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김경일 교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한국인의 독특한 인간관계’다. 강의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질문자가 너무 많았다. 잘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앉은 나는 전략이 필요했다. 요즘 유행하는 할매니얼 스타일의 강렬한 빨간 꽃무늬 니트에,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까지 치켜든 나를 다행히 사회자가 지목해 주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우울증’이었다. 질문에 김경일 교수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엥? 무슨 말이지? 한국인이 원래 우울하다고?’
나는 관심이 쭈뼛 섰다.
안 그래도 신문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우울증 상태가 심각하다. 한국인의 우울증과 자살 소식은 단골 레퍼토리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25.2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단연 1위다. 한 언론 사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높은 자살률이 말해주듯 한국인의 정신건강은 악화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는 411만 명(2021년 기준)에 달하고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100만 명을 넘었다. 이것도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8년 9만 9,796명에서 2022년 19만 4,322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삶의 만족도 역시 OECD 38개국 가운데 34위로 하위권이다. 서현역 사건 등 정신질환자 범죄 급증으로 사회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 (매일경제, 2023, 12.6)
김 교수는 자신이 던진 첫마디에 얼어버린 듯 눈만 뻐끔거리는 사람들 모습이 흥미로웠나 보다. 얼른 이어서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아난다마이드라는 행복 호르몬이 거의 나오지 않는 민족이에요. 태어나길 기질적으로 낙천적이고 행복한 민족이 있는데, 기질적인 측면에서 이 행복인자가 가장 낮은 국민이 한국인으로 14%로 꼴찌고, 북유럽과 북미 사람들은 21%,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인은 45% 수준입니다.”
한국인은 거의 영접할 수 없다는 ‘아난다마이드’라는 호르몬은 과연 무엇일까? 아난다마이드는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엔도르핀보다도 15배 강하다. 별명이 ‘몸속 마리화나’라고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나 긴장되고 두려운 상황에서 공포심과 불안감을 이기게 한다. 이태경 국립서울병원 중독 정신과 과장은 "우리가 큰 사고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가 걸리는 비율이 아난다마이드 성분이 몸에 많이 있는 사람에게는 낮게 나타나고 이런 사람들의 회복이 빠르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행복 물질은 각종 스트레스로부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 건강한 정신과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 몸은 스스로 응원의 물질을 보내는 것이다. 이 행복 호르몬이 오래오래 머물수록 좋은데 한국인은 유독 재빨리 분해해서 없애버린다고 한다. 한국인의 성질 급한 ‘빨리빨리’하는 습관이 행복 호르몬마저 빨리 보내 버리는 듯하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아난다미드를 억제하는 FAAH라고 불리는 효소가 있다. 반대로, 아난다마이드를 더 많이 생산하도록 이끄는 것이 FAAH 유전자의 돌연변이다. 이 변종 FAAH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긴장이나 불안이 줄어들기에 충동적인 약물이나 기타 다른 중독에 훨씬 덜 의존적으로 된다. 안타깝지만 우리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아난다미드를 억제하는 보통의 FAAH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은 민족이다. 우리 몸속에서 아난다마이드가 생성, 합성되지 않는다면 우울증, 자살 충동 등의 신경 관련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각종 스트레스에 취약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우울증 환자와 자살률뿐만 아니라 청소년까지 내려온 마약중독기사는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맞나 싶다.
뇌과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안 그래도 뇌는 우울한 성향에 빠지기 쉽게 배선되어 있다고 한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인간은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쉽게 한다. 뉴스를 봐도 우리는 부정적인 뉴스에 더 열광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렇게 부정적인 것에 쉽게 끌리게 되어 있는 족속인데 하물며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유전자조차 낮은 한국인은 정말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웃긴 게 ‘아난다마이드’라는 행복 호르몬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엄청 성실하고 근면한 국가라고 한다. 즉, 우리 민족은 낙천적인 기질은 꼴등이지만 근면 성실함은 단연코 1등 국가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뭐든 대충 사는 법이 없다.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내지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재테크, 미라클모닝, 독서 모임, 취미활동 등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고, 요즘에는 N잡까지 유행이다. 게으르고 느려터진 것을 참지 못한다. 항상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성실해야 함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선과 악에서 악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그래서 과부하가 올 때까지 또 달린다. 한국인은 어지간해서는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닦달하고 볶아재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멍 때리기 대회’도 생겼을까?
자주 가는 라이언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 웬 사람들이 웃으면서 홍보물을 건넨다. 법률 스님의 정토 대학에서 나온 분들인데 그분들이 외친 말이 흥미롭다. “행복을 공부합시다! 행복을 배웁시다!”라고 말이다. 행복을 배우지 않으면 행복을 모르는 사회가 된 것일까? 얼마나 사람들이 행복이 고프면 행복하고 싶어서 행복학교가 생겼을까? 내가 무엇이 행복한지 잘 모른 채 남들과 같은 기성품 행복을 쫓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의 SNS에 보여주기용 행복에 좋아요가 넘쳐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할까? 행복마저 근면 성실하게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되었을까?
뉴스를 보니 국가 차원에서도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주재하고, 10년 내 자살률을 50% 감축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지원 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대대적으로 자살률을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자살률을 낮춘 선례가 있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에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자 2006년 자살 대책 기본법을 제정해 보건, 의료, 복지,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계 대책을 세워 그 결과 1998년 25.3명이던 자살률이 지난해 17.5명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주는 건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나 자신부터 행복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당신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지금 행복한지 말이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틈을 내어 줘 봤는지를. 다행인 건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후천적인 노력으로 인해 우리 뇌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뇌와 같은 복잡계는 아주 작은 변화의 반복으로도 때로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게다가, 나 스스로 행복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주체자라는 뜻이다. 행복은 별거가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우울해서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이 행복이다. 무엇보다 행복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행복은 나만이 알고 나만이 느끼는 온전한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