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뱅대리 Mar 03. 2024

사회성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룸살롱 가기 싫어요 과장님'

제일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 단 한 번에 취업에 성공했다. 그때는 스스로가 꽤나 자랑스러웠다. 기뻐하시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자면, 왠지 내 인생은 앞으로도 탄탄대로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첫 번째 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이 있었겠지만, 특히 그때의 나는 아직 알에서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올챙이었다.


기분이 곧바로 태도가 되는 미숙함...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며 공감대를 만드려고 애썼던 미생...

챙김 받고 싶어 일부러 연민거리를 만드는 직장 내 애정결핍...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때의 뱅대리는 회사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체력이 준비되지 않은 어른이었다.


대학 시절,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게 학생의 본분이라고 생각해서 알바 따위는 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머리를 키운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을 배운 다른 사람들 만큼의 일머리가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나의 그런 요령 없는 일처리 능력은 미생 시절의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하.."

매 순간 탄식이 나왔다. 매일 네 시에 은행 문을 닫는 순간까지 전력 질주를 하다가 셔터가 내려와야 쓰러진 듯 엎어졌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업무에서 자신감이 없어지자 동료들과의 관계도 쉽게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내가 여태 살아왔던 방식의 인간관계론은 직장이라는 생태계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노력을 할수록 상처받는 시간이 늘어났다.  당시의 나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 총과 칼대신 손수건과 마시멜로를 들고나간 이등병 같은 모습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사회성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어느 그룹에 가도 모든 사람들과 둥글게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변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사회성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해주었다. 남들의 평가에 상관없이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 나는 '사회성'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사회성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 깎였던 자존감보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그때의 상황 자체가 훨씬 힘들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나는 상황과 주변을 탓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왜 내 주변에는 이상한 선배들만 있지?"

"난 누구와도 잘 지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미움을 받지?"

온통 머릿속  부정적인 물음표들로 가득 다. 그때는 왠지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내가 여태 살아온 인생을 부정당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배웠다..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손을 벌려서 좀 더 사람들과 간격을 만들어야 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독심술은 내가 직장이라는 정글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배워놨어야 했다..

그리고 직장 내 사람들에게  진실을 투자하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좀 더 입을 무겁게 했어야 했다..


그래.. 신입직원이니 일을 잘 모르고 사회생활 경험도 없으니 그런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내가 가장 적응하지 못했던 부분은 바로  조직의 문화였다.

군대도 나름 힘든 곳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런 수직적인 계급사회를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었다. 지만, 이곳에서의 조직 문화는 내가 생각해 왔던 젠틀한 금융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먹던 술잔을 쓱 한번 닦아서 건네는 것도 너무 비위생적으로 느껴졌다.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야 하는 회식자리.. 주야장천 외쳐대는 건배사와 원샷은 술찌리인 나에겐 업무이상의 고역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고향이 그 근처라는 이유로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소재점포에 발령받았다. 거주할 곳이 없어서 회사에서 얻어준 합숙소에서 당시 차장님과 부지점장님과 함께 숙소를 사용했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도 청소에 대한 압박부터 인생 조언이랍시고 건네는 잔소리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순간이 업무의 연장선상이라고 느껴졌다.

더 이상한 문화는 그들만의 술자리 문화와 연대감 형성이었다. 얼큰하게 술이 취하면 노래방 도우미들을 부르거나 꼭 룸살롱에 갔다.

처음엔 이게 드라마에서 보는 직장 생활의 한 장면이구나 싶었는데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문화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신입시절 당시에는 싫다고 말하면 사회생활 주홍글씨가 박힐까 봐 이런 문화를 쉽게 거절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너무 빈번하게 지속되는 이런 문화는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싫다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과장님.. 저 이제 룸살롱은 안 가고 싶어요..'

'이렇게 남자들끼리 어울리면서 서로 연대감이 생기고  호형호제하면서 나중에 다 끌어주는 거야. 잔소리 말고 따라와'

"..."

단박에 거절당했다. 다 나를 위한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가스라이팅에  현혹되었다. 가는 것 자체도 싫었지만 몇 십만 원씩 그런 유흥자리에 선배들이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몇 달 뒤에 그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네가 쏴. 카드 안되니까 현금으로 뽑아오고"

"..."

술도 못 먹고 원하지도 않는 유흥 자리에 몇 번 끌고 가더니 신입이었던 나에게 이제는 네가 사라고 말하는 선배들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래. 이거 돈 줘버리고 끝내자"

난 그렇게 현금으로 과장님께 150만 원을 줬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분노가 차올랐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직장의 선배들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좌절스러웠다. 그 선배들 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숙소에 사는 부지점장과 차장님은 숙소에 노래방 도우미까지 불러들여서 새벽까지 고스톱을 치면서 나에게 라면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숙소마저 들어가기 싫었다.

당시에 그런 꼴이 보기 싫어서 번이나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회사로 출근하기도 했었다. 그 선배들은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주말에만 집으로 돌아가며 평일엔 지방에서 이런 생활을 하고 지냈다.


느낌표였던 나의 직장생활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물음표로 바뀌었다.

아마 대학생활 내내 이 직업만 바라보고 몇 년을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사표를 던졌어도 수십 번은 던졌을 것 같았다.

"아직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첫 번째 지점만큼은 견뎌보자"

"여기는 시골이라 그럴 거야.. 서울에 있는 지점으로 가자"

그렇게 밖에 위안삼을 것이 없었다. 평일 저녁에는 등산가방에 막걸리를 싣고 야간산행을 추진하는 센터장.. 실적 달성을 못하면 퇴근 전에 매일 반성문 비슷한 사유서를 은행전표에 작성하고 퇴근시켰던 지점장... 지금 생각하면 절 못할 것 같지만 그때는 은행의 문화가 다 이런 건가 싶었었다.


보통 지방에 배치된 신입은행원은 4년 가까이 그 동네에 머무는 게 당시 국룰이었다. 이 지점에서 몇 년을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좌절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탈출하고 서울에 있는 지점에 가기 위하여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이라는 사유가 있으면 4년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인사이동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좌충우돌 2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서울에 있는 지점입성하게 되었다....

"무기들아 잘 있어라"


..... 아쉬웠던 나의 첫 사회생활.. 결론적으로 그때의 나는'사회성'이 준비된 어른이었다착각던 것이 문제였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오며 두각을 나타냈던 나의 력은 그저 사랑이라는 자양분만 섭취하며 자라온 온실 속의 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에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하던 나를 보면서 옆에 있었던 친구가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회성이란 건 싫어하는 사람이랑 잘 지내는 능력인 거 같아'

그렇다.. 내가 그전까지 살아오면서 믿었던 사회성이란, 나랑 잘 맞고 나를 좋아해 주었던 검증된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였다.

그 말이 맞다.. 여태까지 나는 내가 싫어하거나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그저 피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감정을 기분으로 표현해 버리는 사회성 미숙아였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에게 조차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쟁이였다.

처음으로 야생을 마주하게 된 순간 알게 된 나의 직장생활 장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진 무기라고 착각했던 '사회성'이었다.

첫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다. 꽤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넘어질 수는 있어도 쓰러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어나 두 번째 허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전 02화 경주마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