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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이란?-2

센과 치히로가 보여주는 일본 사회

by 이차원

*이 글은 결과를 포함한 영화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점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센과 치히로의 원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 만큼, 그가 그의 친구가 스튜디오에 자주 데려온 10살짜리 딸내미를 보고서 그녀를 위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가오나시와 센의 관계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있는 바 있으나 본고에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며, 필자는 센과 치히로가 센이라는 '사회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여자아이'가 그곳에 들어가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사회를 경험하는 이야기'인 것으로 정체성을 정의하며 이야기하려 한다. 다시 말하면, 어린 - 아직 청소년이 되지도 못한 어린 여자아이가 판타지로 묘사되는 이상한 공간으로 가는 이야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지 않는가? 그렇다. 지난 회차 말미에서 얘기했던 센과 치히로의 원작은 바로 루이스 캐럴 작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이하 엘리스)'이다.


https://brunch.co.kr/@2chawon96/1


익히 알려진 이야기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으레 '깜짝 놀랐다'라거나 혹은 '듣고 보니 그렇네'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나 역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한 종류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걸까?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센과 치히로가 엘리스를 너무나 완벽하게 일본화(Japanize) 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른 애니메이션들 혹은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애니메이션들조차도 센과 치히로만큼 완벽하게 '일본 스러움'을 보여준 작품은 없다. 일본어 수업을 시작하면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흔히 강사님들이 '센과 치히로를 보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니까 말 다했다. 그렇다면, 센과 치히로의 그 '특별한 제페나이즈'는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다른 작품과는 뭐가 다를까?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터 정보)


이상한 공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목표로 하는 지역 혹은 시간대에서 '이상한 공간' 그러니까 '접근이 불가능한 공간'을 찾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공간이 그저 공포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 그렇게 되면 이야기의 톤이 많이 달라져 고딕 문학에 기반한 공포 혹은 서스펜스가 되어버린다, 신비롭고 적당한 무게가 있는 그러나 그렇게 공포스럽지만은 않은 폐쇄성에 기반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디에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Setting)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늘 그렇듯 슬슬 아니면 이미 눈치 채신 분들이 있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선택한 그 '기가 막힌 이상한 공간'은 바로 '신사'다.


사실 정확히 얘기하면 작중에서 치히로의 가족이 들어가는 곳은 신사가 아닌 '버려진 유원지-놀이동산'이며,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일본의 대중목욕탕이 등장한다(이 두 장소에 대해서는 추후 속편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그러나, 하야오 감독은 버려진 유원지에 가는 길에 있는 신상, 그리고 그 목욕탕의 방문하는 수많은 신들을 통해서 그 장소를 하나의 거대한 신사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 가득한 '신들의 흔적'이 이 작품을 엘리스와 구분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 엘리스에는 귀족과 왕족들은 있지만, 저런 수많은 신들은 없다. 설사 엘리스에서 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도, 두 작품은 전혀 별개로 구분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다신교 개념은 엘리스가 나왔던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문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등으로 대표되는 다신교적 유럽 신화들에 나오는 신관과도 매우 다르다. 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다신교 신들은 인본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서, 일본의 신관은 '모든 것에 신이 있다'는 '범신론'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어 그 차이가 매우 크다.


이러한 일본적인 신관의 개입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엘리스에 나오는 이상한 공간을, 치히로라는 어린 일본 여자아이가 모험하는 '괴상 망측한 신들이 가득한 일본 사회'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들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키워드인 '신들의 나라'라는 것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기에, 이 작품이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센과 치히로가 보여주는 '일본성'은 단순히 이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범신론'이 본질적인 일본에 관한 이야기라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센과 치히로에서 '지금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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