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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Feb 18. 2022

병은 아니라는데 자꾸 아프다

내 마음은 기능성 위장장애 1

  요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녀석이 있다.


 사춘기 자식보다, 고집 센 남편보다 속을 썩이는 이 녀석은 바로 소화불량에 심한 속 쓰림. 증상의 시작은 2년 전부터인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면 서다. 코로나 시기 초에(2020.4) 경제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그전까지는 심리와 육아, 정치 등 경제만 빼고 관심을 가졌었는데, 나를 알아가는 욕구가 거의 채워질 무렵이어 선지 무언가 성취하고픈 욕구가 강하게 밀려왔다. 성공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고.. 그런데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공부를 해야지 마음을 먹으니 먼저 주식과 부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초반부터 10년 가까이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을 해오면서 경제적 독립을 했었고, 큰 부족감 없이 살아오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레 실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계속 아프다 보니 맞벌이를 하기 어려워졌고, 엄마인 내가 당연스레 전업주부가 되고.. 대부분의 가정처럼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에 에너지를 쏟는 것만도 쉽지가 않다. 공부로 인한 차별이 상처가 되었던 나로서는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잘 키운다 함은 첫아이 때 기준으로는 영재 만들기. 태교부터 시작해 출산 후 모든 포커스가 영재로 키우기에 맞춰졌다. 그렇다고 인성과 배려심을 빼진 않았다. 그러니 거의 완벽에 가깝게 육아를 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었다. 세 아이를 그런 마음으로 키우다 보니 10년이 되는 해에 번아웃이 왔다. 그전부터 몇 번의 고비는 있었다. 큰 언니의 죽음과 몇 년 후 아버지의 죽음. 3년 동안 한꺼번에 밀려오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리고 나의 삶. 지쳐가는 육아... 건강을 위협하는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까지. 무언가 큰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무너져 내려버릴 것 같은 공포가 짓눌렀다.


 인생무상을 느끼고 속세를 떠나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는 스님처럼.. 나는 산자락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풍수지리가 뛰어나 바로 옆에 절도 있고, 산으로 가는 길도 아파트와 1분 거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맞닿아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자연을 바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특히나 주말에는 서울에서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났었는데, 걸어서 수시로 올 수 있어 아이들도 좋아했다. 1년 정도 체력을 기르고, 마음 수련을 하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엄마의 삶도 어느 정도 살았고, 이제는 나의 삶을 좀 살고 싶어졌다. 아직도 어린데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당시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로 육아를 하다 보니 애착형성도 잘 되었고, 어릴 때부터 유난스러웠던?(돌 전부터 내가 할게) 독립심도 잘 유지가 되었고, 자기 주도적인 생활이 익숙해 엄마의 손은 최소로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옆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왔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온라인 수업을 했으므로 거의 2년간은 모두 집에서 함께 해야 했지만.. 엄마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나가 놀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차려 먹었으므로. 그리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은 아이들이 집안일도 돕고 심지어 꿈이 요리사인 막내는 나에게 밥도 차려 주었다. 그런 고마운 아이들을 위한 보상은 밤에 잠을 자기 전 10분 정도 세 아이 잠자리에 같이 누워 잠깐의 대화와 포옹이었다. 세 아이의 방을 돌고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2년을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1년 내내 나의 공부만을 하기는 아이들에게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까 봐 이다. 2년으로 나누어 해마다 3개월 정도만 전력질주 공부를 했다. 아무리 자기 주도를 한다지만, 초등학생인 경우 한창 엄마와 놀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나이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에 부모가 개입해야 할 것들이 아직은 있고,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할 때는 들어주기도 해야 하고,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관찰해서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시기인데, 1년 내내 공부를 몰입해서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1년에 3개월만 집중해서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죽을힘을 다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 지낼 시간을 주지 못하고, 또 기다려 달라는 얘기를 해야 하니.. 그런 말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대신 그 3개월은 주말도 없고, 함께 식사를 하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엄마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만큼 초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합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열심히 한 나도 있었지만, 그보다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합격증과 함께 찾아온 소화불량과 속 쓰림. 소량씩 음식을 먹어도 밤에 누워 잠을 잘 수 없을 만큼의 불편감.

공부를 하면서 더 빠른 식사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만 앉아 있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요즘 너무 심해져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니 많이 힘들다. 하루 종일 조금 먹고 운동만 해도 소화가 안되니 죽을 맛이다. 약을 먹고 건강검진을 해도 큰 이상은 없는데, 이렇게 통증이 심하다니..


 기능성 소화불량이란, 기질적인 원인 없이 반사성, 신경성 따위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소화불량을 말한다.

검진 상 특이한 소견이 없는데, 불편감과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위장장애의 반이 기능성 소화불량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심리적인 요인이 큰 걸까?


 위장이 멀쩡한데 증상이 있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마음이 아프다. 평상시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사는데, 나는 딱 하나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있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우리는 기능성 위장장애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깊게 들어가 보면 불편하고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이유를 알면 치료도 쉬울 텐데. 내가 심리를 공부하며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딱 하나 걸리는 것을 40년 만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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