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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Feb 18. 2022

부모 복 대신 인복 1

구멍가게 젊은 언니

 

 1980년대

'88 올림픽이 열리기 전, 국민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전라도 작은 시골 마을에 단발머리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부모님과 언니만 여섯 명이 있는 집에 막내 아이. (그 아이를 이제는 막내로 통일)



 가난하지만 가난한 줄 모르고, 불행하지만 불행한 줄 모르는 그냥 밝은 아이.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세상과 단절되어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기에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병설 유치원 입학식에 가서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살고 있는지를 처음 보았으니까. 여섯째 언니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때, 그러니까 막내가 여섯 살 때부터 일 년을 주말만 빼고 매일 다섯 시간씩 집에 혼자 있었다. 부모님은 일터로, 언니들은 학교로.. 골목에 누가 살고 있는지, 친구라는 게 뭔지, 무슨 놀이를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모두 집을 나간다. 막내가 하는 것이라곤 누군가 올 때까지 그냥 우는 일. 울어도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 일 년의 이야기는 다시 풀어내야 한다. 불쌍한 막내를 구출해야 하므로. 여기서 중략)



 일 년을 우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선지 엄마는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유일하게 일곱 딸 중 첫 유치원 졸업생. 가난한 살림에 큰맘 먹고 보내셨다고 하시는 걸 보면 그 시절 무상 유치원은 아니었나 보다. 옷핀을 찔러 하얀 손수건(콧물 닦기용)을 가슴에 달고, 학교 운동장에 혼자 떨어져 친구들 사이에 서 있는 데 어찌나 공포스러운지.. 세상에 처음 나온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집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큰 운동장에 나만 덩그러니 떨어져 보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외계인 같았다. 엄마 치마폭에 싸여 나오지 못하던 막내가 어느새 적응하여 까불이가 되었다. 혼자 외롭게 울기만 했던 때를 까맣게 잊을 만큼. 재밌는 별천지를 처음 만나고 무서울 게 없는 유치원 대장이 되었던 거다.




 농부인 부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해 애를 썼지만, 아들 복이 없었던 그 부부는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줄줄이 일곱을 낳는다. 그 집에 그 아이가 막내로 태어난다. 그래서 이름도 사내 남 한자가 들어간다. 지금은 괜찮지만, 어릴 땐 조금 창피했었던.. 그래도 밝은 그 막내는 애써 당당한 척을 한다. 밝고 당당했기에  놀림을 당해 본 적은 없다.


 늘 부모님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어린양을 받아 줄 여유가 없는 집이라 그런지 막내는 집에서는 말이 없지만, 밖에 나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도 많고, 활발하다. 시골에 살지만, 도시 아이처럼 얼굴이 하얗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들의 이른 서울 살이의 영향인지 사투리도 거의 쓰지 않는다. 시장표 옷을 입었지만 그래도 깔끔하고, 나름 멋을 부릴 줄 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쁜 외모는 아니지만, 오밀조밀 귀여운 얼굴에 말 걸고 싶은 새침한 모습이 있다. 나름 학교에서 동네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그래서 막내는 가족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랑받는 것에 낯설지 않다.



  한 반에 마흔 명이 좀 넘는 학생수에 전체 학생수는 이백오십 명가량 되었던 것 같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도시로 전학을 가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입학생은 점점 줄어 현재는 폐교 직전이다. 전체 학생수가 이십 명도 안되므로. 그래도 막내가 학교에 다닐 그때는 활기차고 뛰어노는 아이들로 운동장이 북적거렸다. 학교 옆에 있을 건 다 있는 구멍가게도 있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불량식품 냄새와 뽑기, 쉬는 시간마다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 십원만 있어도 사탕을 사 먹을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깨물어 먹지 않고 녹여 먹으면 삼십 분은 족히 먹을 수 있는 ‘독 사탕(돌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전라도 사투리로 돌이 독임). 십원을 내면 하얀색 독 사탕을 한 개 먹을 수 있다. 깨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 더 오래 먹어서 좋다. 막내는 "엄마 십원만. 십원만" 하면서 졸라 타낸 돈을 가지고, 쉬는 시간 아이들이 구멍가게에 뛰어갈 때마다 참으며 아껴둔다. 주머니에 넣어둔 십원을 조물딱 거리며.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물오물 입에 넣고 기분 좋게 걸어가기 위해서. 수업을 마치고 한꺼번에 나와 구멍가게를 찾는 아이들로 붐비는 틈을 기분 좋게 비집고 들어가 십원을 내민다.


 



 언제 바뀐 주인인지.. 젊은 언니가 앉아 있다. 키는 크지 않고 몸이 자그마한 언니는 서울 살이 하러 간 큰 언니 나이쯤 되어 보인다. 그 언니가 대뜸 하는 말 "얌체공!" 나를 보며 하는 말이다. 가끔 가는 구멍가게지만 언니는 나를 몇 번 보았나 보다. 얌체공처럼 생겼다며 언니는 이름도 모르는 나를 반겨주었다. 그 시절, 신기하게도 작고 탱탱한 공이 바닥으로 튕겨지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잡으려면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야 했던 그 공. 이름이 웃기기도 하고, 야광 색이어서 더 갖고 싶었던 그 공을 처음 봤을 무렵이었다. 그때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얌체공. 언니는 막내가 꼭 얌체공 같다며 붙여준 별명이었다. 통 통 튄다나! 표정이 얌체 같아서 그러나 했지만, 어쨌든 웃으며 반겨주니 기분은 좋았다. 하루는 언니가 놀다 가라며 집에 가는 나를 불렀다. 어차피 집에 가야 아무도 없을 테니까.


구멍가게에 딸린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언니는 가게와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막내와 얘기를 나누었고, 언니가 물건 정리하느라 바쁠 때면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과자와 사탕도 공짜로 주었다. 언니는 쫑알쫑알 얘기하는 막내를 이쁘게 봐주었고, 꽤 나는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친언니에게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언니가 학교에서 끝나는 막내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잘해주었다. 언니는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 막내는 무서운 아빠가 있는 집을 늦게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친구 저 친구 집을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끔 눈치가 보일 때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당시 제일 좋은 것은 돈 없이도 맛있는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막내가 가족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관심과 사랑을 해 준 것에 대한 그리고 외로운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놀러 갈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준 것이 많이 고맙다. 언니 구멍가게에 있을 때는 집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이 있었다. 언제 아빠의 고함 소리가 들릴지 모르는 그 분위기에 비할바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언니의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좁은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노트를 피고 숙제를 했던 모습은 생생하다.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 묻고 싶은 것도 많다. 어느 순간 언니가 아닌 다른 주인으로 바뀌어 너무 아쉬웠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 추억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해 준 언니가 보고 싶다. 잊고 지내다 막내가 어른이 되고 난 다음 제일 그리운 사람. 마흔이 넘고 보니 기억 속에 은인들 덕분에 막내가 그래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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