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0원짜리 인생
나는,
겨우 그 망할 현수막에서 눈을 떼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라면을 뭐로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계산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고막을 두드린다.
삑ㅡ
삑ㅡ
“3,000원입니다.“
“카드로…”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소리인데,
어째서인지 진우에겐 그보다 슬픈 소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아까 현수막을 봐서 그런가,
오늘따라 내 인생이 더욱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사내식당 비용도 아까워서
매일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웠을 때 들려오던 그 소리.
ㅡ“1,400원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참깨라면이 1,700원이라서.
그 300원이 아까워서 왕뚜껑을 먹었었는데
어쩌면 그 돈이,
1,400원이 내 인생의 값어치였나 보다.
회사가 나를 쓰고 있는 이유가
그런 이유일지도…
진우의 눈시울은 그칠 줄 모르고 다시 따스해졌다.
그리고 철없는 생각이 들었다.
바코드를 찍는 저 순간,
내가 사는 물건이 바코드에 찍히는 것이
내 가치가 결정되는 순간 같아서,
최대한 높은 가격의 라면과 술을 집기로 다짐했다.
4,700원 베트남쇠고기 라면.
그러나 지갑 속 돈은 17,000원이 전부더라ㅡ.
진로소주, 새로소주.
몇 병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가격 맞춰 집어 들고 계산대에 섰다.
“아뇨 손님. 16,000원이라서 1,000원 한 장만 내도 되세요.”
안다.
그래도 17,000원을 건넸다.
그게 내 가치 같아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1,000원을 거슬러 받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내가 그것밖에 안 돼 보여서 싫다고.
“ㅎㅎ 그럼 1,000원은 학생 가져요.”
“아니 그래도…”
300원 아낄 땐 언제고 1,000원은 아낌없이 썼다.
그러나 나는 맨 정신이었다.
사실이다.
그는 아직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취한 건 아니지, 그저 정신을 놨을 뿐.
그러니 맨 정신도 아니겠다.
하늬바람이 분다.
내 살을 세차게 가르며 살포시,
그리고 눈과 함께 어우러져서.
비록 한강라면 조리기구는 쓰지 못했지만,
쇠고기라면 맛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좀 느끼하긴 했다.
덕에 술도 쭉쭉 들어갔다.
“…”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술을 계속 들이켰다.
한 병. 두 병ㅡ.
가랑비에 옷 젖듯이 쭉.
평소 좋아하지 않던 소주지만, 오늘만큼은 그 소주가
연암 박지원이 대접받았던, 신선의 술.
북두칠성을 국자 삼아 내온 창해슈(滄海水) 못지않았다.
그 술의 일화처럼
그도 몸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받았으나,
그의 정신, 특히 죄책감은 땅 깊이 뿌리내려
몸을 따라 날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땅에 서있으면서
최대한 하늘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자
반포대교 위로 올라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무수히 많은 뭇별이 있었으나,
시력이 좋지 못했던 그는,
취기덕에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기를 깨고자, 무작정 다리 위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도 발목도 힘이 풀렸고,
그는 다리 중간에 앉아 구두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달래 왔던 눈시울을 서럽게 터뜨렸다.
마치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마트에 드러누워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