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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Nov 15. 2022

행복하려고 결혼한 것일 뿐 맘에 든 며느리는 못합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남편과 함께 마음 패턴 바꾸기

 


"당신, 나와 어머니가 물에 빠졌어. 그러면 누구 먼저 꺼낼 거야?"

 남편에게 한 번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을 질문 리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것을 묻는 여자의 속마음은 적어도 반 이상 '나'일 것을 확신한다. 나머지 반은 최소한 그래도 고민하는 남편 얼굴을 떠올리며 던지겠지. 물론 돌아오는 대답에 실망하며 "이런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나" 하는 아내도 있을 것이다. 넉살이 요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당신이지"하며 너털웃음을 짓겠지만, 사실 속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웃음으로 대충 넘겨보려는 심산일지도 모르고.


 



 이혼 부부도 상담 사례도 늘어나는 요즘, 나이가 나이인지라 올해 더 부부관계를 점검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세 아이가 어릴 때에는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세 끼니 챙겨 먹는 것도 빠듯한데 불만이 있어도 뚱한 표정으로 그냥 넘기거나 참았다가 아이들이 잠들거나 주말에 몰아서 한꺼번에 쏟아내곤 했었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나지도 않는 결론을 내려고 긴 시간 다툼을 해봐야 남는 것은 상처뿐이고. 그냥 두기에는 오히려 꾹 꾹 참으며 사이는 더 멀어져 버릴 것 같아 말은 하는데, 서로 힘들다 보니 가시 박힌 말을 던지게 된다. 거기에 꼭 등장하는 시어머니. 세 아이 키우기도 죽을 만큼 힘든데, 말로 대못을 박고,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것을 원하거나, 자신할 말 다 하면서 뒤끝 없이 쿨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시는 못된 자신감, 도와주시는 건 없이 해도 해도 너무하신 넘치는 이기심, 며느리를 칭찬해야 더 잘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으셨는지 "너도 애쓴다" 하면서 건네는 영혼 없는 말투까지.. 남편과 이런 걸로 다투다 보면 이건 아니지 하면서 자괴감이 드는 반복적인 결말이 계속된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내가 이럴 때마다 얼마나 미치겠는 줄 알아?"

"근데 나도 힘들어.. 중간에서 나도 힘들다고.."

"나는 뭐라 못하니까 네가 감당하라고? 당신이랑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데! 시댁에 다녀오고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스트레스받아서 그 화가 아이들한테 간다고!! 차라리 통화하는 것보다 얼굴을 뵈러 가는 게 나을 정도야. 좋은 시어머니 소리는 듣고 싶어 주변에 사람 있을 때와 없을 때 통화 목소리가 얼마나 차이 나는 줄 알아? 혼자 계실 때 전화하면 뭐 하러 전화했냐는 말투시고. 무안을 얼마나 주시는지 통화하는 게 두렵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야.  그러면서 왜 안부전화를 바라시는지 모르겠고, 그 목소리 듣기 싫어서 전화를 안 하면 꿈에 나타나서 날 괴롭힌다고!! "

"그러니까.. 되도록 전화는 가끔 하도록 해. 엄마는 왜 그러셨는지 참.. 그러니까 기본만 하자"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든데.. 어머니만 안 그러셔도 좀 살겠다. 나도 10년 넘게 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차라리 나가서 돈이라도 벌면 좋겠어. 세 아이와 끝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얼마나 존재감이 나락인지 당신이 알아? 남자들은 결혼 전과 후가 차이가 없잖아. 가장으로서의 부담? 있겠지. 그럼 바꾸자. 당신이 육아하고 내가 나가서 일할게."


 




15년 동안 들었던 그 '기본'

기본이란 것에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래도 이렇게 한을 쏟아내고 나면 그나마 좀 낫다. 말하면서 물론 거꾸로 솟아오르는 끝없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내 얼굴에 침 뱉기는 싫어 이런 이야기를 누구와 또 나누나. 신혼 때는 '우리 엄마가 아무리 해도 그렇게까지는 하실 분이 아니다!'라는 반응보다 많이 발전하긴 했다. 찝찝하긴 하지만 내 편(?)을 들어주는 느낌 정도는 쪼금이라도 받으니까.


엄마가 이 세상의 전부이듯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에게 힘든 투정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힘들 때마다 튀어나왔던 말들을 떠올리면 미안하기도 하다.


