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더라도 일은 남는다
제주의 기억을 어떻게든 몸에 새기고 싶었다. 타투를 해볼까 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히피펌을 했다. 미래의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이곳에서의 감각을 잊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무모한 도전을 벌였다. 일종의 발악인 셈이다.
히피펌은 도시에서 잔뜩 긴장하며 살던 모습을 지우겠다는 다짐이다. 이왕 예상 궤도에서 아주 벗어난 마당에, 작정하고 흐트러져보고 싶었다. 히피펌의 인사담당자, 정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묘한 쾌감을 준다. 누군가의 기대에 엇나가고 싶은 충동은 늘 있었으나 해소되지 못했는데, 히피펌을 하니 이제야 비로소 내 모습을 찾은 것 같았다. 아니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추석연휴 마지막 날, 집 앞 미용실을 찾았다. 주인은 내 나이만큼의 세월을 미용사로 지내다 못해, 오늘 같은 연휴에도 머리를 말았다.
'연휴가 너무 기니까 또 지겹더라고. 지겨우니까 일을 하고 싶은 거 있지? 차라리 나는 샵에 나와서 일하는 게 더 즐거워'
귀를 의심했다. 일을 버리고 떠나온 나를 농락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좋다니,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삶은 롤러코스터야.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잘 안 풀릴 때도 있잖아. 특히나 어떤 배우자를 만나는지가 영향을 많이 주더라고. 근데 있잖아, 배우자를 잘 만났다고 생각해도 살다가 안 맞으면 또 헤어질 수도 있어. 그리고 그런 타격이 생겼을 때 회복이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지....
삶이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이 흘러가도 나를 지탱해 주는 게 있더라고. 그게 일이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삶에서 찾아오는 어떤 UP & DOWN에도, 배우자와의 소용돌이에도 당신을 버텨내게 했다고.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라고 했다.
겨우 삼십 년을 지내온 나는, 아직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보지 못해서 모르는 걸까. 아니, 일 때문에 매일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는데, 인생 자체가 롤러코스터라니. 그리고 그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에서 가장 믿을게, 가장 버팀목이 된 게 일이었다니.
미용사님의 말을 헤아리기에는 나는 너무 얕았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건 그분의 말에 아주 조금은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미용사님의 나이 50세, 나는 그때 즈음의 나이가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일에 지쳐서 떠나온 여행자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일이 즐겁다고 할까.
일을 버리고 멀리 떠나온 나에게 이 미용실은 여러 가지로 머리를 무겁게 했다. 굵게 만 컬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제주에서 히피펌한지 n일차, 번개를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오은영 박사님 같기도 하다. 잔뜩 흐트러져 산처럼 부풀어버린 머리, 풀릴 줄을 모르는 컬이 주는 기세가 남다르다. 동네 사람들이 머리 어디에서 했냐고 자꾸 물어본다.
좁은 옆동네, 사계리의 메인 거리를 지나면 멀리서도 나인 줄을 안다. 이 머리는 결국 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몇 개월 전에만 해도 이방인이었는데, 이 동네에서 사자머리를 한 사람이 나타나면 나인 줄을 알 것 같아서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된다. 머리는 흐트러졌는데 마음은 흐트러지기 더 어려워졌다.
미용사님을 만난 그날 이후로, 내 생각도 흐트러짐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일'이 내게 준 상처는 언제 나을 수 있는 건지, 언제까지 회피만 하고 있을 건지. 정말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건지, 내게 일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더 분명해지기만 했다.
십만 원 주고 히피펌 했다가 혼자서 뼈 맞고 온 기억이 파마약 냄새처럼 배어있다. 인생에서 일이 빠질 수 없다면, 우리에게 일은 어떤 의미가 될까. 그놈의 컬은 왜 아직도 탱글탱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