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럽키진 Mar 03. 2022

겉모습일 뿐, 내면을 채워 당당하게!

꾸미지 않아도 이쁜 나, 꾸미면 더 이쁜 나


 중학교 2학년 영어 시간에 배웠던 그 짧은 장면 하나가 가치관을 바꿔놓을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때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그려졌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가슴 깊이 새겨졌는지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다.


 짧게 말하자면, 여자 주인공이 평범보다 못한 옷차림을 하고 약간은 지저분하게 슬리퍼를 신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점원이 안내도 하지 않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옷을 골라 입어보고 싶은데도 입어볼 수 없다고 하면서 불친절하게 대한다. 여자는 기분이 나빠 가게를 나왔다. 잠시 후 명품처럼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멋지게 꾸며서 그 가게로 다시 들어간다. 점원은 완전히 다른 모습에 같은 여자일 것이라 생각 못하고, 친절하게 맞이한다. 안내도 성심성의껏 하고  어울릴 것 같다며 옷을 골라 입어보라고 권한다. 여자는 옷을 여러 벌 입어보고 보란 듯이 그 가게를 나왔다. 점원은 옷을 팔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 짧은 영상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미국도 다를 게 없구나’ ‘옷을 잘 입고 멋지게 보여야 대접을 받는구나’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으려면 겉모습도 중요하겠구나’ ‘촌스럽거나 빈티가 나 보이면 무시를 당하겠구나’ ‘보이는 것으로 차별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그 전에도 옷이 많지 않지만 깔끔하게 입었고, 없는 중에도 이리저리 매치해서 입는 걸 즐겨했었다. 물론 옷으로 표현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쉽게 판단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평상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상을 통해 확인받고 그 생각이 더 확고해진 느낌이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해. 좋은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고 멋진 집에서 살면 부러워하며 대우가 달라져. 값싼 옷을 입고 지저분하고 없어 보이면 무시하고 깔보기 마련이지. 나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 겉모습을 꾸미고 당당하게 살 거야.’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 친구를 가려서 사귀었다. 깔끔하고 이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멀리했었다. 말로나 행동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표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꺼려하는 눈빛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몸짓이 있지 않았을까. 미세하게 상대는 느꼈을지 모른다. 나와 같은 생각을 반대로 받았다면 엄청 기분 나쁘고 상처가 컸을 것이다. 마치 고등학교 때 김치와 검은콩 반찬만 싸 간 내게 싫은 티를 냈었던 그 친구 눈빛처럼.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대놓고 차별했던 기억도 있다. 산골에 사는 남자 짝이었다. 버스를 타야 30분 걸려 올 수 있는 먼 거리에서 통학을 하는 아이 었는데, 얼마큼 목욕을 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이 모두 까맣다. 떼를 벗기지 않아 딱딱하게 살이 굳었고, 1년 내내 같은 옷을 빨지 않고 입고 다녔다. 냄새가 코를 찔러 코를 막고 수업을 들어야 했고, 그 아이와 책상을 같이 쓰는 게 싫었다. 책상을 반으로 선을 그어 넘어오지 말라고 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사실은 엄마가 돌아가신 아이 었다. 할머니와 사는 아이 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실 때 많이 울어서 목소리가 쉰 것이라고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아이와는 6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시골이라 학생수가 없어 늘 한 반뿐이어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조금 철이 든 고학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해주지는 못해도 무시하지는 않았다. 용기를 내어 미안하다고 그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혹시 동창회에서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나의 그러한 행동들이 상처가 되어 남아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영상을 본 후로 외모와 세상을 보는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다. 언니들에게 물려 입은 옷도 깔끔하게 잘 입고 다녔고, 엄마가 사주신 시장표 옷도 촌스럽지 않으면 즐겨 입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명절에 고향 내려온 언니들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 그 당시 3만 원가량 주고 라운드 니트를 샀다.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브랜드 옷가게에 들어가 중학생인 나이에 거금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겁도 없이 큰돈을 쓰고 왔다고 엄마와 언니들에게 혼이 났지만, 나중에는 언니들이 그 옷을 빌려 입고 나갔다. 맘에 드는 옷을 골랐던 것이 하필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그때 들었던 생각은 맘에 들지도 않는 싼 옷을 사들고 와서 잘 입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며, 딱 하나 사더라도 가치 있는 옷을 사고 싶었다. 오래 입어도 떨어지지 않는 재질에 누가 보아도 비싸 보이는 그런 옷이어서 욕심이 났다. 용돈을 여기에 다 쓰고 몇 달을 돈 없이 살아도 괜찮았다.


 그 당시 사춘기어서 외모에 신경을 더 쓰기도 했겠지만, 영상의 영향이 많이 컸다. 비록 집은 못 살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사실상 친구들은 내가 못 사는 아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가끔 학교에서 ‘영세민’을 조사한다고 손을 들어보라고 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소극적으로 들었지만, 그때를 빼고는 나조차도 잊고 지냈다.




