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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유언장 최종화 발췌본

by 이 원
브론치스토리에서 연재된 자아유언장은 전개까지의 내용만 나와있습니다.
해당회차는 자아유언장의 최종화의 발췌본입니다.
자아유언장의 중간 스토리를 보고 싶으시다면,
독서의 바다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그러자 그가 운을 뗐다.


하릴없이 떨어진 꽃을 아십니까.

만개해야 할 날에 분분히 낙화하는

무력히도 녹아버리는 그 꽃을 말입니다.


매혹적인 향기도

찬란한 색도 없지만

싱그럽고 나긋하게 가지에 나려앉은 그 꽃을 말입니다.


그러자 편집장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의 하소연을 안주삼아 술과 벗하던 때.

막 해가 뜨려던 참이었다.


그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취기에 말을 이어갔다.


그 어떤 흔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도요.

아십니까?

얼마나 비참합니까!

누구보다 순수한 꽃이었다고요.


왜?

저는 손을 뻗으면 그 모든 걸 앗아갑니까?

그 신은?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물이 진정한 행복이라고요?

영원한 행복이 신이 지어주는 눈물이라고요?

ㅈ까라 그래

누가 이딴 걸 바랐다고.



정말 안타깝게 됐네.

나도 잘 알지.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지 않겠나.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별은 곧 만남을 의미하네.

돌아간 꽃을 언젠가 다시 자네 곁에 올 게야.


(중략)

그는 해가 뜨자 집으로 돌아간다. 편집장은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그를 차마 붙잡지 못하고, 술값을 계산하고 나온다.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집문을 열었다.


“아빠! 여보.”


그의 동공은 하얘졌다.

이루지 못한 바람이 가까워진다.

침대에 누웠다.

오늘 아내가 돌아왔다.

천사 같은 딸아이도.

아니, 어제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시간까지 뭐 하고 오셨어요.


그는 입을 떤다.


얼른 와요. 당신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해 놨어요.


김치찌개는 차게 식어있다.

끈적거리는 숟가락으로 한 숟갈 든다.


집안에 뿌연 담배냄새

흐트러진 이불.


그의 눈은 까매졌다.

눈에 비친 건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아내의 머리카락.

그리고 딸아이의 공주 인형.

알파카 인형은 그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다.

십오 촉 전등이 희미하게 그를 비춘다.

햇살 한 점 없는 그 흐트러진 방에서

오늘도 그는 하늘을 본다.


목란이 활짝 피어있다.

지렁이도 있다.

이런,

작은 드래곤이 용사를 잡으려나 보다.


“도망쳐, 진저맨”

나지막이 뱉는 그의 마지막 숨이

이 방을 더 차게 만든다.


방은 얼어붙었다.


(중략)

그가 무단결근을 이틀 연속하자 무슨 일이 생김을 직감한 편집장이 경찰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왔고, 굳게 잠긴

문을 따고 들어온다.


자네 괜찮나? 으윽.


방안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니, 목란 냄새도 같이.


안방 침대에서 발견한 그는

이미 눈꽃목란이 되어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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