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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주(Ape'ritif)

자작 시

by 이차원

스물 초반, 늦은 밤. 반쯤 뜬 눈.

냉동 트럭 같은 버스에서

짐짝처럼 내동댕이 쳐지면,

걸어오던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는

불 켜진 냉장고 같기도

얼음틀 같기도 했다


방 안에 혼자 누워

내일에 대한 불안감에

드는 이런 저런 생각들

나는 이대로 냉동 참치처럼

시간과 함께 얼어붙는가 했고

이 방 한칸이 기나긴 밤의

얼음 한 조각인 것만 같았다


지금, 이제 한결 너그러운 맘으로

그날의 기억을 안주로 삼아

약간의 여유를 가지는, 지금.

나는 조용히 생각하곤 한다

약간은 씁쓸했던 그 날의 시간들이

이후의 식욕을 돋구는 식전주가 되었다고

그리고 누구든지 얼음으로 가득찬 각자의 빈 잔에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것만 같다고


식사가 시작되면

누군가는 넥타르를

누군가는 포도주를

누군가는 탄산수를

그 잔에 가득 채우곤 하고

또 누군가는 잔을 뒤집어 전부 비워내고는 한다


하지만, 왜일까.

이제 이 빈자리를 그저

한 잔의 물로 가득 채우고 싶은 것은


여전히 치열한 오늘의 하늘 아래

맨발로 땅을 딛고 선 채,

어제의 고독을 가득 담은

오늘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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