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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원 Nov 18. 2024

17,000원짜리 인생

17,000원짜리 인생

나는,

겨우 그 망할 현수막에서 눈을 떼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라면을 뭐로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계산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고막을 두드린다.


삑ㅡ

삑ㅡ

“3,000원입니다.“

“카드로…”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소리인데,

어째서인지 진우에겐 그보다 슬픈 소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아까 현수막을 봐서 그런가,

오늘따라 내 인생이 더욱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사내식당 비용도 아까워서

매일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웠을 때 들려오던 그 소리.

ㅡ“1,400원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참깨라면이 1,700원이라서.

그 300원이 아까워서 왕뚜껑을 먹었었는데

어쩌면 그 돈이,

1,400원이 내 인생의 값어치였나 보다.


회사가 나를 쓰고 있는 이유가

그런 이유일지도…


진우의 눈시울은 그칠 줄 모르고 다시 따스해졌다.

그리고 철없는 생각이 들었다.

바코드를 찍는 저 순간,

내가 사는 물건이 바코드에 찍히는 것이

내 가치가 결정되는 순간 같아서,

최대한 높은 가격의 라면과 술을 집기로 다짐했다.


4,700원 베트남쇠고기 라면.

그러나 지갑 속 돈은 17,000원이 전부더라ㅡ.

진로소주, 새로소주.

몇 병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가격 맞춰 집어 들고 계산대에 섰다.


“아뇨 손님. 16,000원이라서 1,000원 한 장만 내도 되세요.”


안다.

그래도 17,000원을 건넸다.

그게 내 가치 같아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1,000원을 거슬러 받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내가 그것밖에 안 돼 보여서 싫다고.


“ㅎㅎ 그럼 1,000원은 학생 가져요.”


“아니 그래도…”


300원 아낄 땐 언제고 1,000원은 아낌없이 썼다.

그러나 나는 맨 정신이었다.


사실이다.

그는 아직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취한 건 아니지, 그저 정신을 놨을 뿐.

그러니 맨 정신도 아니겠다.


하늬바람이 분다.

내 살을 세차게 가르며 살포시,

그리고 눈과 함께 어우러져서.


비록 한강라면 조리기구는 쓰지 못했지만,

쇠고기라면 맛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좀 느끼하긴 했다.

덕에 술도 쭉쭉 들어갔다.


“…”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술을 계속 들이켰다.

한 병. 두 병ㅡ.

가랑비에 옷 젖듯이 쭉.

평소 좋아하지 않던 소주지만, 오늘만큼은 그 소주가

연암 박지원이 대접받았던, 신선의 술.

북두칠성을 국자 삼아 내온 창해슈(滄海水) 못지않았다.

그 술의 일화처럼

그도 몸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받았으나,

그의 정신, 특히 죄책감은 땅 깊이 뿌리내려

몸을 따라 날아가지 못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_별놈 2009.8.12 호

그래서, 땅에 서있으면서

최대한 하늘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자

반포대교 위로 올라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무수히 많은 뭇별이 있었으나,

시력이 좋지 못했던 그는,

취기덕에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기를 깨고자, 무작정 다리 위를 걸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_계절 2018.09.07호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도 발목도 힘이 풀렸고,

그는 다리 중간에 앉아 구두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달래 왔던 눈시울을 서럽게 터뜨렸다.


마치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마트에 드러누워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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