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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Feb 18. 2022

힘들다면 지금, 엄마도 힐링이 필요해

시간을 내어 쉼과 여유를 즐기자. 그래야 또 시작할 수 있지.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혼 후에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악몽으로 나타났던 아버지. 꿈에선 언제나 무서운 얼굴로 나를 쫒던.. 도망치려 하는데 발이 잘 떨어지지 않고, 빨리 달리고 싶은데 맘처럼 안되어 발버둥 치며 꿈에서 깬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 이상 아버지 악몽은 꾸지 않는다. 선한 인상으로 몇 번 나오시고 기분이 나쁘게 깬 적은 없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 편찮으셔서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며 많이 울었다. 그런데 다시 살아오신다면?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대답을 선뜻 못할 것 같다. 남은 엄마를 위해서도 딸들을 위해서도 슬프지만 그냥 하늘에 계시라고.. 도덕적으로 너무 나쁜 딸일까? 그러기엔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날들이 악몽이었다. 그래도 딸이라고 아버지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아팠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심리학 공부를 병행하고, 육아 교육 강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끌어 쓰는 데 한계가 왔을 때 즈음 애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심리적인 혼란이 몸으로 느껴지며 아프기 시작했다. 결혼 후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고, 욕심 있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로서도 중요했지만, 내 일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는 시간 나의 발전에 힘썼다. 몸은 하나인데 십 년 넘게 무리를 하니 번아웃이 올 수밖에..






 자연을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주말에 들로 산으로 여행을 가는데, 몸과 마음이 힘드니 여행을 갈 때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서울에 살다 갑작스레 거처를 옮기기가 말처럼 쉽나. 큰 아이가 일곱 살 무렵 자연과 함께 추억을 만들까 하며 지인이 사는 이 동네에 와서 살까 잠깐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더라. 서울 중에서도 대단한 동네에 산 것도 아니면서 그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 나가면 돌아오기 힘들다는 주변인들의 말이 많았고, 그때는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 그곳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은 이사를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고, 나의 말을 존중해 주었다. 아이들도 사교육을 하지 않으니 크게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고, 아토피가 있는 큰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산이 있고, 근처에 학교와 도서관이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몇 년 전과 다르게 아파트와 상가도 늘고, 교통도 좋은 편이었다.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로 예능에 소개되기도 하고, 잘 지어진 집이라 마음에 들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지?

그게 가장 고민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7살.

큰아이가 관건이다. 전학을 하면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고 한참 예민한 시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거부했고, 엄마가 몸이 아파서 그러니 이사를 했으면 한다고 부탁을 했다. 낯섦은 있겠지만 활발한 성격에 똑똑한 아이라 잘 적응해 내리라 믿었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자연이 가까이 있는 곳에 사는 경험은 해보지 못할 것이라는 게 아쉽기도 했다. 이사를 맘먹고 부동산에 알아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가 보았다. 일단 큰 평수의 아파트와 걸어서 산에 갈 수 있다는 것, 큰아이는 새로운 학교에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3년 전, 겨울 방학을 시작하면서 이사를 했고, 방학 동안 새 집과 동네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개학 후 한 달 만에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인싸(인사이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관계가 좋고 대화를 평소 많이 하는 편이라 솔직히 사춘기가 어떻게 올까.. 엄마들이 흔히 말하는 사춘기 증세가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볼 수가 없었다. 청소년 상담을 공부했고 청소년들을 만나보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을 때 건강한 사춘기를 보낼 것이라 장담도 했었다.


