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탈옥
5시 58분, 59분, 59분 31초.
김 팀장은 처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6시 0분 0초 00…
의자가 휘릭 도는 소리와 함께 그는,
책상 위에 보고서를 두고
당당한 걸음으로 회사를 빠져나온다.
다른 누가 부르는 듯한 소리도 들렸으나,
이어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묻힌 듯하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오늘은,
지하철로 퇴근해 보려 발걸음을 역으로 옮긴다.
“지옥철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구나.
사람이 정말 많긴 하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선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열차음이 들려오고 문이 열렸을 때,
무질서하게 들어가는 군중들에 떠밀려
나는 겨우 창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퇴근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긋지긋한 그 인간한테 전화가 왔다.
“진우 씨. 아니 김 팀장.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백번 양보해서 오늘 할 거 다 끝내놓고 갔다고 쳐.
근데 말이야,
상사가 오늘 보고서에 불만을 가지고 피드백을 줬으면
고치거나 상사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청해야지.
이런 식으로 가버리면은ㅡ…“
역시 오늘도 퇴근 후에 강 실장한테 한 소리 듣고 있다.
근데, 한강이 이렇게 예뻤나…
눈도 오니까 크리스마스 다가온 게 정말 실감 나네..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거 들키면 또 혼나겠지?
”네.”
”뭐가 네야.
어?
듣고 있는 거 맞지?
김 팀ㅈ…“
아, 다음 주에 출근 어떻게 하지..
근데 제 분에 못 이겨서 전화 끊는 건 좀 웃기다 ㅎㅎ..
그의 눈에 비친 한강은 어땠을지 상상이 되진 않지만,
필시 우리가 보는 한강의 야경과는 달랐으리라.
퇴근길에 막혀 달리진 못하고 있지만,
무수히 행진하는 적백군(赤白軍)이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보였을까.
아무튼 진우는 저 행진을 더 보고 싶었음은 틀림없었다.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 누구라도 확신할걸.
갑자기 요즘 TV에서 많이 나오는 한강라면.
그게 먹고 싶어졌다.
야경도 보면서, 새로 소주인가?
그거도 조금 마셔보고 싶고…
뭐 내일 토요일이니까ㅡ
그는 그 흔한 밤나들이 결정 하나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
뭐, 자기주장 펼치기에 점점 힘겨워진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ㅡ그래서 그는 네 정거장은 더 간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겨우 내렸다.
날씨가 추워서일까,
아니면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서인가.
금요일인데도 반포한강공원은 꽤 한산했다.
세빛섬이 진짜 예쁘긴 하구나..
갓 탈출한 죄수에겐 세상 모든 게 신기하겠지.
그리고 그 세빛섬의 아름다움이 진우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마침 거기에 편의점도 있었으니,
가보지 않을 이유는 더욱이 없었다.
사진을 찍으며 세빛섬 건물에 거의 근접했을 때,
그 외벽에 걸린 현수막이 진우를 멈춰 세웠다.
축 결 혼
신랑 김 진우 신부 한 설아
12월 21일, 오전 10시
세빛섬 플로팅아일랜드 본관 예식홀
저 사람도 나랑 같은 김진우네…
“…”
한 3분 동안, 그는 그 현수막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걸 바라보면서 입도 떼지 못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찬 건,
공허와 씁쓸함 정도의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심정이
그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고,
그럼에도 저 너머에서 행진하는 적백군의 광채는
아까와 다름없이 계속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