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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Oct 18. 2023

0-1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프롤로그.

인사담당자가 그만뒀다. 그것도 번아웃으로.


이것을 밝히는 것이 내 무능함을 세상에 고하는 것이 될까 몇 번을 고민했다. 적어도 회사에서 '사람 전문가'를 찾아보자면? 그게 인사팀이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즐겁게 몰입하며 일하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호기롭게 일했지만, 나는 5년을 못 가 엎어지고 말았다.


인사담당자인 본인이 그 울타리를 제 발로 탈출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내 속을 시끄럽게 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의사도 병에 걸리지 않나? 물론,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므로 자신의 탓은 조금 넣어두기로 했다. 직업 이전에 인간이니까, 사람이니까.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인사담당자로서의 실패가 아니었다.



이것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다. 미혼인 데다 아이도 없지만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육아라고 하면 '어린아이를 낳아 기름'의 육아를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아'가 아니라 '나 아'자를 쓴다면 나를 기른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는 2세를 고민할 때, 나는 1세(나 자신)를 키우기가 벅찼다. 1인가구로서, 삼십 년 된 애 하나 먹이고 데리고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난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을 중도포기한 죄로, 결국 엄마의 자식(나)을 돌보는 일만 전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껏 입었던 겉껍데기를 잠시 벗고 나를 회복하는 일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인사담당자 아무개 이전에, 인간 아무개를 찾아가는 일을 해보려 한다. 자신을 태워봤던 누구든, 앞으로 태워볼 누구든 자신의 역할 이전에 이름 석자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엄마 누구누구 이전에

기획자 누구누구 이전에

팀장 누구누구 이전에

딸 누구누구 이전에

취업준비생 누구누구 이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며 자신을 찾아나가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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