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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대리 Feb 25. 2024

경주마의 딜레마

'현재보다 소중한 미래는 없다'

오랜 시간 간직해 왔던 꿈을 포기했지만 또 다른 목표가 생기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10년 넘게 품고 살았던 미래의 나의 꿈꿨던 모습을  지우는 것이 서운했을 법도 했을 텐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 속에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을 하니 내 안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의 나는 확실히 열정 중독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내 안의 마음을 지배할 때마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마음속 훈장을 달아주고는 했다.

지금은 시간이 꽤 흘러 불혹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간헐적으로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다시 그때의 열정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다.


성격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다른 얘기를 하나 더 해보겠다. 요즘은 MBTI라는 성격유형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로 서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면

네 가지 혈액형으로 서로의 교집합을 찾던 80년대 생들의 안주거리와는 사뭇 다르게 무려 16가지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서로를 파악한다고 하는데 참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에는 이 단어조차 몰랐었지만 요즘 MBTI에 빗대어 말하면 나는 지독한 계획형 인간인 대문자 J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생활계획표를 작성하고, 주머니에는 항상 수첩과 볼펜이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과한 편이었다.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계획하는 원대한 계획을 매일 세우고 , 스무 개정도의 투두리스트를 아침마다 적어놓으면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압박감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했고 큰 자책을 하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런 부분도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메타인지가 부족하고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유형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치밀한 계획과 과다한 열정의 성격은, 목표를 성취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은 반대급부로 번아웃과 감정의 소모를 동반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도 했다.


성격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샛길로 빠져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은행취업이라는 목표가 생긴 후 처음으로 했던 액션플랜은, 이미 그 목표를 성취한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보는 것이었다.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시중은행 간판이 눈에 띄면 그냥 일단 들어갔다. 심지어 그들이 무슨 업무를 하는 사람들 인지도 몰랐지만  그냥 들어가서 그들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무모하지만 순수하게 나의 꿈을 이룬 그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여기 입사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저 명함 하나만 주세요"

그렇게 근방 5KM 이내에 있는 모든 시중은행은 미스터리 쇼핑을 하듯이 모두 돌아다니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과 선배들의 명함을 수집하며 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번호표가 밀려있어서 바쁜 은행원들에게 민폐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로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 무엇일까만 생각했었다.

당시에 선배들이 해주었던 대답은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한 교집합이 있었다.

은행에 들어간 선배들은 높은 학점과 높은 토익점수등 흔히 말하는 고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가 어학연수, 봉사활동, 대외활동 등 여러 가지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을수록 은행에 등용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당시에 나는 영어는 기초공사조차 안 되어있는 중학생 수준이었고 고시공부를 할 계획으로 학점관리도 전혀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오로지 은행에 입행하기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남은 대학생활을 온전히 집중했다.

제일 먼저 부족한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니 그 해에는 다른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을 정도로 학점과 영어점수를 만드는 데 1년을 갈아 넣었다. 게다가 스펙뿐만 아니라 스토리까지 만들기 위해 주말시간과 공강시간은 모두봉사활동과 대외활동에 올인했다.

너무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나의 삶이 소비되어서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스펙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동안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운 좋게 전국 대학교 포스터모델로 활동을 하기도 했고 독도를 탐방하는 대학생 운영진을 하며 국회의사당에 가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에 있는 대학교를 대상으로 시중은행 인사채용자가 진행하는 모든 채용설명회에 참여했다. 서울, 수도권, 지방 국립대등 전국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은행 입시설명회에는 지하철과 버스, 기차를 타고 가서라도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항상 가장 앞자리에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인사 채용자의 눈에 띄려 노력했다. 실제로 이들은 내 서류심사를 하는 실무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가거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200대 1의 육박하는 서류심사를 통과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문자 J였던 뱅대리의 1년 반의 취업계획은 철저한 계산과 실행의 조화로 완벽하게 성공했다. 서류부터 면접 그리고 최종심사까지 정말 단 한 번에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은행취업만 준비했고, 그 결과 제일가고 싶었던 지금의 S은행을 포함하여 세 곳의 시중은행에 최종 합격을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여정들 속에 후회도 있었고 감사한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경주마 같았던 나의 대학생활시절인 것 같다. 마치 양 옆의 시야를 가리고 오직 결승점만 보고 달려왔던 나의 청춘의 시간들이 지금 와서 보면 너 아쉽다. 내 한 번뿐인 대학생활이 그러했다.

매 순간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나의 대학생활은 오로지 이력서에 한 줄을 채워 나가기 위한 인생이었다. 미래의 결승점 통과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순간의 기회와 인연을 너무 쉽게 지나쳐버렸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포기했고,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관계를 포기하며 그다음 이력서 한 줄을 채우는 선택을 했었다.

마치 소중한 책에 밑줄 한 번을 치려고 너무 많은 내용들을 그냥 다 넘겨버린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소중하지 않은 일상은 없었다.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목표가 사실은 더 많은 기회와 행복의 기회비용이기도 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래서 혹시라도 지금 누군가 그때의 나처럼 '경주마의 저주'에 빠진 청춘이 있다면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현재가 미래보다 훨씬 소중하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했던 과거의 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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