"이랬었던 엄마를 용서하렴.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몸은 하나인데 잘 키우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엄마가 좀 힘들었나 봐. 영재로 키워 보겠다고 책 육아에, 창의 놀이, 마음 케어한다고 밤에는 아동 심리 공부하며, 몰입하는 모습 보면 방해하지 않고 함께 놀고 뒹굴고, 먹고 웃고, 마냥 이뻐서 물고 빨고.. 체력을 아끼지 않고 과하게 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을 거야. 두 명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어린 세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엄마도 무리였나 봐.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셋째를 낳은 것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고, 너희가 엄마 품으로 와 준 것은 신의 한 수였어. 이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을 거야."


 육아를 하는 15년 동안, 내 안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엄마이기 전에 자유로운 영혼이 꿈틀거리는 누구보다 온전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고통을 자식에게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강력한 목적이 있는 결혼이었는데, 둘 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쩌나. 둘 다 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컸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할 수 있게. 물론 용기도 능력도 경험도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어떻게 세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고, 자격증을 따고.. 힘들지 않아?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을. 아이를 잘 키우면 아이가 좋은 것이고, 나를 위한 성과는 없는 것이다.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상담사, 학업 상담자, 논술, 공인 중개사 자격, 강사 경력, 브런치 작가까지. 그리고 1인 공부방을 계획 중이다. 이번 달에 오픈을 한다. 행복하다.


 



 남편에게 물에 빠진 아내와 어머니 질문을 던져놓고 육아의 힘듦, 자격증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


 바로 이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16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존재 차제로서. 자신을 위해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온 한 인간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것이다. 힘들게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서툰 감정도, 의사소통도, 서로 다름을 비난이 아닌 노력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자세를 보면서 믿음이 쌓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일방적인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함께 맞춰 걷는 배려가 없다면 넘어지기 쉽다.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가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물어보고 배우고 실천해 본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시댁과 멀어지고 싶다는 말을 올 6월 즈음 선언했다. (계기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나누기로 하고)

 처음엔 갱년기로 우울하고 힘이 드니까 평소대로 하는 말이겠거니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면 어머니께 연락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남편 표정이 당연히 밝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안부 전화도 드리지 않고, 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나도 남편도 자초지종을 말하기 전까지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자식에게 묻기는 뭐 하고 그냥 계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자존심 상하게 먼저 꺼내 묻는 그런 분이 아니시니까. 나중에는 아버님께 남편이 이런 상황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하고, 갱년기 핑계를 대며 몸도 마음도 힘이 드니 당분간 연락을 안 할 것이라 말씀을 드렸다. 서운하셨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남편도 불편하긴 하겠지만,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니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하다.



 "시댁에 대한 자존감이 살아나고, 척이 아닌 진심 존중하기 전까지는 시댁에 가지 않겠어! 이번 명절에는 당신만 다녀와. 그리고 갱년기 핑계를 대며 분명한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내 화병이 낫지 않을 것 같아. 당신과의 관계를 위해, 기본을 지켜달라는 당신을 위해 15년을 넘게 참고 버텨 온 나를 위해서 이번에 큰맘 먹고 내 못다 한 말을 전해주길 바라. 그리고 당신도 이제는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하지 않겠어! 어머니에 대한 생각 나만 그런 것 아니잖아. 당신도 참아온 것들이 많이 있잖아. 이것은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부모 역할이잖아. 그런데 우리가 어머니 빼고 행복할 수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도 온전하게 좀 행복해보고 싶다. 난 간절해. 어머니 때문에 당신에게 눈을 흘기는 일을 이제는 안 하고 싶단 말이야!"



 올라오는 죄책감. 나도 남편도 뭔가 모를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남편에게 연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를 며느리의 존재로 보지 말고 사랑하는 아들의 부인이라고만 생각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당당한 요구라는 것을 남편도 조금씩 천천히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있고 더 행복해 보인다. 어머니와 아내가 사이가 꼭 좋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 브런치 글 쓰고 있는데, 조회수가 1만이 넘어가려 한다!! 정말 기분 좋아. 많은 여성들의 관심사가 시댁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 나 같은 어려움을 겪었고 벗어나려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힘을 주고 싶어. "

"울 마누라 대단하다. 나도 읽어볼래."

"혹시 시댁 이야기로 유명해져서 관련해서 책 내자고 제의 들어오면 어떡하지?"

"내면 되지. 열심히 써봐"





 많은 발전이다. 이러니 남편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16년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인 것인가.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 때문인 것인가. 더 사랑하며 이쁘게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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