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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Oct 22. 2023

5-1 인사담당자, 잠금해제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지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지혜는 인사담당자로 살아가면서 문신처럼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많은 것을 알고도 입을 닫아야 하는 것이 인사담당자의 프로페셔널함이라서, 솔직함에 기회를 주기가 어려웠다. 나의 표현과 시선이 그 어떤 무게도 담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많은 말을 묻어버렸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꽤나 성숙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격려했다. 그래서 무거운 입과 적절하게 텅 빈 눈이 그때는 필요했다.


그 덕분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 뒤에서 누군가를 남몰래 응원하는 것이 특기가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그게 나랑 잘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답답함이 터지고 사람에게 한껏 질려버리는 사건이 찾아왔다. 그래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을 찾아다니고, 사람이 없는 카페와 사람이 없는 밥집을 찾아다녔다. 일주일에 사람과 한번 말을 할까 말까 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회복되었을 무렵, 세상에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은 것에는 좋다고 말하는 데에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누군가를 '몰래' 응원해야 할 이유도,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8월에는 30명에게 편지를 썼다. 보낸 선물과 편지보다 택배비용이 더 나왔는데 그 돈이 아깝지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사랑과 격려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좋았다. 마치 마스크 벗고 숨 쉬는 것 같았다.  시간을 나눈 사람들에게는 줄 수 있는 사랑과 표현에 아낌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속이 시원했다.


나아가서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름을 제주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제로 SNS에서 글을 써서 선물하기로 했다. 사람들을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 것, 타인의 장점, 배울 점을 빨리 캐치하고 잠재력을 발견해 주는 것이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글로 담아 사람들을 격려해 주기로 다짐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받지도 않으며 손해를 보더라도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인사담당자로 벌어지는 돈과 보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러면 인사담당자로서의 지난 삶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제 인사담당자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인사담당자의 옷을 평생 벗어버려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사담당자 시절의 결정과 무거운 마음들은 모두 빛났을 것에 의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직원들을 위한다는 마음을 다르게 표현했던 것 같다. '당신이 잘하고 있다'라고, '수고하고 있다'라고 직접적인 인정과 격려는 해서도 안되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즉 일의 퀄리티, 수준 높은 고민, 더 나은 제도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던 것도 없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다시 인사담당자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싶다. 스스로를 숨기고 우선순위에서 밀어두게 되면 결국 오래 일할 수 없게 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것을 발현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건강하게 자신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인사담당자로 돌아갈지 다른 일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인사담당자로 태어난 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내 존재의 성숙만큼 일의 성숙도와 호흡도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건강한 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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