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피터팬의 도박
'마이너스 x 마이너스 = 플러스'
나는 꿈이라는 사치스러운 단어를 좋아한다. 그냥 그 발음부터 활자의 생김새까지 꿈이라는 단어의 모든 것이 좋다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도 좋아한다. 그러면 설령 그 꿈이 부서질지라도 그 조각은 타인의 현실보다 큰 조각으로 빛날 수 있다.
꿈에 취하다 보면 때로는 미래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래의 꿈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꿈을 꾸다가 꿈을 닮다가 언젠가 꿈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바로 나의 꿈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이 바로 '희망'이란 단어다.
직장생활과 대한민국이 싫어졌던 서른두 살 피터팬 청년은 본인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구 반대편 낯선 땅으로 그 '희망'을 찾아 떠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때의 나의 결정은 '현실적인 내가 내린 가장 비현실적인 결정'이기도 했다.
처음 도착했던 뉴질랜드의 첫인상은 공항도 크지 않았고 사람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와 옷차림도 모두 소박하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은 있지만 그때 왔었던 외국의 정취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여타 다른 외국의 이국적인 풍경과 비슷했지만 잠깐 며칠 쉬러 온 것과 이곳에서 이제 살아야 하는 구나라는 느낌의 차이였던 것 같다.
우리는 어린아이 한 두 명은 들어갈 법한 이민가방 세 개를 끌고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백패커에 짐을 풀었다. 짐이 너무 커서 그런지 그곳에 있는 유럽친구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날 저녁 시내 한복판에서 보이는 뉴질랜드 시내야경을 내려보고 있자니 이제 진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 내가 진짜 지구 반대편에 왔구나'
나는 뉴질랜드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지인도 없었다. 앞서 6화에서 이 나라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언급했지만 정말 그게 다였다. 그래서 나에게 두렵지 않았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매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외국 경험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낯선 땅에 도착하고 맞서게 된 모든 상황이 나에게도 전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시종일관 강한 척을 유지했다. 나 하나만 믿고 따라온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지 말아야만 했다. 어떤 이유로든 나의 두려움을 내가 이겨낸 순간 나의 감정은 플러스로 돌아섰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처음 2개월은 요리학교에서 연계해 주는 어학원에서 영어공부에 전념했다. 중학교 때부터 취업할 때까지 지겹게 봤던 영어책이었지만 이제 외국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뭇 영어공부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학생 때부터 이렇게 했으면 진작에 영어는 마스터했겠다'라는 의미 없는 후회와 함께 하루하루 입학 준비에 열중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뉴질랜드를 마음껏 누렸다.
한국에 있을 때 퇴사와 이민을 결심하고 부터는 사돈에 팔촌까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수집했다.
장모님의 아는 지인의 아들, 오촌당숙의 군대 동기, 은행에 송금 보내러 왔던 고객의 친구, 내 은행동기의 대학교 때 룸메이트 형까지... 나는 짚푸라 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여 수첩 한 장에 그분들의 연락처와 이메일을 적어왔다. 어찌 보면 뻔뻔할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 ooo분 소개로 이번에 오클랜드로 넘어온 000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차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정말 감사하게도 이 분들은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나와 아내를 환대해 주었다. 기꺼이 본인들의 시간을 내어 식사 대접을 해주셨고 이곳에서 필요한 정보와 주의해야 할 점까지 알려주셨다.
그분들이 태워주시는 차를 타고 산과 언덕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냄새..
산과 나무가 적셔지며 나는 시원한 냄새..
파란색 크레파스로 방금 칠한 것 같은 바다까지..
누군가는 그냥 바다고 산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때 느낀 감정이 '행복'이라고 느껴졌다.
좋다. 아름답다. 마음에 든다 등 그 기분을 묘사할 수 있는 여러 표현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아..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이 말이 행복이라고 느껴졌다.
너무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던 지난 몇 년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힘을 얻는다. 그 장면이 자연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두 달간 보고 듣고 느낀
초록색, 하늘색으로 도배된 세상 속에서 나는 분명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마이너스 x 마이너스는 = 플러스 ' 가 되는 수학의 원리처럼 내 인생에 고생 끝에 낙이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꿈같은 2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심신을 충전 하였고, 진짜 요리사가 되기 위해 나는 드디어 요리전문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너무 많은 '만약에'에 사로잡혀 결국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안전해지고 싶다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안전함에 빠져 안주하는 순간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는다.
반대로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길이 열린다.
'해본 적이 없어'
'그건 위험해'
'이미 레드오션이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분야라고 해서 너무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 하나로 그냥 시작해야 한다.
살아보니 때로는 '1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행동'이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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