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cean does not get wet by rain.
약국에서 다한증 패드를 샀다. 17,000원. 얼굴에 나는 땀을 억제해준다고 한다. 아직 7월인데 왜 이렇게 얼굴에서 땀이 나는지, 화장을 해도 송골송골 맺히는 땀 때문에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제주에서의 한여름을 대비하기 위해 캐리어 어느 한쪽에 다한증 패드를 넣어두었다. 과연 그 다한증 패드를 잘 썼을까?
이 글을 쓰는 건 한겨울,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다한증 패드를 샀었다는 사실도 엊그제 기억이 나서 닭살이 돋았다. 그렇다. 제주도는 뭐가 되었든 내 예상을 뛰어넘는 곳이다. 땀이 수치스러웠던 내가, 오히려 땀을 껴안고 살았던 시간을 보내게 했으니까.
오피스 제주에 도착한 지 이틀 째, 오자마자 한 것은 걸레질이었다. 8월의 한여름,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몸을 조금만 움직이니 땀이 났다. 육지에선 땀이 나면 화장도 지워진다. 땀자국이 옷에 남으면 추해진다. 머리도 망가지고. 땀이 나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 도시에선 우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풍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지만, 제주에서 땀에 절어 버린 것은 바라던 모습과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었다.
4년간 판교에서는 항상 화장을 하고 세팅이 된 채로 출근을 했다. 그래서 가끔 마스크에 파운데이션이 긁힌 내 얼굴, 땀이 난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게 어찌나 수치스러운지. 그럴 때면 아주 화장실로 숨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 거울 앞으로 자주 숨었다.
그런데 이곳 제주에서는 시작부터 달랐다.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도 제주에서는 첫날부터 내가 아닌 사람처럼 살고 싶었는지 화장을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났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했으니 여기서 더 감출 것도,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딱히 없어서였다고 생각해서일까.
땀이 나서 못생겨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제 할 일을 했다. 이미 못생긴 것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달라질게 뭐 있을까 하는 털털한 마음도 갖게 되었다. 땀이 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으며 어차피 또 땀이 날 것을 알기에 땀을 닦는 것도 사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땀에 젖은 얼굴을 달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겠구나 싶어서 뽀송한 얼굴을 빠르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나는 땀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돈을 주고 땀을 사러 다녔다. 공유오피스에서 처음 만난 매니저님이 크로스핏을 같이 다닐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크로스핏은 짧은 시간에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땀이 엄청 난다. 크로스핏에 간다는 건 착즙하겠다는 거다. 크로스핏에 처음 간 날, 벽 한쪽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The ocean does not get wet by rain.'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이마를 탁 치게 했다. 쫌쫌따리 내리는 비와 땀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내가 바다가 되면 되는 거구나. 그날부터 이왕 땀 흘리는 거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는지, 거의 매일 크로스핏에 가서 옷이 다 젖을 때까지 땀을 흘렸다. 얼굴이 발갛게 되고 머리가 젖을 때까지, 옷과 몸에서 땀냄새가 날 때까지. 그렇게 100일 내리 땀을 흘렸다.
땀을 부끄러워하던 육지사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매일 땀 흘리는 나는, 다른 사람눈에 어떻게 비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엔 오피스제주에서 청소를 하며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보려 땀을 흘려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땀은 나로 돌아가게 했다. 나의 있는 모습을 받아들인 일이었다. 나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게 된 시간들이었다.
긴긴 제주의 삶을 정리하고 올라온 뒤, 육지에서도 크로스핏을 등록했다. 다시 육지에 와서도 화장을 잘하지 않지만, 특히 크로스핏에 갈 때는 선크림만 바르고 간다. 제주에서 땀 흘린 감각을 기억하려고. 가장 나답고, 건강했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도시에서 풀메이크업하던 과거의 나에게 저항하는 자세로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