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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대리 Mar 10. 2024

회사에 중간은 없다

'거꾸로 올라탄 에스컬레이터'

첫 지점에서의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우여곡절 끝에 입성하게 된 서울! 내가 발령받은 곳은 전국에서 가장 힘든 지점 중 하나로 언급되동대문 시장 쪽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때의 나는 새 출발에 열정과 흥분으로 가득 찬 사기충천상태였기 때문에  꺼져가기 직전이 안의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필승을 다짐한 상태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계속 주문을 외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전 지점에서 겪은 이상한 선배들에게 보란 듯이 잘 해내는 모습을 줘서, 내가 아닌 그들이 틀린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은행이라는 조직 안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실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적금이나 신용카드 말고도 은행원은 팔아야 하는 상품들이 정말 많다. ELS, ELF, 적립식 펀드, 방카슈랑스, 스마트 뱅킹, 청약 저축, IRP, ISA, 퇴직연금 등  실적판에 나타난 과목만 집계해도 10개가 쉽게 넘는다.

 과목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프로모션 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영업하여 성과를 내면 조직 내에서 더 빨리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나는 영업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사실 은행이라는 기관은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는 인바운드 영업을 할 수 있는 경이 갖춰져 있어서, 본인이 심과 열정 있  그만큼에 비례한 성적을 거둘 수가 다.  나는 서울에 온 이후로 처음부터 전력질주로 달렸다. 덕분에 꽤 단기간에 좋은 실적을 내어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지점장님 추천으로 직원들 앞에서 판매 노하우 강의를 주마다  본사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외에도 서울에는 젊은 또래 직원이 많아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고, 은행의 중요행사에도 참석할 기회가 많아 본사의 높은 분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을 기회도 많았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쏟아으며 내가 상상했었던 은행 생활과 직장 내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렇게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그런 열정을 지속할만한 체력이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급격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느 순간부터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혈변이 나오는 단계까지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때 나는 또 한 가지를 배웠다... '변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지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일하던 곳은 새벽 동대문시장 상인들의 현금파출수납을 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막내 모출납계원인 나는 가장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야 했다.  서울에 상경하며 찾은 신혼집은 지점에서 1시간 반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매일 새벽 5시에 일어야 했다. 7시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10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피곤함이 택배로 배송되는 기분었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제자리인 거 같은.. 마치 거꾸로 올라탄 에스컬레이터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 사실 열정과 정신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육체적 한계는 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버티자! 단계만 겨내면 돼!'

이것이 열정 중독자였던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며 고 있던  유일한 성공방정식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할 것이 아니라 휴식을 선물해 줬어야 했다.  연비 낮은 신체와 예민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나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매우 위험한 심신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는 안 나도 모르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이미 진작에 과부하가 걸려있었는데 이것을 지점장과 동료들이 알아주기만 바라면서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했다.  내가 비록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이렇게 하면 더 인정받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질 줄로만 기대했다. 대상포진, 목 디스크, 치질, 손가락 골절.. 이 모든 질병들이 한 번에 나에게 아왔다.

너무 벅찼다... 번 아웃이 온 것이다. 

첫 지점에서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부리지 않아도 될 욕심까지 부렸던 것이 패착이었다. 건강이 안 좋아지자 열정이라는 연료는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그리고 몸이  좋아지자 매사에 모든 것이 짜증 났다. 생각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불공평한 업무량에 대해 노골적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고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서운한 감정이 다.

'나라면 저렇게 안 했을 텐데.. 나였다면 도와줬을 텐데..'

그때는 동료들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스트레스는 나에게 부과되었던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과한 다.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도 도와줄까 말까 한 게 직장의 생태계인데, 내심 알아서 도와주길 기대하며 서운한 감정을 안고 혼자 그 일을 안았던 순진한 바보였다.

나의 이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동료들은 오히려 서운한 말을 게 내뱉고는 했다.

'초심을 잃었네'

'열정이 예전만 못하네'

서운함이 분노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동료들이 생각 없이 던진 돌팔매질에 내 가슴은 멍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런 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못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들을 굳이 내 가슴에 다시 꽂았다. 그렇게 스스로 가슴에 비수를 꽂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을 내가 먹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확증편향으로 이어졌다. 나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해 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

내가 힘이 들 때 바쁜 이들은 서운한 사람이고, 내가 바쁠 때 힘든 이들은 한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이 한번 굳어버리자  다시 사생활이 죽도록 싫어졌다..


순두부 같은  유리 같은 몸이었던 나는... 서울에 입성한 지 1년 만에  이렇게 두 번째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졌다.

무엇보다 또 한 번 이런 고비를 넘기지 못한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여기에서는 첫 번째 지점 때처럼 이상한 사람도 이상한 문화도 없었다. 이제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어진 기분이었다.

"아.. 결국 내가 문제인가 보다.. 내가 이 조직에 부적응자고 내가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맞지 않는 건가 보다"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나한테서 찾기 시작하자 한없이 우울해졌다... 리고 그 우울감은 매일 한 걸음  부정의 늪지대로 나밀어 넣었다..

그 늪에 다 져버렸을 무렵, 나는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센치 염세주의자가 되어있었다.

'남들 다 잘만 다니는 회사인데.. 난 왜 이렇게 힘들지..'

 나에게는 항상.. 회사는 중간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퇴사시뮬레이션을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 보게 되다..


그때의 나에게는...

'할 수 있다는 최면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정말 간절했다'

누군가가 해주지 않으면 나라도 스스로에게 그렇게 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느덧 이런 시간들은 제 그냥 조각기억 되었다. 그때의 생각만 해도 다시 온몸이 아프기 시작할 정로 쓰린 기억 투성이지만, 아픈 건 그냥 아픈 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년 정도가 지나고 보니 그게 내 지난 기억에 대한 예의일 거란 생각이 든다...


최근 80세가 넘은 어르신과 대출상담을 진행하다가  이런 질문을 드린적이 있다.

"어르신. 혹시 마흔 살로 돌아가신다면 그때의 본인에게 어떤 조언을 하실 거 같으세요?"

"오버하면 안 돼"

"네?"

" 뭐든 간에 오버하고 살면 안 돼. 그러면 건강도 그렇고 결국 다 잃게 되더라고"

"..."

어르신이 해주신 얘기가 그날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이 났었다.


살아남기 위해 열정 중독자가 되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 아프니까 청춘인 거라고 가스라이팅 당하며 사는 인생 후배가 내 글을 본다면  이 말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인생 그렇게 오버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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