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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대리 Mar 17. 2024

정답은 없었지만 오답은 있었다

'퇴사와 이민을 결심한 이유'

퇴사 시뮬레이션을 무한 반복하며 좀비처럼 회사와 집을 왕래했다. 조건 없이 베푸는 온정도.. 타인을 위해 애쓰는 마음도 이제 다 싫어져버렸다.  퇴사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냥 실업자가 되는 건 싫었다.. 이런 고민들로 하루를 채워가던 도중에, 나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보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스스로에게 처음 던져본 이 질문은 화염에 휩싸인 내 마음에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따듯한 기운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곳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직장 안에서도  도태되고 있다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주입시키며  사춘기 소년처럼 삐뚤어져갔다. 그렇게 점점.. 나는 그토록 원하던 직장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영혼 없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몫의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고 할 수 만있다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틔우며 이곳에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싶었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있는 힘껏 전력질주 해왔는데... 마치 출발선이 결승선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실패를 성공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고무공처럼 다시 튀어 오르고 싶었지만 유리공처럼 바닥에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유약한 청년이었다. 운동을 배울 때  공격하는 기술보다 낙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지... 첫 번째 직장생활을 통해 여실히 체감했다.


회사 안에서의 목표와 열정이 없어지자 삶이 재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회사에서의 생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타성에 젖은 선배들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그때  또 한 가지를 배웠던 것 같다..

"사람은 행복을 찾지 않으려고 할 때 고장 난 다는 것을..."

이대로 고장 나고 싶지 않았다... '직장 안에서의 비전을 내려놓고 내 인생에서의 또 다른 꿈은 뭐가 있을까? 나의 궁극적 목표... 행복한 가정생활'

그래.. 행복한 결혼생활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 내 개인적 야망을 버려도 될 만큼 충분히 값어치 있는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목표로 인해 직장에서의 도태됨을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의 평온함이 생겼다. 내 인생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옮겨지기 시작하면서 뭔가 깜깜한 터널 끝에 빛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몽당연필처럼 짧아진 자존감으로 애써 뭔가를 써보려던 애처로움이.. 새로운 스케치북에 훨씬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의 감정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때 내 인생처음으로

이 말에 격한 공감을 했다.

'포기하면 하다..'

삼십 평생 루저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그때만큼은 만고의 진리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회사생활은 힘들고 재미없었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면서 또 다른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의 비전이었던 회사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리면서 익숙하지 않은 권태와 박탈감은 어쩔 수 없이 꼬리표처럼 따라왔지만 일과 내 삶을 분리하기 시작하자 확실히 스트레스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믿기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한민국을 시름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내가 그린 상상 속의 행복한 가정에는 나와 아내를 닮은 아이가 항상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면서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런 과도한 감정이입 때문이었을까?? 정말 하루하루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밤낮으로 관련 뉴스와 생존자 확인을 하면서 무능하게 대처한 정부에 분노하며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생각들을 자양분처럼 먹고 자란 내 안의 괴물은, 상상 속 나의 행복한 가정을  이미 잡아먹어버렸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염세적이고 불안정한 심신의 상태였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고, 결국 극단적인 감정과 결정을 내리게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래.. 이 회사는 내가 바라던 조직이 아니야. 이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어'

'옛날에는 성수대교 다리가 끊어졌었지.. 백화점도 무너졌었어.. 북한은 어떻고? 여기는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곳이 자나'

 '국가는 내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아. 대한민국은 나의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난 이곳에선 아이도 절대 낳지 않겠어'

점점 심각해지는 확증편향이 낭떠러지에 서 있던 나를 결국 절벽 밑으로 밀어버렸다.


"퇴사하자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나자.. 이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어"


그때의 나의 심정은.. 지금 당장 결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런 불행이 나에게도 반드시 찾아올 것만  기분이었다.

나의 대학생활을 모두 바쳐 입사했던 지금의 직장.. 

나의 두 번째 꿈이었던 은행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이곳 대한민국..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세월호 사건과 함께.. 내 가슴에 남은 마지막 별이 익사해 버렸다.

.. 가슴속에 멍든 부표를 띄우고, 나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 준비 안된 채로 직장전선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상처받고 있는 누군가 내 글을 보게 된다면, 나의  직장생활 오답노트 중  가지는 꼭 알려주고 싶다.


첫 째, '출발할 때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실력이 없을 때는 자존심도 없어야만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참고 인내 하는 것 자체가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필요한 '진정한 실력'이다.


두 번째, '버티지 말고 이겨냈으면 한다'

나는 버티라는 말을 굉장히 혐오한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응원이랍시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했던 기억들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감도 안되고 힘도 안되면서 마치 나를 더 나약한 사람인 것처럼 만드는 저 표현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지금 정말 힘들어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 다움을 잃어 가면서까지 버틸 필요는 없어 하지만 꼭 한 번쯤은 본인의 임계점 스스로 어보길 바래.

알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누군가가 깨 주면 결국 프라이 밖에 되지 든.."


세 번째, '시간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시간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 역시도 과거에 내가 일의 주인이라 여기는 태도와 노력으로 시간의 밀도를 높였어야 했다. 이 밀도의 차이가 10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인생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을 나는  지금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직장생활노트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오답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 앞으로 이 공간에  많은 오답노트를  보여줄 예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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