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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대리 Feb 24. 2024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

'포기하면서 시작된 또 다른 꿈'

나의 어렸을 적 꿈은 경찰관이었다. 경찰관이 장래희망인 다른 꼬마들은 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혼자 만화책을 보게 되면서였다. 그 만화는 바로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만화였다. 아마 소싯적에 만화 좀 봤다는 3040세대들은 모두 알만한 유명한 만화책이었다. 그 만화책 속에 나오는 경찰간부 아케치 경감의 스마트해 보이는 외모와 수사하는 모습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아케치 경감 같은 경찰간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내 인생 첫 장래희망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만화책을 보다가 결정하게 된 장래희망 치고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꿈은 지속되었다.

11살 때 결정한 경찰이라는 꿈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굳건하게 바뀌지 않았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진지하게 곧바로 아케치 경감이 될 수 있는 최단거리 루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바로 경찰대학교 진학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경찰대학교는 서울대학교 법대 수준의 진입장벽이 있는 학교여서 나의 실력으로는 진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점수에 맞는 수도권소재의 대학교 법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조금 돌아가는 방법이어도 형사법, 형사소송법등의 경찰간부 시험과목을 공부하며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까지의 생활과 군복무를 마치고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경찰간부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13년 동안 마음먹었던 꿈을 향해 본격적으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군대에서 모았던 돈으로 경찰관부시험 관련 동영상 강의와 교재를 구입하여 독서실을 결제했다. 1년에 단 한번 있는 시험 그리고 30명 남짓 선발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에 13년간 응축해 온 꿈의 에너지를 제대로 쏟아붓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정말 거짓말 같게도 성장드라마의 소년에게 닥치는 폭풍 같은 시련들을 이 타이밍에 마주치게 되었다. 아버지가 실직을 하시게 되어 당장 우리 집은 수입원이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때의 상황은 참 운명의 장난 같은 가혹한 타이밍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tv를 보시거나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계셨고 여동생은 고3인 상황..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삼시세끼 가족 밥상을 차리시며 부엌에서 남몰래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까지 모든 상황이 가시방석같이 느껴졌다.

1집 안 사정이 이렇게 되었는데 나의 오랜 꿈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몇 년간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계획대로 공부를 시작은 했지만 독서실에 앉아있는 시간 자체가 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루하루 돈 문제로 부모님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많아졌고 이 상황에 공부를 하려고 독서실에 가는 나의 모습이, 가족의 힘든 상황을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를 그만하라고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최대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아케치 경감이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을 포기했다.

그렇게 13년간 한 번도 바뀐 적 없던 나의 장래희망은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도 전에 2개월 만에 포기하게 되었다.


허무했던 상황을  누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심정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돛단배를 혼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너무 명확하게 보였던 목표지점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느낌이랄까. 그런 공허한 심정으로 표류하던 중에 아버지와 우연히 구두를 닦으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본인의 신세한탄 비슷하게 친구분 이야기를  내게 하셨다.

"내 친구 00 이는 가족이랑 외국에도 다녀오고 어디로 이사도 한 거 같더라. 잘 사나 봐"

"00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인데요?"

"조흥은행 지점장이야"

"은행원 되면 돈 많이 벌어요? 가족들이랑 외국도 가고 돈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은행 월급 많이 주지"

"아빠는 그럼 내가 00 아저씨처럼 은행원 되면 좋을 거 같아?"

"아주 좋은 생각이지. 네가 은행원 했으면 좋겠다"

"은행원 했으면 좋겠다... 은행원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마지막 그 한마디가 그날 저녁 잠들기 전 계속 내 귓가에 맴돌았다.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아이였다. 가족의 행복이 나의 꿈보다 더 중요했던 장남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돈 문제로 다투지 않게 끔 내가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 속에서 내 인생 2번째 장래희망을 결정하게 되었다.

"알았어 아빠. 내가 은행원이 되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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