 스스로 당당하게 지내려고 애써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가 많아 돈이 들어갈 데는 많고 돈벌이는 시원치 않아서 신발은 늘 한 켤레로 구멍이 날 때까지 신었다. 2년 터울로 언니들이 줄줄이 있었기 때문에 발이 커지면 언니들이 신었던 신발을 물려받으니 새 신발을 신을 일도 별로 없다. 가끔 언니 신발도 닳아서 비올 때 신을 수 없게 되면 그때 사주신다. 어릴 때는 그나마 물려받는 것에 대한 창피함이 덜 했는데 커가면서 뽐을 내고 싶은데도 누가 보아도 헌 옷과 헌 신발이니 언제까지 물려 입어야 하느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국민학교 3학년 즈음인가 그 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게 오는 여름이었는데, 운동화 앞코가 벌어져서 양말이 매일 젖으니 어떻게 해서든 신발을 사야만 했다. 여름인데 시원하면서도 이쁜 샌들도 신고 싶고, 장마니까 아이들 신고 다니는 장화도 부러웠다. 뭘 사더라도 작아질 때까지 일 년은 넘게 신어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사계절 내내 신을 수 있는 운동화가 제일 무난한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장마가 길어지는 이 여름에 친구들처럼 빗물 웅덩이에 장화를 신고 첨벙거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 장화 사주세요!”

“비 오는 날은 좋지만, 안 오는 날에는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장화 신어 보는 게 소원이에요”

엄마가 시장에서 장화를 사 오셨는데 다음 날 학교에 신고 갈 생각을 하니 좋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가 와야 할 날씨가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첫 개봉하는 날인데, 장대비가 쏟아지지 않고 아침부터 푹푹 찐다. 그러나 고민할 여지가 없다. 어쨌든 장화밖에 신고갈 신발이 없으니까.

‘비도 안 오는데 장화라니.. 친구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말하지.’ 학교 가는 내내 생각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은 척 당당했다.

‘난 지금 신발이 장화밖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니야. 장마니까 혹시 갑자기 비가 올 수도 있어서 장화를 신고 온 것뿐이야.

그러니까 당당해도 괜찮아. 누가 뭐라 하면 이렇게 이유를 말하면 되잖아.’ 하며 아무도 묻지 않는데 준비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존감이 높았던 게 아니라 높은 척하고 있었다. 남들이 뭐라 할까를 고민하며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도 해주었다.

“엄마가 가난했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당당한 척을 했어. 그러나 친구들은 활발한 엄마를 좋아했고, 아무도 무시하지 않았어. 엄마의 생각이 그랬던 거야. 혹시 얕보고 놀릴까 봐 미리 걱정을 했던 거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가끔 없인 여기거나 한심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존중을 해주는 것 같아. 무엇을 하든 떳떳하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른 사람 시선 의식하지 않고 성장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올라가 있지. 지금 엄마처럼 말이야.”


 그 영상을 보았던 15세에서 35세까지 남을 의식하며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다. 첫 직장에서 3교대 간호사로 일하면서 적지 않은 연봉을 겉모습 꾸미는데 거의 썼고 그것도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썼다. 월급을 받으면 백화점 달려가느라 바빴고, 카드값은 날로 늘어서 백화점과 은행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는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멋 부리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막내로 언니들 옷만 물려 입고 자라서 그런 줄만 알았다. 부모님께 보내드리는 돈만 빼고 5년을 꽉꽉 채워 써보니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내면은 텅 비어있고 외모만 꾸미는 어리석음의 끝판왕이 된 것이다. 그때 생긴 습관이 있다. 밖에 나가기 전에 미리 옷을 세팅해 놓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직장을 가기 전에는 당연한 것이고, 잠시 마트를 가더라도 대충 나가지는 못했다. 물론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는 그냥 나가기도 했지만, 직장 근처에 집이 있었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 혹시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게 되면 무슨 옷을 입고 갈까’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픈데 옷이 뭐가 중요해하겠지만, 그 정도로 심각했나 보다. 긴박한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으니 ‘혹시 그런 일이 있으면 이 옷을 입어야지’ 하고 생각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다. 아이 엄마들을 만나 보아도 천차만별이다. 거의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엄청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도 있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기본만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잘 키우면서 적당히 수수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편해졌다. 언제가 부터는 내면은 돌보지 않고 외모에만 투자를 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이 느껴졌다. 심리 공부를 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했고, 있는척하며 실제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어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무시했던 마음들이 온전히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비싼 옷과 신발로 나를 평가해 주길 바랬던 마음이었다. 백화점에서 돈을 많이 써서 점원에게 인정받으면 뭘 하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심리상담을 전공하면서 자신과 가족에 대해 알아가고 어려움을 극복해 내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커가는 과정을 보고, 남편과의 잦은 다툼의 원인이 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노력하고를 반복하는 시간 동안 많이 변했다.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성장이  값지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당장 알아보지 못해도 진가를 언젠가는 알아봐  것이다. 알아봐 주지 못해도 괜찮다. 나로서 행복하므로.



 이제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꾸미지 않아도 이쁘다.




작가의 이전글 큰 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에게 남기고 간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