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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Oct 22. 2023

3-1 모든 거창한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모든 대단한 일은 사소한 일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에 위대한 의미를 담는 것은 깜냥을 가진 자의 몫이다.

 

  오늘은 내가 머무르는 오피스제주 사계점(공유오피스)에서 촬영이 있었다. 대표님 두 분이 직접 객실청소를 하셨다. 물론 그날 직접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대표가 객실청소를 한다니, 죄송하지만 꽤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내가 봐온 우두머리들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피스제주의 처음을 생각했을까

오피스제주의 끝을 생각했을까

철학이 담긴 공간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던 그때를 생각했을까

일 문화를 바꾸기에 앞장서겠다던 가슴 뛰던 때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김연아처럼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하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님 '빨리 끝내버리자' 뭐 그런 거였어도

두 눈에 물음표 가득한 나보다는 잘하셨겠지..





 난 오늘 아침에 일어나 걸레로 남의 책상을 닦았다. 걸레를 닦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뭘 하고 있나 5초 정도 현타가 왔다. 그러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 봤다.


  아르바이트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집청소는 도와주시는 분이 있었다. 그분이 없어도 엄마는 설거지를 잘 시키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도 집에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독립을 하면서 바뀌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집이 유지되지 않았다. 손님 올 때는 눈 가리기 아웅 격으로 보이는 데만 치웠다.



  그런데 지난 6월이었다. 제주에서 친구네 집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변화가 생겼다. 그땐 무슨 신이 임했는지. 청지기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가다듬으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남의 집이니까, 남의 물건이니까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주 치우고 자주 닦았다. 그런 삶의 방식이 한 달간 장착되고 나니, 육지에 돌아가면 내 집도 반드시 이렇게 소중히 대해주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분당에 올라와서는 한 달간 자조능력을 훈련했다. 30년이나 살았으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자조능력(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아빠집에 가고 싶어도 꾹 참았다. 삼시세끼 나를 먹이고 치우고 재우는데 모든 힘을 썼다. 그 하나하나 어떤 것도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자조능력이 약간은 길러졌는지, 내가 준비된 만큼, 내가 제주에 내려갈 동안 우리 집에 살아줄 사람이 구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또 집을 치웠다.


그리고 지금 제주, 여기서는 누군가를 위해 공간을 치우고 있다.





엄마는 청소는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했다. 공부가 안 되는 것,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 만사의 원인은 네 방 상태랑 관련이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아침부터 걸레 닦는 행위를 하는 건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일단 청소는 정신건강에 아주 좋은 일이니까.


걸레로 닦고 치운다는 건 사소한 일이었지만

친구 집에선 빌려온 것을 소중히 한다는 마음이었고

분당에선 나의 자조능력을 훈련하는 방식이었고

이곳에선 일하는 누군가의 평안을 비는 일이다.


저기 햇볕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누군가가

우울을 바짝 말리며 조금은 산뜻해진 마음이길


이왕 어차피 일을 할 거라면

누군가의 애정과 정성으로 닦인 말쑥한 공간을

잘 차려진 밥상처럼 먹고 마시다가 돌아가길


갑자기 오늘따라 두뇌가 팽팽 돌아가서

멋지게 일하고 두 발 뻗고 걱정 없이 잠드는

그런 하루도 보내보기를.



'네가 일할 때 평화롭길 바라'

내가 지금 노마드스탭으로 지내고 있는 오피스제주는 침해당하지 않는 평화롭고 몰입된 시간을 지향하는 곳이다.


나는 문장을 읽으며 생각한다.


아 저건 사랑이구나,

당신의 평화를 빈다는 마음은 온통 사랑이구나.


그 사랑을 묻혀서 걸레질을 박박해야 하는데, 아휴, 내 손놀림은 한참 부족하다. 마음만 먹으면 그거 하나만 온종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인다. 손도 느리고 뚝딱거리기 바쁘다.  능숙함과 빠른 손놀림 깔끔함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잘할 수 있게 될까. 그리고 나는 여기서 또 어떤 거창한 일들을 꿈꾸게 될까.


잊지 말자, 일의 표면이 잠시 사소하게 생각되더라도 그 일에 담아서 하는 의미가 깊으면 사소한 일은 없다. 거창한 일도 결국 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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