애원하지 못하도록 미리 바리케이드를 친다. 너무 관심받고 싶어 그 바리케이드를 기어이 타고 온 나의 칭얼거림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나 자빠뜨려버린다. 따뜻한 말 한마디 기대한다면, 위로받고 싶다면 포기하는 게 좋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 ai 로봇의 건조한 음성을 듣게 된다. 마음에도 없는 건성건성 한 반응을 잘 견딜 줄 알아야 통증 맷집이 세진다.    


 

셋째, 계획을 틀지 않기

무리하게 일을 했더니 장염이 찾아왔다. 하루, 이틀이면 낫겠지 하며 병원은 가지 않고 지사제만 약국에서 사다 먹었다. 설사는 멈춘 듯했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었다. 불에 달군 인두를 어깨와 목에 지져대는 근육통과 해골이 지진 나도록 망치로 두드려 패는 편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벌벌 떨리는 사지는 서 있기가 민망했고 벽이 있어야 짚고 걸을 수 있었다. 숨만 쉴 수 있는 기력만이 남았다. 병원을 가고 싶어도 갈 힘이 없었다. 열이 펄펄 끓자 그제야 남편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도 이 악물고 장거리 출퇴근을 했다.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얼굴빛이 어두워진 모습에 직장 상사는 얼른 조퇴하라고 했다. 곧 추석 연휴라 조금만 버티면 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가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내심 남편이 집에서 쉬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이 몸으로 내내 긴장한 채 전을 부치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해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남편이 쉬라고 말했으면 나는 “아니다, 시가가자! 괜찮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쉬자 하면 덥석 물까 봐 아예 묻지를 않나 보다. 몸살기가 있으니 추석 연휴에 집에서 쉰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 내 동생을 자기 부모보다도 더 챙겨는 제부와는 달리 자기 아내가 몸이 죽어 나가도 무조건 본가를 가야 하는 남편은 절대 계획을 트는 일이 없다. 어디 가기로 해놓고 아프다고 못가겠다고 하면 욕을 얻어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가 가서 쉬면 된단다. 법정 전염병이 아니라면 무조건 가야 한다. 시가 가는 차 안에서 널브러져 기절했다. 시가에서 결국 링거를 맞게 되었다. 아프다고 결코 계획을 틀면 안 된다. 그렇게 내 통증 맷집은 강해져 갔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픈 사람이 잘 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 나는 누군가 아플 때 안아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싶다. 내가 키운 강한 통증 맷집이 나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고통의 시간이지만 오롯이 나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오직 나만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고통을 이겨낼 것이고 끝이 있음을 알기에 잘 참아낼 것이라고 말이다. 이 통증맷집은 어떤 힘겨운 상황이나 불편한 상황이 와도 끄떡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를 만들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이며 나의 건강이 가장 소중하고 오직 나만이 나를 안고 아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통증 맷집을 통해 나는 오히려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또 무엇인가가 나를 아프게 하려고 두들겨 팰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좌절하지 않고 내가 나를 껴안고 맷집 좋게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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