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는 얼굴도 예쁘고 키도 아빠 닮아서 큰 편이다. 주하가 학원에 오면 아이돌스타 김채원이 들어온다고 할 정도로 빛이 났다. 게다가 성격까지 좋아서 주하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예쁜 아이들이 같은 여학생들한테 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하는 털털한 성격 덕분에 베프 여자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털털한 성격이 문제였다. 대충대충 하는 털털한 성격은 공부에도 적용됐다. 수학을 풀면 풀이가 없고 답만 체크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아무리 타일러도 고쳐지질 않았다. 물론 성격이 급해 스킵하고 넘어가는 것이 많아서 그렇지 그렇다고 아예 안 해오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다. 연산에서 실수가 많았다. 식은 맞는데 답을 틀리게 적는다거나, 식을 쓰다가 한 단계를 빠뜨려 풀게 되니 답이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할 수 없이 주하 어머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리 잔소리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하고 한숨부터 쉬었다.
주하는 이번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중학교 1학년 학생이다. 항상 급하게 일 처리 하는 주하는 학교 과제도 늘 임박해서야 한다. 내일 학교에서 사회 쪽지시험을 보는데, 그것도 방금 생각이 났나 보다. 오늘만 학원 수업을 한 시간만 일찍 끝내달란다. 쪽지 시험공부 준비도 해야 하는 데다 여러 나라 기후에 대해 발표까지 해야 한단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컴퓨터 작업이 서툴러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수행평가로 발표하려면 PPT로 워드 작업도 하고 기후에 대한 자료 조사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정리도 해야 한다.
주하는 무얼 하던지 대충 몇 줄을 적고 다 했다고 책을 덮는다. 다 하고 나면 늘 엄마는 겨우 10분 지났다고 했다. 꼼꼼하게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까지 많이 듣는다. 엄마의 레퍼토리는 늘 똑같다. 잔소리할 때는 예전에 잘못한 것부터 다시 이야기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겨운 말들뿐이었다.
늘 하는 잔소리로 랩을 해 보면 푸푸푸~
글씨 예쁘게 쓰라, 샤프 똑바로 잡아라,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라.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 필통이 지저분하다, 사용하지 않는 문구류는 버려라, 학교 다녀오면 교복은 옷걸이에 걸어라, 신발은 가지런하게 놓아라, 마스크 똑바로 쓰고 다녀라, 손을 깨끗이 30초 동안 씻어라.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한 곳만 반복하는 고장 난 녹음기를 계속 틀어놓은 것처럼 볼 때마다 하는 것 같았다.
주하는 주하대로 억울하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공부 자체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다만 공부하는데 너무 짧게 시간 투자를 하고 있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독서를 해도 심지어 밥을 먹어도 10분 만에 후딱 먹는다. 그렇게 10분을 먹다 보니 잘 체했다. 학원에 늦게 오는 날이 많았는데, 그때는 영락없이 체한 날이었다. 단 10분 만을 쓰기에 얻는 것보다 놓치는 게 더 많았다.
운동을 좋아해서 집에 오면 샤워하고 저녁도 10분 만에 해치웠다. 샤워하러 들어가서도 물만 무치고 나오는지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저녁을 단숨에 먹고는 30분이 넘도록 카톡을 했다. 참다못한 주하 어머니의 고함 소리가 들려서야 카톡을 멈췄다.
너 수행평가도 해야 한다며. 쪽지 시험도 보고. 할 거 많은 애가 웬 늑장이야?
그제야 생각난 듯이 “엄마, 이제 수행평가를 해야 해요.”
주하는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엄마의 눈빛이 오늘따라 가슴에 콕 박혔다. 이번만은 그 지겨운 잔소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수행평가를 꼼꼼히 하려고 결심했다. 마음과 달리 컴퓨터를 켜자 막막했다. 흰 바탕의 PPT 화면이 나오는데, “저걸 언제 해 보고 안 해봤더라?” 전혀 기억이 없었다. “제목을 추가하려면 클릭”하라는 데, 아직 제목도 안 정한 상태라 더욱 암담했다.
컴퓨터로 숙제하려면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쩌지 진작 배워 둘걸. 후회가 태산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배우라고 엄마가 다그쳤지만 10분도 채 생각하지 않고 단칼에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치던 초등 시절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PPT에서 도표 만드는 작업은 엄마가 도와주고 다른 것은 스스로 해 보기로 했다. 기후에 맞는 그림도 넣고 강수량을 비교하는 그래프로 넣었다. 그리고 기후의 특성을 워드로 쳤다. 그 사이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됐지만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기후에 대해 PPT 작업도 다 했고 한 번만 발표 연습만 해 보면 될 것 같았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후딱 한 번만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발표하려는데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 갔다. 줄줄 읽기만 하는 주하의 모습을 본 본 엄마의 팩트 폭탄이 이어졌다.
“주하야, 운동할 때 기압 넣던 그 목소리는 어디 가고 모기만 한 소리만 나네.” 하고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을 연습하고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조용하다 못해 있는 듯 없는 듯 한 주하의 남동생 병현이 히죽 웃으며 한마디 했다.
“누나가 공부를 다 하네. 참 신기하네. 신기해”라면서 이번엔 10분은 넘었고 한 시간은 흐른 것 같다고 했다. 10분이면 모든 걸 다 완벽하게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주하가 오랜 시간 집중을 하면서 한동안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렇게 하고 보니 평화로워지는 것 같았다. 아하! 집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던 친구의 말들이 떠올랐다.
영수는 주하네 반 1등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친구다. 월화수목금 공부할 분량을 정하고 노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예습과 복습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몰두해서 하면 어느새 다음 수업시간이 다가온다고 했다. 10분 동안 정말 많은 내용을 볼 수 있어서 쉬는 시간이 제일 활용하기 좋다고 했다. 지금처럼 몰입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던 그때는, 얘는 왜 이리 재수 없는 말만 하는지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수의 말이 충분히 공감됐다.
주하는 영수처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이어리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월요일은 수학 복습 화요일은 사회복습 수요일은 단어 외우기를 하면서 적기 시작했다. 영수처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사실 엄마의 입김이 크다. 강제적인 힘으로 책상에 앉아서 하게 되었지만 하다 보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것이 제대로 실행을 했는지 점검하면서 그 오기가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
주하가 “엄마 몇 분 지났어?”라고 당당하게 물었다.
“저녁 먹고 밤 9시에 시작했으니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가네.”
“와 아 겨우 10분은 아니네. 10분 공주에서 탈출했네”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지자 엄마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스스로 해 보는 수행평가 경험이 기반이 되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주하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목표를 갖게 했고, 시간 활용을 지혜롭게 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공부의 가치는 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때, 목표를 정할 수 있다. 엄마 목표가 아닌 자녀의 목표일 때 지속해서 할 수가 있다.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큰 그림을 그리게 되어, 아이 스스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주하는 수행평가, 학습에서도 스스로 공부함으로써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조금씩 시간을 늘려 꼼꼼히 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대충 하게 되면 아는 지식이 얕아서 공부의 구멍이 생긴다. 스스로 하는 공부는 자신감을 높이고 자녀를 더욱 현명하게 이끌어준다. 아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치밀하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어. 이는 결국 꿈으로 이끄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10분의 활용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노는 시간 10분은 아주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집에서 10분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시간을 잘 활용할 때 공부의 속도를 이렇게 높게 해 준다’라고 주하의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다이어리에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고 하셨다. 첫 번째 상담 오셨을 때와 달리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주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