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이는 초침시계에 귀가 따갑다.
서늘한 그의 한숨소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흉악범,
그 이상의 무언가다.
허탈함이란 단어 하나론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이, 그를 감싸고 맴돌았다.
2시 10분 31초.
따스한 햇살에 눈이 부서지고 있다.
하얗고 밝은 눈의 빛깔도
그의 눈에 담기지 않은 채.
그리고 그곳엔 암막커튼에 가려지고 남은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도.
3시 28분 01초.
해가 저물려고 눈치를 본다.
달에게 땅을 비추는 일을 넘기는 게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뉘엿뉘엿 저물려 눈치를 본다.
그러나 그 빛은
그의 눈에 담기지 않은 채.
5시 48분 27초
해는 저물었다.
달은 자신에게 일을 떠넘긴 해에게
차마 말하진 못하였지만
속에 쌓인 응어리를 털어내듯
최소한으로 땅을 비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12시 52분 19초
달은 침묵하던 입을 뗀다.
놀란 뭇별이 도망간다.
그러나
달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
1시 91분 81초
4시 71분 57초
6시 91분 71초
…
7시 8분 31초
그는 일어났다.
읽던 책은 책상 위에 있고, 먼지만 쌓인 지 오래.
피 묻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뒤로하고
멋들어진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근다.
그는 거울을 본다.
수염이 많이 길어졌다.
깎아야 할 때가 되었다.
면도크림과 날붙이.
일렁거리는 따뜻한 물의 아지랑이.
그리고 떨림 없는 그의 손.
그는 거울을 본다.
머리가 가슴까지 내려온다.
깎아야 할 때가 되었다.
미용실 예약을 한다.
25000원짜리 남성커트로.
아니다, 그래. 80000원짜리 펌을.
그는 밤결에 차가워진 메탈시계를 찬다.
수능용 시계는 엊그제 깨졌다.
부적이 없으니 뭔가 허한 느낌.
그는 그럼에도 나아간다.
치이는 사람들
숨 막히는 전철 안
상관없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
사람들의 에어팟 너머 들리는 형형색색의 노래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내린다. 성수역에서
걷는다. 3번 출구를 나와
들어간다. 회사로
세상은 끝난 지 오래.
아무렴 꼰대의 인정 따위 무슨 소용인가.
8시 반부터 잔소리 들을 이유는 또 뭔가.
능력이 없으면 내쫓으면 그만인데,
꾸역꾸역 사람을 앉혀놓고 고문하는 이유는 또 뭔가.
귀에 어떤 충고도 비난도 없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탁자에 앉는다.
8시 51분 41초
9시 12분 17초
10시 9분 61초
11시 91분 17초
…12시 31분 17초에, 그들이 말은 건넨다.
그에게 식사를 권유한다.
그는 한사코 사양한다.
3시 81분 18초
5시 61분 19초
8시 12분 71초
9시 91분 25초
…10시 31분 25초에,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불 꺼진 사무실.
불 켜진 모니터, 그 한 대.
비치는 보고서 91장.
어두운 데이터팩스 76장.
이쯤 하면 됐다ㅡ.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행히 막차를 놓치진 않았다.
그 혼자 앉아 있고
길게 늘어진 좌석들.
쓸쓸하다.
불 꺼진 지하철,
창 밖.
그의 눈에
하나의 풍경이 들어온다.
적백군도
그리스도의 군대도 이곳에 없다.
나 하나 남은 이곳
치지지직..치지직…(후ㅡ푸ㅡㅡ)
아. 아.
안녕하세요, 승객 여러분.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죠?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오늘 좋으셨던 일만 생각하시면서
힘드셨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시는 건 어떨까요.
지치고… 아프셨던 것들 모두,
이 지하철에 털어내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심… 걱정.
모두 두고 내리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츠측.
(털컥)
…
그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본다.
이어폰을 낀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덜컹..덜컹…)
(노이즈 캔슬링.)
Michael Buble-[Feeling Good]
#
Birds flying high,
you know how I feel?
Sun in the sky,
you know how I feel?
Breeze driftin' on by,
you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
….
And I'm feeling
….
….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