 큰 아이 5학년 여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방에 문을 잠그기 시작한 때부터다. 엄마에게도 비밀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자기 방이 있어도 늘 거실에, 식탁에서 생활했던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그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궁금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했다. 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엄마에게 하루 일과를 얘기하고 어울려 놀고 식탁에서 밥 먹고 공부하고 모든 것을 식탁에서 했던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니 조용해서 한동안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전혀 그러지 않았던 아이가 예민해졌다. 말투도 거슬린다. 문도 쾅 닫는다. 모든 게 적응이 안 된다. 어린 나이에도 책 중독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고 밤새 읽고 싶다고 할 정도였는데 책을 읽는 시간이 확 줄었고, 공부도 알아서 하던 아이가 공부하려고 앉으면 인상부터 쓴다. 죄 없는 지우개를 찌르고 한숨을 쉬고, 몸을 비튼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돌아와 인상 쓰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힘겹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되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말을 건다. 내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재밌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 텐데.. 호르몬의 변화라고 해도 이럴 수 있나? 나의 사춘기를 떠올려 본다. 난 반항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아서 반항을 했던 거니까 하며 합리화를 해본다. 그래도 나와 아이는 사이가 좋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사춘기 관련 책을 읽어 상식도 있고 공부를 해서 알 건 아는데 내 아이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 아이만큼은 그래도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었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한 달이 가고 있을 무렵, 도저히 이렇게는 아니지 싶었다. 큰 아이가 미워지려 했다. 사랑하는 아이가 미워지는 일은 끔찍했다. 사춘기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나를 달랬다. 어린 시절과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적응을 못하는 것뿐이라고. 아이도 힘들 거라고.

 먼저 공부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 한숨을 쉬고 인상을 썼던 문제지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정리하기로 합의하였다. 대신 공부하느라 읽지 못했던 책을 실컷 읽는 것으로.


 내가 노력할 부분은 아이가 인상을 쓰든 안 쓰든 예전보다 더 사랑해주기. 생각해보니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오롯이 사랑을 듬뿍 주었다고 자신하는데,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데 정신이 없어 큰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똑똑하고 야무져서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잘하고, 내 손이 덜 가도 티가 나지 않아서 듬직한 딸로 고마워만 하지 않았나. 쿨한 성격에 엄마한테 어린양 도 부리지 않아서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보내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사랑이 다 채워져서 그러나 보다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그러고 아이를 보니 미안함이 밀려온다. 생각해 보니 스킨십도 동생들보단 덜한 것 같고,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들한테 더 신경을 쓴 것이다. 일찍 철이 든 아이는 엄마가 힘들까 봐 사랑을 더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쿨한 성격이 아니라 속이 깊어 말하지 못했던 것인데.. 큰아이가 짠하다.







 은연중에 큰아이에게 기대가 많이 컸던 것 같다. 영재 테스트를 해보진 않았지만, 여느 영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있었고,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아이를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학교를 가면서 자연스레 성적이 나오면 다른 아이와 비교를 했을 테고,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서 더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육아 교육을 하는 사람이 자식도 잘 키워야지 하는 마음도 컸을 테고... 그땐 잘 느끼지 못했는데,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보니 진정한 내가 보인다. 아이의 마음보다는 주변의 것들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순수한 사랑보다는 잘하는 것들에 대한 보상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부터 다짐을 했다. 대가 없는 사랑을 주기로.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이 된 후로 스킨십이 유독 큰 아이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섬세한 둘째, 까다로운 성향의 막내를 신경 쓰느라... 오래 기다렸지? 5학년까지 기다리느라 많이 힘들었지?.. 공부 스트레스가 덜 하니 인상 쓰는 일은 많이 줄었고, 수시로 안아주고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사 오길 잘했다. 친한 엄마들도 없으니 비교할 대상도 없고,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었으니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큰 아이의 마음도 알게 되고, 나를 객관화해서 들여다볼 기회도 생겼다. 후회하는 시간보다는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실천하니 하루가 다르게 아이도 변해간다. 진정으로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아이가 보인다. 세상과의 단절(?)이 가족들과는 소통이 되는구나. 여기로 이사를 오지 않아도 가능했을까?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체력을 기르기 위해 아픈 몸을 끌고 산을 다녔지만, 어쩌면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몸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잘 알고 끊임없이 관찰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려면 자신을 아는 게 우선이다. 육아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혼 전까지 자신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부분에서 참기 어려운지, 어떨 때 화가 나는지.. 등을 서서히 알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지 낮은지 제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육아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 키우기에 대한 무력감과 도를 닦는 자보다 더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육아 세계에서 무너지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나를 둘러싼 환경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서울 한 복판에서 이 몸과 마음으로 계속 같은 일상으로 지내왔었다면 치유가 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도 생각만큼 편안한 육아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여전히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 소통을 잘하고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산에서 얻었고,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고 본다. 먹고 사느라 무엇이 중요한지 혼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도저히 상황이 안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환경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면 원하는 삶에 점 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이들도 나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잠깐 멈추고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인생의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한다.

 

 

 




 엄마의 사랑이 커지니 아이들끼리 사랑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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